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화 험멜코리아 회장

방향 소통으로 대표되는 웹 2.0시대에는 정보를 취합해 가공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적 네트워크’는 성공을 위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다. 복리의 마술이 재테크의 묘미인 것처럼 폭넓은 인간관계는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게 마련이다.변석화 험멜코리아 회장은 ‘인 테크’를 현장 경영에 잘 접목해 성공한 케이스다. 실제로 그와 인터뷰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달 전부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1개월간 스케줄 표가 꽉 짜여 있어 곤란하다’는 것뿐이었다. ‘중소기업 사장인데 뭘 그럴까’라는 생각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어렵게 그와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 가장 먼저 꺼낸 말 역시 ‘스케줄이 그렇게 꽉 찼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다이어리를 기자에게 보여줬다.그의 다이어리에는 2개월 동안 주말, 평일을 가릴 것 없이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루 4~5개의 미팅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조찬 모임부터 저녁 약속까지 7개가 넘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현재 그가 맡고 있는 공식 직함은 험멜코리아 대표이사와 대학축구연맹 회장, 프로축구 2부리그 노원험멜 구단주 등 3개다. 헴멜코리아 산하에 2개의 자회사가 있지만 요즘 같아선 대학축구연맹 회장 일로 더 바쁘다. 실제로 그는 3월과 4월 내내 대학축구리그 예선 경기로 지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변 회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 시절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축구’다. 서울시 노원구 조기축구회인 월계축구회를 조직한 것이 오늘날 그를 여기까지 인도했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현 경남FC코치)와 박지성의 스승 이학종(수원공고 감독), 안종관(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이 월계축구회가 배출해낸 스타플레이어다.“가난한 동네에서 친구들끼리 공을 차면서 친목을 다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쁜 길로 빠지지 말고 오로지 가슴에 태극기를 달 때까지 뛰자’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죠.”그의 월계축구회 자랑은 끝이 없다. 월계축구회는 현재 회원 수 40명의 국내 최고 수준의 조기축구회로 성장했다. 축구 실력도 상당해 매년 지난 2006년 마카오에서 열린 8개국 초청 국제OB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험멜코리아 임원, 부·차장급의 80% 이상은 월계축구회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변 회장에게 있어서 축구는 삶 그 자체고, 오늘날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 역시 축구다. 지난 2000년부터는 KBS스포츠와 SBS스포츠, 경인방송 등에서 축구 해설자로 활동했다.1994년 동대문운동장 부근에 5㎡짜리 작은 체육사를 설립한 그는 사업 초창기 월계축구회의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월계축구회를 통해 탄탄한 인맥을 쌓은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안정세를 찾아가자 그는 독자적인 스포츠 브랜드 개발을 꿈꾸게 된다.“스포 스타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았죠. 당시만 해도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등 외국 브랜드가 판치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로는 견적조차 받기 어려웠습니다.”그가 사업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98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포츠 박람회인 이스포가 계기가 됐다. 배포 하나만 믿고 무작정 독일 땅으로 건너간 그는 행사에 참가한 수많은 외국 브랜드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는 마찬가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작은 체육사에 브랜드 사용권을 줄 리가 만무했다. 당시 그가 접촉한 업체들은 한결같이 ‘회사 자본금이 최소 150억 원은 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덴마크 스포츠 브랜드인 험멜을 처음 만난 것도 그때다.“험멜 쪽에서도 다른 브랜드와 마찬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험멜의 디자인 철학이 마음에 들었어요. 북유럽 특유의 실용성이 강조된 브랜드인데, 다른 브랜드에 비해 특별히 좋은 조건을 내건 것은 아니었지만 무작정 마음이 끌리더군요.”뚝심 하나로 살아오던 그는 무작정 덴마크에 있는 험멜 본사로 날아간다. 그리고는 4일간을 덴마크 본사에서 보냈다.“사실 저로선 잃을 게 없었어요. 본사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험멜을 알릴 자신이 있다. 믿어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죠.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본사 관계자가 ‘열정에 타오르던 제 눈매를 보고 믿음이 싹텄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대학 시절 복싱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웃음)우리말로 발음할 때 훔멜(Hummel)인지 험멜인지를 고민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던 브랜드를 들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곧바로 월계축구회 인맥을 총동원해 마케팅을 벌었다.“때마침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상태였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것이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수많은 브랜드들이 물량을 줄이거나 지사를 철수하는 때 우리는 반대로 물량을 배 이상 늘렸습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구매력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죠.”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스포츠 의류 시장은 곧 정상을 회복했고 때마침 물량을 넉넉히 확보한 험멜코리아는 조금씩 사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이 133%나 급성장했다.하지만 시류를 잘 탔다는 것만으로 그의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2%가 부족하다. 또 다른 비결은 무엇일까. 업계에서 험멜코리아는 조직력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대표이사부터 사원까지 똘똘 뭉치는 결속력이 다른 업체에 비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비결 역시 그는 축구에서 찾는다.