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장세’가 연출되고 있다. 국제 유가의 움직임에 따라 뉴욕 증시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형국이다. 그뿐만 아니다. 유가의 움직임은 인플레이션 심리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다 보니 ‘R(경기 침체)의 공포’가 수그러든 자리에 ‘I(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자리 잡았다가 다시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풀 꺾인 줄 알았던 ‘R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쳐들곤 한다.이뿐만 아니다.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발걸음도 마찬가지다. 금리 동결을 준비하다가 어느새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고, 또다시 금리 동결에 무게를 두는 등 언뜻 보면 ‘갈지자(之)’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근인은 유가다. 유가 오름세가 진정돼야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을 듯한데 불행히도 아직은 아니다. G8(선진 8개국) 재무장관 회의와 산유국 및 비산유국 회의가 잇따라 열렸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은 건 없다. 그저 “유가 안정과 인플레이션 압력 해소를 위해 가능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수사적 합의만 있을 뿐이다.따라서 당분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유가와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그리고 경기 침체 탈출 여부 등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진 투자 태도가 요구된다.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국제 유가의 상승세가 거침없다. 지난 6월 중순 140달러를 넘는 등 상승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런 유가 상승세는 지구촌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자동차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자동차의 운행 거리가 줄 정도로 휘발유 값 상승에 민감하다. 중후장대한 자동차를 생산하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전기자동차 등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주력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기름 값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화물차 운전사들의 항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모든 경제 활동의 종합체라는 증시는 말할 것도 없다. 뉴욕 증시의 경우 유가가 오르면 내리고, 유가가 내리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는 달러화조차 유가 움직임에 따라 흐름이 바뀔 정도다. 가히 ‘유가 장세’라고 할만하다.뉴욕 증시를 비롯한 증시가 유가의 동향에 민감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고유가 행진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부채질해 미국 경제의 최대 동력인 소비를 위축하고 기업의 수익성도 떨어뜨리고 있다는 우려감이다. 이는 미국 경제 회복의 지연을 의미한다. 결국 한동안 사그라졌던 ‘R의 공포’가 ‘I의 공포’와 함께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두 번째는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결국은 FRB의 금리 인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미국 중서부의 홍수로 인한 곡물가 급등까지 겹쳐지는 형국이다. 금리 인상은 주식시장엔 악재다. 실제 올해 말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여겨졌던 FRB는 최근 금리 인상 쪽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월가에서는 오는 9월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따라서 당분간 중요한 게 유가의 움직임이 될 수밖에 없다. 유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배럴당 200달러를 예상한다.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80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월가의 대체적인 견해는 하반기로 갈수록 유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다만 그 속도는 가파르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월가 이코노미스트 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연말 유가는 배럴당 113.34달러를 기록한 뒤 내년 6월엔 101.90달러로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됐다.고유가가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결과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성장은 정체되고 물가만 오르는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오일 쇼크가 강타했던 지난 1970년대 처음 나타났다.만일 고유가 상태가 지속되면 소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소비는 미국 경제에서 70%를 차지한다. 소비가 위축되면 성장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제조업체들이 물건 값에 전가하려고 한다. 그러면 물건 값이 뛰고 인플레이션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성장은 안 되고 물가만 오르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를 막으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경기를 생각하면 선뜻 그럴 수도 없다. 한마디로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게 된다. 그저 ‘세월이 약’이란 말만 믿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지난 1970년대 세계 경제가 여기에서 빠져나오는데 15년이 걸렸을 정도니 그 무서움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물론 지금 상황은 1970년대와 같지 않다. 유가가 오른다고는 하지만 당시와는 다르다. 국제적 공조 체제도 나름대로 구축돼 있다. 또 지난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에서 봤듯이 FRB의 대응 능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따라서 섣불리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으로 보는 것은 금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FRB의 태도다. 과연 FRB가 유가 움직임에 따라 어떤 금리 정책을 취하느냐가 증시는 물론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FRB의 태도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상황이 가변적이다 보니 투자에 어려움이 많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은 어떻게 할까. 그는 이에 대해 “시장은 보지 않는다. 경제도 전망하지 않는다. 기업 가치만을 보고 있다가 주가가 가치에 비해 싸졌다고 판단될 경우 주식을 매입해 장기 보유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버핏에 국한해서다. 버핏이 아닌 일반인들은 시장의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은 채 값싼 주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다. 과연 지수를 충실히 반영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특별히 안전하고 또 경우에 따라선 고수익을 안겨줄 종목만을 엄선해 베팅할 것인가. 역시 선택의 문제다.이런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게 버핏의 ‘역사적 내기’다. 버핏은 한 헤지 펀드와 10년 후 수익률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 버핏은 S&P500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뱅가드라는 운용회사의 인덱스 펀드에 베팅했다. 반면 헤지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펀드에만 돈을 운용하는 ‘프로테제 파트너스’라는 헤지 펀드는 자신들이 엄선한 5개 헤지 펀드의 수익률이 더 좋을 것이라는 데 승부를 걸었다.내기 금액은 무려 100만 달러. 버핏과 프로테제는 각각 32만 달러를 냈다. 총 64만 달러로 10년 만기 미 국채를 샀다. 10년 만기 후 원리금은 100만 달러로 불어난다. 이 돈은 이긴 쪽이 지정하는 자선재단에 기부된다.승부는 예측불허다. 버핏이야 천하가 다 알 정도로 투자의 귀재다. 평소 “헤지 펀드가 고객들을 현혹해 수수료만 착취하는 만큼 초보자는 차라리 수수료가 적게 드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라”고 권고해 온 만큼 자신이 베팅한 인덱스 펀드의 10년 수익률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프로테제도 자신 있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02년 설립된 이후 작년 말까지 누적수익률이 95%에 달한다. 인덱스 펀드를 누르는 건 누워서 떡먹기라고 주장한다.변수는 수수료다. 승부는 표면수익률이 아니라 각종 수수료를 제외한 실질 수익률을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뱅가드의 인덱스 펀드는 연 0.15%의 수수료를 뗀다. 반면 헤지 펀드는 연 2.5%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다. 게다가 수익의 20%를 성과보수로 가져간다. 이를 감안하면 프로테제가 지정한 헤지 펀드의 수익률이 인덱스 펀드보다 월등히 높아야 이길 수 있다. 버핏으로서도 나름대로 승부를 자신하는 이유다.누가 이길지는 10년 후 결정된다. 따라서 지금 뭐라고 말하긴 곤란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황이 가변적이라도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지키는 게 정도라는 점이다. 버핏처럼 고집스럽게 장기 투자를 고수하든지, 프로테제처럼 자신의 변별력에 베팅하든지 노선을 분명히 해야지, 줏대 없이 남들 따라 하기에 나섰다가는 큰코다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