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32호 (2008년 01월)

캔버스에 서술된 역사적 사건들

기사입력 2008.01.16 오후 03:58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들을 들여다보면 거창한 일로 시작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글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그림도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동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동시에 선전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이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마라의 죽음’이다. 1793년 여름 프랑스 혁명 중에 일어난 사건을 그렸다.

저널리스트이자 급진주의자 장 폴 마라는 민중의 정치 참여를 고취시켰던 프랑스 정치인이다. 마라는 프랑스 혁명 후에 세워진 정치기구인 국민공회의 일원이자 자코뱅당을 이끄는 인물로 프랑스 공화국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마라의 급진주의 성향은 대중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 세력인 프랑스 왕권주의자들에게는 제거해야만 하는 정적이었다.

1793년 귀족 출신의 열렬한 공화당원이었던 여인 샬로트 코르도네가 거짓 편지를 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피부병으로 욕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혁명 정부는 이 사건을 화가 다비드에게 기록해 달라고 의뢰한다. 역사적 사실을 집약한 이 작품은 다비드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라의 가슴은 칼에 찔린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욕조 옆에 두었던 수건에는 그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욕조 밖에는 그를 찌를 때 사용한 칼이 피에 물든 채 놓여 있다. 마라가 왼손에 쥐고 있는 편지는 샬로트 코르도네가 쓴 자신의 소개장이다. 그녀는 마라에게 자비를 구하려고 했고 마라가 그녀에게 기대했던 것은 지롱드당에 대한 정보였다.

탁자에는 잉크병과 깃펜, 편지와 돈이 놓여 있다. 탁자 위의 편지와 돈은 부인을 위한 마라의 마음을 암시하고 있다.

탁자 아래 ‘마라에게, 다비드가’라는 화가의 사인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한 화가의 사인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는 인민의 목소리를 들었노라. 그리고 거기에 따랐노라’라고 했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유럽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왔다. 나폴레옹 군대가 승리의 깃발을 꽂을 때마다 유럽 사회는 학살의 무자비함, 잔인함으로 사회가 혼돈을 겪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928)가 만년에 제작한 ‘1808년 5월 3일’은 전쟁의 공포를 규탄한 작품으로서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을 휩쓸면서 스페인은 페닌슐라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 조지프를 스페인의 새로운 왕으로 임명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1808년 5월 2일 스페인의 민중들은 나폴레옹에 대항해 폭동을 일으킨다. 그 다음날 나폴레옹 군대는 이들을 곧 진압하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동의 책임자들을 처형한다.

이 사건이 있은 6년 후 고야는 처참했던 그날을 두 개의 그림으로 남긴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군인들이 폭동의 책임자를 처형하는 장면이다.

이 작품의 중심은 흰 셔츠를 입은 남자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남자의 자세는 인류의 죄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연상시키고 있다. 손을 들고 있는 남자 앞에 프랑스 군인들은 총을 겨누며 가까이 서 있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 군인들은 이 작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며 똑같은 자세로 서 있다. 군인들 앞에 있는 민중들은 폭동의 책임자와는 다르게 기도하거나 주먹을 쥐거나 눈을 감고 있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고야의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시작된 유럽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전쟁의 영웅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더 강조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실제의 사건은 낮에 일어났지만 고야는 배경을 밤으로 택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실제 일어난 역사의 사건을 지식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한 작품이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 작품은 1830년 7월 파리 시민들의 봉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고 있다.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발해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한 것으로서 정치적 목적을 담은 최초의 근대 회화다.

이 작품에서는 어두운 하늘을 덮고 있는 포화 연기 사이로 여인이 중앙에서 깃발을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고 옆에는 총을 든 어린 소년, 그리고 그 뒤로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원이 쓰던 붉은 모자 프리지아를 여인이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깃발은 대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다. 여인이 들고 있는 삼색기는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고 총을 든 소년은 프랑스 미래를 상징한다.

들라크루아는 실제의 상황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인이 민중들과 다르게 옷을 벗고 있는데 여인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의 여신은 고대 승리의 여신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은 화면 앞 길거리에 방치된 시신에서 느껴지는 잔인함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캔버스에 서술된 역사적 사건들

마라의 죽음 - 1793년, 캔버스에 유채, 165×128cm, 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

캔버스에 서술된 역사적 사건들

1808년 5월 3일 - 1814년, 캔버스에 유채, 266×34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캔버스에 서술된 역사적 사건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1830년, 캔버스에 유채, 260×3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박희숙

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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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1-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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