finance 제 32호 (2008년 01월)

캐시카우로 재평가받는 글로벌 기업

기사입력 2008.01.16 오후 03:34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LG전자

정보기술(IT)주는 일반적으로 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하는 가치 투자자들에겐 선호 대상이 아니다.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현재 잘나가는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신기술 개발에 뒤질 경우 자칫하면 도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IT 경기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면서 기업 이익이 분기별로도 들쭉날쭉하기 십상이다. 장기 투자의 조건인 ‘실적의 안정성’에서 IT 기업은 매력이 떨어진다. 이런 까닭에 주식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0년이나 30년 후에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을 꼽으라’는 질문을 던질 경우 선뜻 IT주를 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게 사실이다. 물론 IT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경우는 IT 기업이라는 측면보다는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의 단골 메뉴로 ‘어쩔 수 없이’ 꼽히곤 했다.

하지만 LG전자는 그다지 후보에 오른 적이 드물었다. LG전자 역시 명실 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글로벌 기업이자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그늘에 가려진 측면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식 전문가들 사이에 LG전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분위기를 보면 단지 잠깐 관심을 보내는 정도는 분명 아닌 듯하다. LG전자에 ‘과거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LG전자의 리레이팅(재평가)이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과거와 다른 무엇’이 무엇인지는 전문가들마다 다소 차이는 있다. 가령 여의도에서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한 펀드매니저는 요즘 LG전자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LG전자의 가치에 주목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LG전자는 과거 그저 그런 2등 기업이었다. 반도체를 팔아버린 후 사양산업으로 인식된 지 오래인 가전 사업의 명성에 의지하며 삼성전자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10분의 1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휴대폰 사업도 마진율에서 삼성전자에 뒤지는데다 디스플레이 사업은 그동안 수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그러나 LG전자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가치 변화는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다. LG 가전은 과거 사양산업에서 향후 엄청난 캐시카우로 재조명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폭발적인 수요증가 때문이다. 중국이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에다 베이징 올림픽, 상하이 국제박람회 등을 계기로 가전 수요가 급증할 경우 LG전자는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된다. 지금의 사업 포트폴리오 그 자체만으로 회사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이 펀드매니저는 실제 LG전자의 이 같은 잠재력에 주목해 주가가 5만 원대까지 내려갔을 때 편입해 현재 2배 가까운 수익률을 내고 있다. 그는 LG 가전 수요가 중국에서 터질 경우 주당 30만 원은 갈 것이라며 그때까지 보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펀드매니저의 주장과 예측이 맞아떨어질지는 물론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다만 LG전자가 과거의 LG전자는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주식 전문가들 대다수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LG전자의 가치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전문가들 분석을 통해 하나하나 엿보기로 하자. 우선 LG전자가 영위하는 사업의 포트폴리오는 크게 네 가지다. 가전과 휴대폰, 디스플레이, 미디어가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은 이들 네 가지 사업 부문이 나란히 턴어라운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캐시카우를 담당했던 가전은 갈수록 그 역할이 커져가고 있고, 휴대폰 사업 부문도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실적을 갉아먹는 요인이던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도 점차 흑자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전 부문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기존 가전은 사양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전은 꾸준히 현금을 벌어들이며 나름대로 LG전자의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어느 정도 해 왔다. 이런 가전 사업이 최근 들어 성장성까지 겸비한 사업 부문으로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이머징 마켓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대규모 신규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점이다. 또 선진국 시장에서의 프리미엄급 고가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프리미엄 가전 수요는 시스템 에어컨, 양문형 냉장고, 드럼 세탁기, 전기 오븐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하나같이 LG전자의 가전 부문 주력 제품들이다. 특히 시스템 에어컨의 경우 전체 에어컨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22%에서 2006년에는 25%로 높아진 데 이어 2010년에는 32%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뿐만 아니다. 전통적으로 프리미엄급 수요가 많은 북미 시장에서 LG전자는 저가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영업 비중이 점차 낮아지는 대신 고가의 자체 브랜드 매출액이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6년의 경우 북미 시장 브랜드 매출액 비중은 52%까지 상승한 상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에어컨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일부에선 중국 하이얼과 TCL과 같은 가전 기업들의 공세로 LG전자의 입지가 위축되지나 않을까 우려 섞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실제 하이얼 TCL 등은 싼 가격을 무기로 경쟁적으로 가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저가(low-end) 제품 시장에서 LG전자의 점유율이 다소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저가 제품 시장에서 줄어드는 점유율보다 기존 월풀(Whirlpool)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등이 차지하고 있는 고가(high-end) 제품 시장에서의 점유율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가전 부문은 선진 경쟁 업체들에 비해서도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2007년 6%)을 창출하고 있다. 매출 성장률도 높다. 2007년 가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4.9% 증가가 예상되며 2008년 이후에도 연간 10%대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핵심 부품인 모터와 컴프레서의 기술 경쟁력 △글로벌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프리미엄급으로의 빠른 전환 등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휴대폰은 LG전자 리레이팅 스토리를 엮는 핵심 요소다. 실제 LG전자는 세계 주요 휴대폰 업체 중 가장 뚜렷한 실적 개선을 보이고 있다. 2006년 상반기 영업 적자를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2007년에는 수익성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7년 2분기에는 11.6%라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해 수익성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 같은 실적 호조는 초콜릿폰이나 샤인폰 프라다폰으로 이어지는 인기 모델의 일시적인 판매 호조나 경쟁 업체인 모토로라의 실적 부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보다 근본적원인인 구조적 측면에서 개선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구조적 측면은 무엇일까. 이 애널리스트는 △LG 휴대폰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과거 ‘싸이언’ 시절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 △생산 공장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우수 연구 인력의 대폭 확충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는 점 △생산 마케팅 개발 기획 등 각 부문 간 유기적인 네트워크로 조직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점 △부품 소싱의 효율화로 재료비가 크게 절감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물론 휴대폰 사업이 인기 모델의 보유 여부에 따라 분기별로 실적의 변동성이 높다는 점은 우려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LG전자의 경우 장기적인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원가 절감 능력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된 만큼 분기별 실적 증감이 있더라도 해마다 8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의 또 다른 사업 축인 디스플레이는 그동안 매분기 적자를 내며 전체 실적을 갉아먹는 ‘미운 오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올 들어 하반기로 갈수록 적자폭이 줄어들고 있으며 2008년에는 사업 부문별로 일부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쉽게 말해 당장 ‘백조’로 변신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미운 오리’ 신세는 벗어던질 것이란 얘기다. 디스플레이 부문 가운데 2006년 4분기부터 적자를 내고 있는 PDP 패널 사업은 올 상반기의 경우 영업 적자율이 한때 30%에 육박했다. 40인치 TV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LCD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PDP 점유율이 급감한 데다 PDP 재고량이 늘면서 패널 값이 급락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특수 등의 효과로 영업 적자 규모가 2007년 대비 대폭 감소한 384억 원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경우 영업 적자율도 2.5%선으로 낮아진다. PDP 패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디지털 TV 사업은 내년에 흑자로 전환해 1190억 원가량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PC와 통신장비 등 디지털미디어 부문은 그동안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며 전사 매출에 나름대로 기여해 왔지만 내년부터는 수익성 위주로 사업 구조를 바꿔나갈 계획이다.

