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제 32호 (2008년 01월)

명문가를 지탱해 온 가훈(家訓)의 힘

기사입력 2008.01.16 오후 04:12

명문가를 지탱해 온 가훈(家訓)의 힘

가훈이란 조상들이 그 후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서 터득한 지혜와 가치관이 담긴 가르침으로서 가정교육의 산 교훈이다. 가훈은 후손에게 나아가야 할 하나의 목표를 제시해 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가의 가훈 중에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으로 ‘안씨가훈(顔氏家訓)’을 들 수 있다. ‘안씨가훈’은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난세를 살아간 한 지식인이었던 안지추(顔之推, 531~591?)가 자손들에게 남긴 훈계서다. 유명한 서예가인 안진경(顔眞卿)은 안지추의 5세손이다. 이 가훈은 책 한 권 분량으로 방대하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후반기인 양(梁)나라와 수(隋)나라의 통일 초까지 산 안지추의 이 가훈서는 자손에게 남긴 훈계인 동시에 자신의 일대기이며, 다양한 체험담과 일화를 담고 있어서 당시 사회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역사서 역할까지 한다.

‘안씨가훈’의 자상함

‘안씨가훈’의 목차를 보면 서치(序致), 교자(敎子), 형제(兄弟), 후취(後娶), 치가(治家), 풍조(風操), 모현(慕賢), 면학(勉學), 문장(文章), 명실(名實), 섭무(涉務), 성사(省事), 지족(止足), 계병(誡兵), 양생(養生), 귀심(歸心), 서증(書證), 음사(音辭), 잡예(雜藝), 종제(終制) 등 전체 20편으로 실로 방대하게 구성돼 있다.

보통 집안의 가훈은 대체로 입신이나 처세, 치가 등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간단한 글귀로 제시하는 데 비해 안 씨의 이 가훈은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지켜야 할 점은 물론 고전을 고증하는 서증(書證), 음운학 발달사와 음운 비교를 적은 음사(音辭), 서예, 회화, 궁술, 산술, 바둑 등에 관한 기록인 잡예(雜藝) 등과 같이 전문적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방대하고 자상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잡예(雜藝)에서는 ‘서예에 대하여’, ‘글씨를 뛰어나게 잘 쓰려면’, ‘왕희지의 서법’, ‘남북조 서법의 경향’ 등등의 글을 담고 있어 가히 전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안진경이란 서예 대가가 후손으로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너무나 명료한 최영 장군의 가훈

안 씨 가훈은 너무 방대하고 사실적이어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후손들이 잘 새겨들으면 마디마디 옳지 않은 말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느슨하게 들으면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들어 실천력이 떨어질 수 있다.

고려시대의 무신 최영(崔瑩, 1316~1388)의 나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 옹(雍)이 아들을 훈계하여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고 하였다. 그 뒤 최영 장군은 죽을 때까지 이 말을 새겨두고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을 검소하게 하고 절약해 여러 번에 걸쳐 집안에는 옷과 먹을 것이 없어 텅텅 비어 있는 형편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영 장군의 이 가훈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해서 누구나가 잘 알고 있다. 가훈은 이렇게 간단하고 구체적일수록 그 실천의 힘이 강력하다. 그러나 너무 간략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조선 정조 때 영상을 지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은 “모든 일에 착한 행실을 다하라(每事盡善)”는 부친이 내려준 짤막하고 뚜렷한 이 말을 가훈으로 삼고 현판을 만들어 걸고 아침저녁으로 돌아보고 거처하는 집 이름도 ‘매선당(每善堂)’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훈은 직계 조상이 지어 후손에게 물려주지만 드물게 임금으로부터 받은 경우도 있다. 조선조 세종 때 문신인 이정간(李貞幹)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 그를 경(卿)으로 높이고 다음과 같은 가훈을 내렸다고 한다.

‘가전충효(家傳忠孝) 세수인경(世守仁敬)’ 즉, “가정에서는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법도를 전승하고, 사회에서는 대대로 남에게 인자하고 공경하는 가풍을 지키도록 하라”는 말이다.

중종 때 학자인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 조카에게 준 다음과 같은 가훈은 적절한 비유로 나타낸 한 편의 시(詩)로서 가슴에 새기기에 충분하다.

“땅의 맥이 기름진 토양에 어울리면 풀이 반드시 무성하고, 한 집안이 화목하면 복이 생겨 반드시 번성할 것이다(土脈和沃則生草必茂 一家和睦則生福必盛).”

