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우리 민족은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하며 이달 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 ‘동짓날’이고 양력으로 12월 22, 23일께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 다음 해가 되는 날)’라 하고 민가에서 흔히 ‘작은 설’이라고 하여 설 다음 대접을 했다. 하지로부터 낮은 점점 짧아지고 긴 겨울밤은 드디어 동짓날에 극에 달한다. 다음날부터는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중국 주(周)나라가 동지를 설로 삼은 것은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았다.이처럼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이롭게 여겨 명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통사 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설’ 혹은 ‘작은 설’이라고 했고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했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트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탄생일’로 정해 축하했고 미트라교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했으며 4세기께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로 대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긴긴 겨울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팥죽을 오순도순 나눠 먹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정겹다. 이처럼 팥죽을 먹는 의미와 동지의 유래를 아는 것은 우리의 옛 모습을 읽히는 일이며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천연두)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 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동지와 팥죽의 축귀(逐鬼: 잡귀를 쫓음) 기능에 대한 유래인 것이다. 팥은 붉은색이고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이용돼 왔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색으로 양(陽)을 상징하고 음(陰)의 속성인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사람들은 악귀를 쫓기 위해 동지팥죽을 쑤었고, 지금도 동지에 팥죽을 먹지 않으면 병치레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동지의 놀이는 별로 없으며 절식으로 냉면과 신선로가 있으나 팥죽이 대표식이다.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거나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 찹쌀로 단자를 새알만큼씩 만들어서 죽을 쑤는데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고 한다. 팥죽을 만들면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그 다음에 각 방과 장독 등 집안 곳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은 후 집안 식구들이 모여 먹었다. 이때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먹어야 건강하다고 했으며 여기에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옛말이 비롯됐다. 동지팥죽은 겨울밤의 계절식이면서 동시에 축귀 기능이 있다고 믿었고, 팥죽을 대문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이다. 이러한 풍습은 고려 때에는 없었던 것이나 조선시대부터 유래해 오늘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한편, 동짓날에는 이러한 팥죽의 습속과 함께 궁중 관상감(觀象監: 천문·지리 등을 관장하는 관청)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옥쇄)를 찍어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날부터 태양이 점점 길어지므로 사실상 새해의 시작으로 보고 달력을 만들어 가졌으며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여겼다. 5월 단오에 여름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함께 이를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한다. 동짓날의 날씨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고 흉년이 들며 눈이 많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해지고 있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www.cyworld.com/ke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