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나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식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성공의 요체다. 내재 가치가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장기 보유함으로써 돈을 벌겠다는 가치 투자가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나 돈을 버는 길이 좋은 주식을 싸게 사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주식이어도 산 가격 이상으로 팔 수 있다면, 또한 비싼 가격으로 사도 그 가격 이상으로 되팔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 즉, 내가 산 가격 이상으로 그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만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이처럼 철저하게 수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가치 투자자로서는 무척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분명 진실이다.더욱이 가치의 개념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에 앞으로 벌어들일 모든 현금흐름(순이익이라고 해도 좋다)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의 합이다. 그러나 보유 자산의 현재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에도 다툼이 있을 수 있고 장래에 얼마나 벌지는 더욱 알 수 없다. 장래의 벌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에도 여러 기준이 있다.그런 만큼 매출이 없거나 적자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상당한 규모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보기술(IT) 거품 시절 벤처기업의 주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연간 매출액 증가율이 50~100%에 이르고 그것이 10년이나 20년 이상 계속된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막 설립한 회사의 주가를 액면가의 30배, 100배, 혹은 그 이상으로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경영학 교실에서 벤처기업의 적정 주가 산출 모델을 따로 만들어 가르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그런 논리가 다 그럴듯해 보였다.주가수익률(PER)과 주당순이익(EPS)만 해도 그렇다.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는 제쳐 두고 현재 그 기업이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과 주가를 비교해 적정 여부를 따져 보고자 하는 지표이지만 그 값은 기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지난여름 이후 수개월째 조정을 받고 있는 현재 시장에서도 PER가 70배를 넘는 종목이 있는가 하면 10배에 못 미치는 주식도 있다. PER가 70~80배에 이르는 종목에는 중국 관련주를 포함, 이른바 성장주들이 속해 있음은 물론이다.펀드도 마찬가지다. 가치주 펀드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성장주 펀드들은 한 해 동안 수십%의 수익을 올렸다.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점이 가치주 펀드의 유일한 위안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가치주에 투자할 때라는 기대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장주의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이 된 데다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 둘이 일정 기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시장을 주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도 한 가지 이유가 되고 있다. 성장이라는 ‘패션’에 이제는 투자자들이 질릴 때가 됐다는 논리도 그래서 가능하다.물론 가치주의 시대가 도래되는 데에는 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척 지루한 기간일 수도 있다. 시세는 항상 갈 때까지 가는 법이어서 지금 성장주를 사더라도 PER가 100이 넘는 가격으로 내 주식을 사줄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그러나 기다림과 관련, 한 투자 전문가의 다음 말은 그야말로 정곡을 꿰뚫고 있다.“만약 지루해 하는 대가로 누군가가 돈을 준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것이다.”김상윤하나은행 웰스 매니지먼트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