LG전자 가치를 분석하는 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회사인 LG필립스LCD다. 사실 LG전자 주가가 최근 IT 대형주 가운데 상승률이 돋보였던 데는 LG필립스LCD의 빠른 실적 개선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 LG필립스LCD는 올 하반기부터 패널 가격 하락세가 둔화되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실적이 급속히 턴어라운드하고 있다. 덕분에 LG전자가 보유 지분만큼 얻게 되는 지분법 평가익이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전자는 LG필립스LCD 지분 37.9%를 보유 중이다.

재무 구조도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2006년 말 기준 LG전자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07%, 차입금 규모는 12조3000억 원에 달했지만 매분기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과 비효율적인 자산 매각에 따른 현금 유입으로 부채 규모는 급속히 줄어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08년 말 기준 차입금 규모는 5950억 원, 부채비율은 82% 수준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채비율이 줄어들면 자산 효율성은 당연히 좋아지게 마련이다.

물론 리스크 요인이 없지는 않다. 원·달러 환율 하락과 원재료 가격 상승 외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가 어떤 방향으로 풀릴 것인가도 LG전자의 실적을 좌우하는 변수로 남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LG전자가 이미 부활의 시동을 강하게 건 후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은 상태인 만큼 당분간 역방향으로 후퇴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6개월 목표 주가로 대략 15만 원선을 제시하고 있다.

캐시카우로 재평가받는 글로벌 기업

캐시카우로 재평가받는 글로벌 기업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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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1-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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