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 and Crafts

토리아 여왕 시대, 대영제국은 한껏 위용을 떨치며 세계의 4분의 1을 통치했다. 왕조의 전성기인 1851년,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욕구를 분출하는 최초의 세계박람회가 런던 하이드 파크의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에서 열린다.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계화는 미덕이 됐고 시인들은 공장의 굴뚝에서 솟구쳐 오르는 검은 연기를 찬미하는 글을 발표했다.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속히 재편돼 가고 사람들은 기계화의 도구로 변해갔다. 훗날 영화 ‘모던 타임스’를 통해 찰리 채플린이 풍자했듯이 노동의 즐거움이나 일로서 얻을 수 있는 성취의 기쁨은 점차 사라졌다. 이즈음에 기계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그룹이 있었는데 그 선봉에 선 이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러스킨의 주장은 그의 저서와 강의로 전 유럽에 알려졌으며 특히 ‘베니스의 석조건물’이라는 책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이는 중세의 로망을 환기시키면서 고딕 리바이벌이라는 사조를 낳았고 템스 강변에 고딕의 절정 웨스트민스트가 건립되는 계기가 된다. 중세를 재조명하면서 고딕 건축과 중세풍의 기사도, 종교적 열정들은 많은 예술가들이 따라야 할 규범이 됐다. 문화 경제학이라는 장르도 이즈음에 발아하고 있었다.러스킨은 ‘진짜 경제학’이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craft ship)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했는데 이 전통은 소위 유럽의 명품들이 수공예품이라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조립 라인에 필요한 기능은 반복을 요하는 단순한 것으로, 중세의 유산인 길드(guild)가 사라져 가자 공예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중세의 수공업 전통을 회복시키려는 움직임들이 강력하게 나타났다. 1851년 발행된 러스킨의 ‘베니스의 석조건물(The Stones of Venice)’ 제2권 6장, ‘On the nature of Gothic-고딕의 본질’이라는 장에는 고딕적 특징, 즉 도덕적 요소로서 거친 다듬질, 변화의 풍부성, 자연의 존중, 기괴성, 강직성, 과잉성 등의 여섯 가지를 들었다. 여기에서 그는 중세 예술을 ‘노동의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후 모리스는 이 글을 ‘금세기에 필연으로 출현한 가장 가치 있는 발언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러스킨에게 중세의 수공업 제도는 그것을 가능케 한 사회의 행복하고 동질적인 정신의 표현이었다. 중세의 직인들은 자유롭고도 즐거운 노동의 결과로서 고딕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는 점을 찬양했다. 모리스는 이에 깊이 공감했으며 그가 평생 이념으로 간직하게 된 것이 결국 아트 앤드 크래프트 사조(Art and Craft movement)의 정신이자 출발이 된 것이다.모리스 회사는 대중이 사용할만한 가격으로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 금속 세공, 조각, 자수, 가구, 벽화와 벽 장식 등 모든 디자인 영역의 작품을 제작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미션 스테이트(mission states)를 발표했다. 그 일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영국 건축가들과 뛰어난 예술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 나라 장식 예술은 상당히 발전했다. 그러나 장식 예술의 성공한 예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해도 상당히 유치하고 또한 단편적이어서 우리들은 협동 작업을 통해 이러한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들 중에는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어 벽 장식이나 여러 가지 모양의 장식들을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장식품을 생산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해 왔기에 다음과 같은 제품들을 우리 스스로 만들 목적으로 이 회사를 설립한다. 우리가 좋은 장식이라고 하는 것은 비용에 있어서의 사치가 아니라 취미에 있어서 사치를 의미하며 추측하는 것보다 싼 가격임을 밝힌다.”초기 단계에는 별 주문이 없었다. 그러나 곧 기회가 왔다. 마침 1861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박람회가 1년 늦은 1862년 사우스 켄싱턴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 모리스의 공예품들은 주목을 받았으며 두 개의 품목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했다. 모리스는 스테인드글라스, 가구, 자수 등을 출품했는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자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그는 자연으로부터의 모티브를 처음으로 그렸는데 과일 무늬와 격자 무늬, 데이지 무늬, 석류 무늬를 디자인한 것은 1862~64년이며 점차 원숙한 경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1875년에 이르면 인체에 무해한 식물 염료를 실험하기 시작해 직물, 카펫, 태피스트리 등에 아름다운 염색 작품을 남겼으며 1877년 처음으로 ‘장식 예술에 관하여’를 강연했다. 1882년 그동안의 강연을 모은 ‘예술을 위한 희망과 두려움’을 발간한다.“예술과 문화가 식탁의 나이프나 포크의 문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꼭 상기해야 할 것은 문명이 노동자들을 가련하고 빈약한 생활에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생활의 참된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 할 일이다. 미적 자각과 창조, 눈에 보이는 참된 즐거움의 향수, 이와 같은 일이 일용할 양식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삶이야말로 우리들이 누려야 할 생활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생활은 어떤 사람에게도 또한 어떤 무리에게도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놀랄만한 논리와 실천으로 모리스는 세계의 젊은 예술인과 지성들을 사로잡았기에 이 예술 운동은 ‘아트 앤드 크래프트 무브먼트’로 불리며 영국에서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르누보(Art Nouveau)로 꽃을 피운다. 아트 앤드 크래프트 무브먼트는 근대화 출발점에 있어 기계 생산의 전면 부정이라는 전근대적인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혼미하고 저속한 빅토리안 전성기를 누리던 건축계와 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줘 건축가를 비롯해 예술에 관련된 사람들을 각성시켰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1. 로만 글라스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유리와 단순한 브라스로 제작한 샹들리에. 가급적 소재의 본질을 이용하면서 장식적인 효과를 연출했다.2. 로만 블로운 글라스의 기법으로 투명한 백색을 만들기 위해 화학 처리하는 방식을 탈피해 녹색 유리와 합성 퓨터로 접합한 와인 디캔터.3. 모리스와 함께 했던 윌리엄 드 모건의 도자기. 이슬람적인 요소들을 적절히 표현해 인기를 얻고 있다.4. 아트 앤드 크래프트 스타일의 펜던트. 에나멜과 앰버로 구성해 다듬었다.5. 모리스 스타일의 장식장. 영국 전통의 수공예 기법으로 다듬었다.6. 솔리드 오크로 만들어진 아트 앤드 크래프트 맨틀 클럭. 최근 경매에서 인기리에 낙찰됐는데 모리스의 소박함과 전통, 소재의 노출 등의 정신이 잘 나타난다.7. 중세를 모티브로 제작한 의자.8. 모리스가 디자인한 러그. 식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완성, 수많은 리프로덕션이 거래되고 있다.9. 모리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번 존스 작품으로 사도 바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했다.10. 데이지 벽지로 모리스가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그렸다. 반복되는 문양과 부드러운 2차원의 평면감이 정겹게 느껴진다.11. 모리스가 말년에 출간한 제프리 초서의 일부. 초서의 책은 현재 경매가로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며 많은 복제본이 나오고 있다.12. 독특한 디자인으로 안정감을 주는 의자. 특히 오크와 텍스타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디자인에 크래프트 정신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