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44호 (2009년 01월)

‘반값 아파트’급증 큰손들 입질 시작

기사입력 2009.01.15 오후 04:33

현금 동원 능력이 큰 큰손들은 지금의 경매시장이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값 아파트’급증  큰손들 입질 시작

압구정동에 사는 고액 자산가 김모 씨는 요즘 시간만 나면 경매가 열리는 서초동 법원을 찾는다. 김 씨는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지만 2007년 말 가입한 펀드가 반 토막 나면서 다시 부동산으로 관심을 돌린 것. 그가 현재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 데에도 경매가 큰 도움이 됐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덕에 넉넉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그는 지난 2001년 우연히 알게 된 경매 전문가의 도움으로 경매 투자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그해에 평생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김 씨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원동의 아파트와 강북 재개발 구역 지분을 매각해 2009년 초 다시 경매에 도전할 생각이다.

법원 경매는 통상 불황기 때 가치가 빛나는 투자 방법이다. 채무자가 이자, 원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을 경우 채권자는 해당 부동산을 처분해 달라고 법원에 강제처분을 신청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경매는 시작된다. 채무자 입장에선 부동산을 강제로 잃게 되는 아픔을 겪지만 채권자 입장에서 볼 때 경매는 채권을 현금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최근 경매시장은 때 아닌 호황(?)이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경기가 바닥을 향해 내려가면서 부동산 거래가 사실상 막힌 데다 대출이자 상승으로 경매로 내몰리는 부동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정든 집을 경매로 넘겨야 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듯 싼값에 부동산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금은 절호의 찬스다.

현금 동원 능력이 큰 큰손들은 지금의 경매시장이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 디지털태인이 조사한 월별 경매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2008년 11월 경매로 나온 주거용(아파트, 연립, 다세대, 단독주택 포함) 부동산은 1만2229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1만277건)보다 19.0%, 연초(8702건)보다는 40.5% 증가했다. 이에 비해 낙찰가율, 낙찰률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8년 11월 아파트 낙찰률은 29.6%로 전달(36.7%)보다 7.3% 떨어졌다. 10개 물건 중 낙찰되는 물건이 3개가 채 못 된다는 뜻이다. 11월 아파트 낙찰가율은 71.5%였다. 호황기 때 아파트 낙찰가율은 90~100% 선을 오갔다.
‘반값 아파트’급증  큰손들 입질 시작

물건 수는 늘어나지만 정작 투자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데다 이자, 부동산 경기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과거와 같은 레버리지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 입찰은 오전 12시를 겨우 넘겨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입찰자들이 많은 2008년 초만 해도 각 경매계당 마감 시간이 오후 2~3시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최근 경매시장에선 3회 이상 유찰되면서 입찰가가 감정가의 50%까지 떨어진 ‘반값 물건’도 크게 늘었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 지지옥션 조사에 따르면 12월 12일~2월 2일까지 감정가의 50% 이하에서 입찰이 진행되는 서울지역 아파트는 45개였으며 주거용 부동산 전체는 74개였다. 이에 비해 2007년 11~12월 두 달 간 서울에서 나온 반값 경매 주택은 총 8건이었다.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 받는 사례도 과거와 비해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지난 2008년 11월 25일 입찰이 열린 강남구 역삼동 823의 7 우정에쉐르 12층 1203호(전용면적 17.2㎡)에도 단 1명이 응찰해 감정가 1억 원의 101%인 1억98만8000원에 낙찰 받았다.

큰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은 관망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앞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 경매 투자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을 수밖에 없다는데 전체적으로 동감한다. 현재로선 우선 현금을 확보하는 일부터 서두르는 모습이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경매실장은 “2000년대 초반 경매로 재미를 본 고객들의 문의 전화와 상담이 대폭 늘어난 것만 봐도 경매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상담 내용도 구체적인 물건을 알아봐 달라는 것보다는 “언제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좋으냐” “앞으로 유망한 상품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강 실장은 “고액 자산가들 상당수가 이미 상당수 물건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마도 전문가의 입을 통해 경매 투자 매력을 재차 확인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값 아파트’급증  큰손들 입질 시작

공동 투자도 각광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소액으로 다수가 참여하는 공동 투자가 아니다. 참여 인원은 가까운 지인 2~3명이 전부다. 아직까지는 개인당 3억~10억 원의 자금으로 중소형 빌딩, 상가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8년 11월 서울 수도권에서 나온 근린시설 낙찰가율은 60.5%였고 입찰 경쟁률은 1.5 대 1을 기록했다. 분당 서현동에 사는 최모 씨는 12월 초 분당의 7층짜리 상가를 친구 2명과 함께 감정가의 64%인 20억 원에 낙찰 받았다. 앞서 11월에는 안양의 모 상가를 30억 원에 낙찰 받았다. 이 건물은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는 등 대중교통 여건이 뛰어나 향후 투자 가치도 기대된다. 1층에는 유명 대형 슈퍼마켓이 입점해 있었는데 최 씨는 이 업체와 임대 계약을 새로 맺는 등이 건물에서 현재 월 1억 원의 임대 수익을 얻고 있다.

미디어에 자주 이름이 오르는 모 은행 프라이빗 뱅커(PB)는 얼마 전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고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해당 은행에서 경매 신청할 물건을 사전에 알아봐 줄 수 있냐는 것. 이 PB는 워낙 예치 금액이 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은행 내부 정보를 외부로 알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PB는 “요즘 이같이 유망한 경매 물건을 사전에 알아봐 줄 수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가끔 걸려온다”며 “그럴 때마다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뺀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부 고객은 제2금융권에서 신청한 경매 물건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 채무자와 협의를 거친 후 입찰이 열리기 직전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때 투자자는 채무자의 채무를 전액 변제하며 경매 취하와 동시에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변경해 취득한다. 앞으로 입찰가가 감정가의 50% 이하로 내려가는 물건이 늘어나면 저가 취득이 가능한 경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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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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