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제 44호 (2009년 01월)

문화 향기로 기운 찬 새해를

기사입력 2009.01.15 오후 03:55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분명 새해가 주는 선물이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나 1월이 되면 억겁을 살았을 해를 새로운 해로 만들고 누가 거들 필요 없이 스스로 새로워질 줄 안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피할 묘책도, 남에게 떠넘길 술수도 모르는 소박한 사람들. 결국 삶의 기운을 추스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간다. 올해도 애써 희망을 챙겨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각종 경제지표들의 잿빛 전망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분명 새해에도 헌 날은 계속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사실 수출 의존도가 심한 한국 경제로서 경제 위기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제와 닮았고, 10년 전 그 어느 날과도 똑 닮았다. 이 사회는 10년째 고꾸라진 그 자리에서 계속 고꾸라지고 있는 것이다. 소득 불균형이 날로 심화되는 현실 앞에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을 수는 있다. 다만 개인 행불행의 모든 원인을 경제 탓으로만 돌리고 관망하는 건 너무 쉬운 해답이 아니냐고 묻고 싶다. 환율과 유가가 제자리를 찾고 나면 과연 우리 삶에 신세계가 도래할까.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금강산의 존재는 깡그리 잊은 채 먹고사는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도 풍요로워 보이진 않는다. 세속적 욕망이 채워졌더라도 정신적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요, 이 정신적 공허함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라고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도 잃을 순 없다. 메말라 쩍쩍 갈라진 감수성을 계속 방치해서도 안 된다. 사람을 말해야 할 곳에 자본을 말하는 사회, 더불어 살아야 할 곳에 끝없는 경쟁만을 재촉하는 사회에 함몰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온 세계가 촌각을 다투면서 앞을 향해 달려가는데 부러 돈과 시간을 투자해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은 인간 삶에 필수적인 용골(龍骨)이라고 할 수 있다. 배를 띄울 때 뭉툭한 아랫도리에다 물이나 쇠뭉치를 가득 채워 배의 무게 중심을 낮추는데, 이 부분을 용골이라고 한다. 큰 배일수록 용골이 크고 무거워야 하는 까닭은 바다의 풍랑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용골은 속도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제대로’ 속도를 내기 위한 필수품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 탈 없는 사치품’이 아니라 인생을 항해할 때 봉착하는 위기를 버텨낼 힘의 근원인 것이다. 결국 공연계의 위기는 곧 인간적 삶의 위기에 다름 아닐지 모른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속한 고양아람누리, 고양어울림누리 양대 아트센터에서도 공연은 지속된다. 2009년은 고양문화재단이 창립 5주년을 맞는 해로서 모든 공연장을 보다 세련되게 특성화하고 고환율과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공연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2009년에는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재즈 거장 매코이 타이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발레 ‘춘향’ 등 맛깔스럽고도 다양한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다.

훅 닥쳐온 2009년을 어찌 살아내야 할지가 모두의 숙제일 텐데, 공연장이 바쁜 삶에 잠시나마 여유와 생의 의미를 되돌려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문화 향기로 기운 찬 새해를
조석준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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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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