험멜코리아의 초창기 직원들 상당수는 축구 선수 출신이다. 외환위기로 실업팀이 해체되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후배들을 그는 과감히 직원으로 채용했다. 2부 리그(N리그) 구단인 험멜축구단을 창단한 것도 꿈을 접은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남들이 미친 짓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죠. 지금도 매년 20억 원씩 적자를 보며 축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당시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축구단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좋아하던 축구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게 되니 직원들의 결속력은 더욱 커져갔다. 지금도 험멜코리아 직원들은 1주일에 3회 이상씩 축구 경기를 벌일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노원험멜축구단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사내 축구 동호회는 초급, 중급, 상급자로 분류할 정도로 선수층이 두텁다. 상급자 축구팀은 전국 동호인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서울시 대표로 출전했다. 변 회장 역시 이 축구대표팀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동하고 있다.“회사 조직이라는 것이 축구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축구는 나보다 팀을 위해서 뛰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만약 1명이 퇴장 당해 10명이 경기를 뛰어도 나머지 1명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이 바로 축구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죠. 지금 축구 경기에 나설 때면 주전 선수 11명을 포함해 30여 명이 참가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막상 시합이 끝나면 출전선수보다 서포터나 후보 선수들에게 승리의 공을 돌리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죠. 회사 일도 마찬가지입니다.”험멜코리아의 영업 전략은 ‘고객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로 요약된다. ‘험멜(Hummel)’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싶다는 곳이 있다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가는 발품식 영업 전략이 주효했다. TV나 신문광고 대신 직원들이 발품을 팔아가며 영업을 벌이니 가격 경쟁력도 생겼다.직원들 상당수가 축구 선수 출신이거나 사내 동호회를 통해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성향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는 것 또한 험멜코리아의 장점이다. 지난해 많이 판매한 골키퍼용 의류도 개발 단계에서부터 전직 골키퍼 출신 사원이 직접 입어 보고 제품을 만들어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물론 변 회장 역시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해당 제품을 직접 착용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험멜코리아는 의상 도안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 준다.험멜코리아는 2000년 이후 험멜 본사가 주는 우수 영업상(Team player of the year)을 5년 연속 수상했다. 구체적인 매출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 세계 30개 험멜 지사는 물론 덴마크 본사보다도 매출액이 크다는 것이 변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험멜코리아는 2개의 공장과 전국 92개의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 용품 회사로 성장했다.요즘 험멜의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다. 현재 프로축구 1부 리그(K리그) 경남FC, 전북현대, 부산아이콘스, 광주상무와 프로농구(KBL) 원주 동부화재 프로미, 실업배구(KOVO) 천안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스포츠 관련 용품을 후원하고 있다. 이 중 원주 동부와 천안 삼성화재는 올해 각각 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남들이 어떻게 알고 우승팀에 용품을 후원할 생각을 했느냐고 하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축구 용품 전문 브랜드로 알려졌는데, 동부와 삼성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농구, 배구 용품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습니다.”그는 웬만해선 험멜코리아와 관련해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대학축구연맹 회장직을 겸하고 있어 자칫 “회장직을 사업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험멜코리아 대표이사 회장으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지금도 우리 회사 임원들은 ‘축구와 관련된 지출을 회사로 돌린다면 지금보다 회사 매출이 3배 이상 커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돈을 더 많이 벌어 그때 더 많이 투자하자’고 말합니다.평일에는 회사에서 만나고 휴일이면 운동장에서 직원들을 만나니 집에선 ‘아예 축구와 결혼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험멜코리아가 이렇게 단시간 내 국내 스포츠 의류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결국 축구 때문 아니겠습니까.”축구 마니아다운 대답이다. 험멜코리아는 앞으로 골프, 등산 용품 개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며 스포츠 에이전트와 축구 관련 이벤트를 담당하는 ISP, 어린이 캐주얼 브랜드인 TCM을 성장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대학축구연맹 일도 더욱 의욕적으로 챙길 생각이다.“기회가 되면 축구 한 게임 해봅시다. 상대와 더 가까워지는 것 중 스포츠만 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우리 회사 하급팀하고 한 번 경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하급팀이라고 해도 웬만한 동네 축구팀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웃음)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며 던지는 이 제의에서도 축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묻어났다.험멜코리아의 영업 전략은 ‘고객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로 요약된다. ‘험멜(Hummel)’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싶다는 곳이 있다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가는 발품식 영업 전략이 주효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