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의 뚝심 있는 좌군사, ‘명동백작’의 시인 박인환, ‘왕과 나’의 형조판서 박진성…. 어느 하나 주연은 없다. 주몽도 아니고 명동백작도 아니며 왕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도 아니다. 그럼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배우 차광수다. 그는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언제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묵직한 연기를 선사한다. 우리들은 그런 차광수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사실 차광수 이 세 글자는 좀 낯설다. 이름을 듣고 선뜻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초리가 지긋이 내려가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마스크 자체는 낯이 익다.그는 인터뷰를 위해 MONEY의 편집실을 직접 찾는 적극성도 보였다.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으며 툭툭 던지듯이 조크를 구사하는 그에게서 기존의 차광수가 아닌 새로운 차광수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국내 배우 중에서도 대표적인 ‘먹물’ 배역 연기자”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에 박장대소했지만, 이렇듯 유머러스한 그의 캐릭터가 실제 캐스팅에서는 너무 묻히는 게 아닌가 싶어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다.그는 언젠가 본인의 이런 장점을 살려 시트콤 연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잘 어울릴 것 같다.앉아서 책만 읽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매우 활달하고 정열적이다. 그래서인지 연기 말고도 그의 인생 스펙트럼은 예상외로 무척 넓었다. 거성 박명수의 아성이 부럽지 않은 매출을 자랑하는 ‘닭집 사장님’이며 핸디캡 7의 프로골퍼 지망생이다.그가 닭집 사장님이 된 것은 모 방송 프로그램에 우연히 출연하게 되면서부터다. 창업 프로그램에서 닭띠인 와이프를 위한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지금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핫썬’과 연이 닿았던 것. 평소 가족이 모두 치킨을 좋아했고 차 씨도 이곳의 웰빙 치킨을 먹어본 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우선 화곡동에 배달형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강남역에 대형 매장을 내서 운영 중이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바삭바삭한 맛을 내는 베이크 치킨은 웰빙 트렌드를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몰릴 때는 20~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 차광수는 아예 핫썬의 홍보이사로 취임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치킨 집을 경영한 지 만 1년이 돼가는군요. 한때는 작심하고 전국의 가맹점을 다 돌아다니며 사인회를 하면서 직접 강남 본점도 운영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어요.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의 허와 실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현장 실습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프랜차이즈와 비교해 볼 때 서민들을 위한 먹을거리 중에서 치킨은 정말 잘되는 편이죠. 강남점 하루 매출이 150만 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두운 부분도 많이 알게 됐어요. 상상도 못할 만큼 치열한 생존경쟁, 비정규직의 애환, 매출의 양극화 현상 등 다양해요. 돈 주고도 못 배울 것을 정말 많이 배웠죠.”그는 사업이 힘에 부칠 때마다 선배 연기자 선우재덕을 찾아갔다. 선우재덕은 일찍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는 스파게티 전문점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선우재덕에게서 많은 충고를 들었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업 선배의 충고는 세파에 지친 그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줬다.사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치킨집이 처음은 아니다. 삼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주경야독을 해야 했다. 그래서 대학도 재수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등록금을 1년여간 직접 벌어 모았다. 스무 살 때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작은 복사 가게를 운영한 것이 그가 독립적인 돈벌이를 위해 해 본 첫 경험이다. 이후 ‘동그라미’ 패스트푸드점의 지배인으로도 일해 봤으며 군 제대 후에는 실내 포장마차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대학 재학 때 방학 때마다 돈 벌러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죠. 학교도 근로 장학생으로 마쳤고, 연기를 전공한 덕에 극예술 연구회에서 연출료를 받아 생활하기도 했어요. 1990년도에 20만~30만 원씩 받았으니 꽤 괜찮았죠.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MBC 연기 20기 공채에 합격했어요. 경쟁률이 700~800 대 1로 무척 높았죠. 워낙 낙천적인데다 배우 훈련을 틈틈이 해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합격한 것 같아요. 당시 함께 시작한 한석규 감우성 박철 등 동기들과는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죠.”그는 올해로 연기 19년차다. 첫 배역은 가마꾼이었으며, 처음으로 맡은 비중 있는 역할은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의 연극반 반장이다. 그가 처음 맡은 이 배역의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그 자체로 굳어졌다. 늘 지적이고 선한 역할만 맡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이미지 변신을 하려고 한다.가끔 악역도 자청하면서 꾸준히 노력 중이다. 요즘은 성악 레슨을 받는 중인데, 그동안 벼르고 별러 왔던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어서다.“이제는 스스로가 중견이라 생각해요. 우연히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들이 모두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차광수가 출연하면 드라마 히트한다’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죠. 저에겐 고마운 일이에요. 몇 안 되는 톱스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선택되게 마련인데, 저에겐 유난히 좋은 배역이 많이 들어와요. 운도 좋지만 제게 그만큼의 달란트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배우는 팔자에 없으면 못하는 직업이거든요. 제게 연기는 운명과 같죠.”그가 연기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골프다. 그의 골프 경력은 12년. 현재 연예인 골프 구단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취미로 시작한 골프가 5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일부가 됐다.SBS 골프채널 주최로 열린 일본 대회에 배우 이종원과 함께 참가한 차광수는 파4홀에서 315~320야드의 비거리로 원 온을 2번이나 뽑아내며 ‘괴력의 장타자’로 등극했다. 현지 갤러리들은 그를 가리켜 ‘괴물이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골프채널 관계자들은 회의를 갖고 ‘차광수 프로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그는 국내 유명 프로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주위의 권유로 2002년부터는 프로 테스트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8번 떨어졌다. 골프에만 전념해도 힘들 터에 드라마며 사업이며 너무 많은 욕심을 냈기 때문이다.“저의 프로 도전은 항상 현재진행형이죠. 전 골프를 사랑해요. 요즘도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라운딩을 나가는데, 일을 하다가도 필드에 나갈 생각만 하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흥분됩니다. 골프를 하면 자연스레 젠틀맨이 되고, 잡념이 사라져요.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고 방심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인생에나 건강에나 모두 도움이 많이 되고, 남을 배려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절로 인격 수양이 됩니다.”골프를 사랑하는 젠틀맨 차광수의 재테크는 어떠할까. “국내외 펀드 상품 10여 개에 가입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덕에 은행에 들어가면 바로 VIP실로 직행할 수 있죠. 얼마 전엔 그곳에서 추천해 준 적립식 디스커버리 펀드가 68%의 높은 수익률을 얻어 재미 좀 봤죠. 현재는 중국과 브릭스 펀드에 목돈을 넣어놨는데 아직 기대한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에요. 올 2월이나 3월까진 기다려봐야겠죠. 베이징 올림픽 전엔 한번 터지지 않겠어요? 펀드에 넣어 놓은 돈이 많아서인지 요즘 경제신문과 경제 TV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챙겨보고 있습니다.”그 정도 위상의 여느 연예인들과 다르게 그는 국산 그랜저 TG를 탄다. “외제차 굴릴 돈 있으면 차라리 펀드에 투자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야무진 경제 마인드가 엿보인다.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