절실하고 구체적인 가훈

가훈은 이를테면 충, 효, 우애, 신의 등과 같이 단순한 유가의 기본 덕목을 나열하기보다는 조상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조금은 색다른 말일수록 후손에게 전달되는 힘이 강하다.

조선 초기 명신인 의성 김씨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은 부모를 섬기는 일과 제사 지내는 일을 비롯해 일반적으로 유가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조목조목 자상하게 훈시하는 가훈을 남겼다. 이와 함께 그는 ‘자손에게 경계하는 훈계(戒子孫訓)’로서 “남이 도모하는 일에 절대로 보증을 서지 말라(人之謀事 切勿立保)”고 분명히 이르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난 무인년 겨울에 우리 집안의 운수가 크게 침체되었는데, 이는 선군께서 남의 빚 일로 인하여 집안의 산업이 탕진된 때문이었다. 그동안 재화로 말미암은 실패는 하나하나 말로써 하기 어렵다. 당시 내 나이 열여섯 살이었는데, 할아버님을 모셔 받드는 예절과 엄격한 가정의 일에 종사하느라고 사방으로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면서 많은 빚을 차츰차츰 청산하여 겨우 집안의 명성을 회복하고 남처럼 먹고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이런 절절한 사연이 깃든 가훈이라면 후손으로서 지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조 때의 유명한 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자손들에게 특히 말조심을 당부하며 다음과 같은 가훈을 내렸다.

“귓속말은 듣지 말고, 새어나갈 이야기는 하지 말라. 남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을 어찌 말하고 어찌 들으리오. 이미 말하여 놓고 뒤에 경계하는 것은 곧 남을 의심하는 일이다. 남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곧 지혜롭지 않은 일이다.”

밀양 박씨 종친회의 박헌용 씨가 8대간에 지켜온다고 전하는 가훈을 보면, ‘건강보신(健康保身), 근검저축(勤儉貯蓄), 교육진력(敎育盡力), 대인구경(對人久敬), 적극청백(積極淸白)’의 다섯 가지로, 비교적 골고루 다루고 있어 포괄적이면서도 명료하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아들 준에게 준 글에서 말하기를, “책을 읽고 공부하는 데 어찌 있는 곳을 가리겠는가. 시골에 있든 서울에 살든 오직 뜻을 세우는 게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모름지기 부족함이 없이 힘을 다하여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할 것이지 하는 일없이 세월을 헛되게 보내서는 안 된다”고 이르고 있어서 후손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약점을 미리 알고 이를 경계하는 가훈도 있다.

주 최 부자의 독특한 가훈

우리나라 명문가의 가훈을 모은 책으로 김종권 씨가 펴낸 ‘명가의 가훈’이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소위 명문가는 거의 전부가 문인(文人) 가문이다. 이에 비해 경주 최 부잣집의 가훈은 참으로 독특하다.

필자는 경주 최 부잣집이 300년 동안 부를 지킬 수 있었던 ‘비밀’을 이 집에서 독특하게 내려오는 ‘가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집안에는 크게 세 종류의 가훈이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유가의 기본 덕목을 열거한 ‘가거십훈(家居十訓)’과 이 가문의 독특한 방침을 담은 ‘가훈(家訓)’, 그리고 특수한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인 ‘육연(六然)’이란 것이다. 가거십훈은 유가에서 흔히 보는 덕목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 있고 등등이다. 그중에 다른 가문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는 ‘여색을 멀리하라(遠女色)’는 것과 ‘술에 취함을 경계한다(戒醉酒)’는 것이 있다. 이것은 부자들이 흔히 재산을 탕진하게 되는 두 가지의 원인이 됨을 미리 알고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가문의 독특한 방침을 정한 여섯 가지의 ‘가훈’이다. 그것은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훈은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여러 대에 걸쳐 조상들이 절실한 경험으로부터 얻어졌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고 짤막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어 행동에 옮기기 좋다.

경주 최 부자 가문의 후손들은 이러한 가훈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후손 중의 최기영 진사는 5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조상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서 진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던 것이다. 경주 인근의 사람들은 지금도 최 씨의 흉년 구제의 덕을 잊지 않고 있으며 후한 인심을 칭송하며 오래도록 부자가 되기를 기원했던 것도 이 가훈을 후손들이 잘 지킨 덕이 아닐까 한다.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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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1-1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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