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우드 엘카코리아 대표

에스티로더 아라미스 크리니크 바비브라운 아베다 등 세계적인 명품 화장품의 메카, 엘카코리아가 2008년을 새로운 재도약의 거점으로 삼는다. ‘뷰티 뱅크’라는 새 브랜드로 온라인 마켓을 개척하고, 아라미스로 한껏 달아오른 남성 화장품 시장을 평정하겠다는 각오다. 198cm의 키에 수려한 외모로 화장품 업계의 조지 클루니로 통하는 크리스토퍼 우드 엘카코리아 대표를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나봤다."최고경영자(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Who do I hire?’입니다. 대표의 역량을 결정짓는 것은 어떤 부하 직원을 두고 있느냐죠. 또한 전 비즈니스에서 관계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누군가 제게 ‘어떤 일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관계(relationship)합니다’라고 대답해요. 제 직원, 고객, 협력사들과 항상 데이트한다고 생각해요. 데이트에 공들이고 잘 투자하면 행복한 결혼에 골인하잖아요.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투자이고 장기적인 성공을 의미하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종종 빠른 결과와 성공을 원하는 한국의 브랜드들이 단기적인 성공만 거둔 후 자취를 감추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우드 사장의 경영관은 확실한 자신에 차 있다. 그와 엘카코리아가 성공적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신감, 그리고 인재 중심 경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카코리아라고 하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프레스티지 뷰티 브랜드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세계 최고의 명품 화장품 회사라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엘카코리아는 에스티로더 그룹의 한국 자회사로 1991년에 설립됐다. 공식 명칭은 이엘씨에이 한국유한회사. 출범 이후 해마다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국내 명품 화장품 시장을 주도하는 선두 업체로 자리 매김했다. 현재 소속된 브랜드는 총 9개이며 2008년에 추가로 3개의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이다.“2007년 명품 화장품 시장의 평균 성장률은 7%이며,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한국의 명품 화장품 시장은 인구 비율에 비해 큰 편이에요. 화장품뿐만 아니라 패션 자동차 등 많은 부분에서 그렇죠. 특히 2007년에 눈에 띄는 성장률을 보였던 것은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인해 소비가 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008년에도 좋은 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현재 엘카코리아는 국내에서 명품 뷰티 브랜드의 대다수를 선점하고 있는 회사다. 국내시장에선 태평양과 LG생활건강이 대중적인 콘셉트의 화장품 매출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면세 부문에선 로레알그룹이 우위다. 하지만 백화점 매출로만 따져봤을 땐 엘카코리아가 그들보다 30~40% 더 큰 폭으로 앞서 있다. 화장품의 프레스티지 마켓을 꽉 잡고 있는 셈이다.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회사에도 근심은 있다. 백화점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시켜 주고 최대 매출을 안겨다 주지만 아무래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백화점 매장에만 매달리다간 간혹 마케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우드 사장은 새로운 판로 개척에 팔을 걷어붙였다.“얼마 전에 오리진스라는 브랜드를 홈쇼핑에서 판매해 봤어요. 기대 반 걱정 반 시도했던 프로젝트였는데 대성공을 거뒀죠. 방송 50분 만에 모든 제품이 매진됐어요. 그것도 샘플을 끼워주거나 할인해 주는 등의 특별한 프로모션이 없었는데 말이죠.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이제 온라인 시장을 개척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은 온라인과 격이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내세워 말렸지만 제 결심은 확고합니다.”엘카코리아는 온라인 전문 브랜드인 ‘플러트(Flirt)’와 ‘굿스킨(Goodskin)’을 곧 런칭할 예정이다. 플러트는 ‘남자에게 꼬리치는’이라는 뜻을 담은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굿스킨은 말 그대로 집중 스킨케어 브랜드다. 두 브랜드 모두 인터넷과 홈쇼핑 판매를 베이스로 한 프레스티지 라인의 화장품이다.“명품 스파 시장이 커지면서 유망한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떠오른 스파용 화장품 브랜드도 런칭합니다. 달팡이라는 브랜드인데, 원래 국내에 수입 에이전트로만 있다가 2007년에 엘카코리아가 전격 인수했죠. 2008년 1월 1일에 리런칭하면서 도산대로에 달팡 제품만을 사용하는 프리미엄 스파를 오픈했습니다.”다각도로 화장품 업계를 공략하고 있는 엘카는 2008년을 장식할 또 하나의 카드를 마련해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남성 화장품 시장 공략이다. 예전엔 그저 여성 화장품 브랜드의 서브 브랜드로 그저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던 남성 화장품 시장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남성들이 점차 외모를 가꾸는 것에 열의를 보이면서 관련 시장이 커지고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엘카코리아는 이때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고 한다.“2006년부터 남성 화장품의 시장 성장률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향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스킨케어 제품만 볼 때 성장률이 15~16%였죠. 여성 화장품 성장률과는 비교도 안돼요. 아라미스 랩시리즈를 대표 주자로 삼아 남성 시장을 공략할 생각입니다. 여타의 남성 화장품들은 여성 화장품에 ‘옴므’라는 글자를 붙여 단지 남성 라인을 만들어낼 뿐이지만, 아라미스는 처음부터 남성들만을 위해 태어났죠. 남자들 피부만 20년간 연구해 온 성과를 제품으로 보여드릴게요.”화장품 회사의 CEO답게 우드 사장의 사무실은 다양한 화장품으로 꽉 차 있다. 그중에서도 아라미스 랩시리즈 아이젤과 라메르의 아이크림, 그리고 크리니크 포맨의 제품들을 자주 사용한다.웬만해선 남녀 제품 가리지 않고 모든 신제품을 직접 써보고 평가한다. 그래도 남자가 색조 화장품은 써볼 수 없으니 부인에게 부탁하는 편이다. 우드 사장의 부인은 한국인이다. 동종 업계인 명품 회사 까르띠에에서 근무하던 그녀를 직원으로 스카우트하려다 아예 와이프로 스카우트했다는 일화는 업계 사람들이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로맨스다.“캐나다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한국만큼 절 매료한 나라가 없어요.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인 아내를 얻어 가정을 꾸리고 보니 한국인들보다 오히려 더 한국을 사랑하게 됐죠.”이토록 한국을 사랑하건만 그에게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해가지 않을 때가 있다. 부하 직원을 가르쳐야 할 때다. 우드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실무자가 옳은 결정을 하게끔 지원하고 이끌어 주는 쪽이다.“CEO가 회사의 모든 걸 결정하면 안 됩니다. 명령만 내리는 것은 쉽죠. 반면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려워요. 저는 대부분의 일을 실무자들이 결정하도록 격려하고 아주 중요한 사안 몇 개만 결정하죠. 매달 직원들과 점심 식사하는 자리를 가지고 ‘당신이 사장이 되면 뭘 가장 하고 싶은가?’라고 물어요. 직원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죠. 사장 면접까지 올라온 직원들은 거의 합격된 것이나 다름없어요.”명품 업계가 활성화되면서 엘카코리아는 여성들이 원하는 제 1의 직장으로 등극했다. 매번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많은 여성들은 명품 화장품 회사의 단면만을 보고 직원이 되길 갈망한다.“많은 지원자들이 우리 회사에서의 직장 생활이 매우 럭셔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우리는 럭셔리를 위해 일하지만 일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요. 모두 프로답게 매우 열심히 일하며 오히려 다른 회사보다 더 힘들 수도 있죠. 그래서 내부 인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오늘 아침엔 리셉션 데스크에 있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자리가 났으니 지원해 보라고 권유했어요. 일단 우리 회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제 실무 면접은 시작됩니다.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당연지사겠죠?”우드 사장은 10년 안에 국내 화장품 업계의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하고 다른 업체들을 큰 차이로 따돌려 업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고 있다.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지와 고집이 대단하다.그의 고집은 경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매운 떡볶이와 곱창을 좋아하는 우드 사장은 삼각지 평양집의 고집스러운 단골이다. 주인 3대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 이 집의 ‘양밥’이 끝내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에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