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Castellet

살이 좋은 날이면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와 정원이 아름다운 최고급 호텔에서 머무르다 지중해변의 도시들로 여행을 떠나는 휴가. 영화와 소설에서 접해봤음직한 장면들을 몽땅 끌어다 이 스토리에 어울릴만한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봐도 그저 상상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맴돌 뿐 쉬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상상력의 한계를 깨우치기라도 하듯 ‘화려한 휴식’의 사이클을 완성한 곳이 있다. 프랑스 남부 보클뤼즈(Vaucluse)의 작은 마을 카스텔레(Castellet)다. 유럽의 부호들은 물론 대서양 건너 신대륙의 저명인사들도 동경할 만한 휴식이 있는 곳이다.마르세유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카스텔레는 세 가지의 테마로 접근해 볼 수 있는 마을이다. 최첨단 모터 레이싱 서킷, 자가용 비행기와 특별 전세기를 위한 작지만 품위 있는 국제공항, 그리고 중세 유럽의 장원을 닮은 고급 호텔. 마치 하나의 복합 단지를 이루듯 이 세 시설들이 서로를 지척에 두고 있는 구조다. 봄과 여름 시즌에 가장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진단다. 이 셋을 가장 이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선을 짜 본다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카스텔레 국제공항에 내려 카스텔레 호텔 리조트(Hotel du Castellet Resort)에 여장을 푼 뒤 모나코로 가 그랑프리를 즐기거나 니스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공항 옆 레이싱 서킷(Paul Ricard Hightech Test Track)에서 간간이 벌어지는 레이싱에 열광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꿈같은 이 동선이 이곳 카스텔레에서는 ‘일상다반사’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카스텔레 국제공항은 원래 폴 리카르드가 레저용 활주로로 1962년에 만들었던 것을 훗날 리노베이션을 거듭해 2001년 지금의 첨단 시설을 갖춘 국제공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네 시선으로 보면 그 규모가 좀, 아니 많이 모자란다싶다. 단층짜리 터미널에 겨우 4층 높이가 될까 싶은 관제탑, 그리고 몇 동의 격납고가 우선 눈에 들어오는 시설들. 여기까지는 여행지에서 종종 들르게 되는,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작은 공항들과 비슷할지 모른다. 그런데 고급 리조트를 떠올리는 공항 입구와 프로방스풍의 파스텔 오렌지 빛 외관, 그리고 비즈니스 바에라도 온 듯한 여객 터미널은 ‘그들’과의 비교를 불쾌해 할 것 같다. 그리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공항 관제 시설과 이 공항을 출입하는 국제적인 인물들의 면면을 따진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1750m의 시원한 활주로를 주로 이용하는 기종은 20명 이하가 탑승하는 경비행기가 보통이지만 100명이 조금 넘는 승객이 탑승하는 정도의 제트 여객기들도 거뜬히 오르내릴 수 있다. 이 공항을 이용하는 주빈들은 보통 비즈니스나 휴가를 위해 남부 프랑스(프로방스나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를 찾아 온 이들. 1시간 거리에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마르세유 국제공항이 있지만 굳이 이곳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 전용 비행기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이 대중에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의 부호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왕족 등이 카스텔레 국제공항으로 들어와 프랑스 남부의 정취를 즐기다 돌아간다고 한다. 모나코 그랑프리가 있거나 바캉스 철이 되면 수 분마다 한 대씩 비행기가 오르내리며 ‘장사진’을 이룬다며 관제탑 관계자는 자랑한다. 이 공항을 드나드는 이들의 수준이 수준이니만큼 고급 호텔 로비 라운지를 떠올리게 하는 여객 터미널의 분위기도 남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터미널 내의 작은 숍에는 페트로시안 캐비아나 봄바디어 시계 등 부호들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만족시켜 줄 만한 것들을 선보이고 있어 작다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셈이다.카스텔레 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폴 리카르드 레이싱 서킷(Paul Ricard Hightech Test Track)과 무관하지 않다. 공항 활주로와 거의 나란히 트랙이 조성된,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독특한 조합을 보여주는데, 공항에서 곧장 나오면 서킷으로 바로 이어져 마치 폴 리카르드라는 인물의 거대한 왕국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폴 리카르드가 1970년 처음 이 서킷을 만들었을 당시는 포뮬러 원(F1) 경주나 크고 작은 자동차,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를 치러내며 이름을 알려갔다. 그러다 1999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레이싱 테스트 시스템을 갖추면서 최첨단 테스트 트랙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벨기에의 졸더 서킷,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구나 세카 레이스 웨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유명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의 시제 차량을 테스트하거나 포뮬러 시리즈에 참가하는 팀들이 연습과 기록 측정, 트랙 테스트 등을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타이어 제조업체들도 자사의 제품을 시험하기 위해 이 서킷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 볼 수 있도록 코스가 잘 설계돼 있다는 의미다. 매년 ‘르 볼도르(Le Bol d’Or)’라는 모터사이클 대회도 이곳에서 열린다. 지난해 테스트와 대회 등으로 이 서킷을 사용한 날이 300일을 넘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완벽한 성능 시험을 위한 부대시설의 수준도 눈여겨볼만 하다. 트랙 곳곳에 설치된 34대의 카메라가 전송하는 화면들을 지켜보며 속도와 주행 상태 등을 확인하는 비디오 컨트롤 룸은 마치 우주항공관제센터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각팀의 스태프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팀 훈련을 브리핑하는 공간들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구조팀이 늘 대기하고 있고 응급처치를 위한 병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웬만한 진단과 처치(특히 자동차 폭발에서 발생한 화상 사고에 대한)가 가능할 만큼 첨단의 의료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 테스트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 특히 기업의 프로모션 파티 등이 열리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과 무관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가 의외로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서킷 시설을 홍보하는 담당자는 설명했다. 서킷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연회장과 VIP 클럽 등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이벤트를 열 수 있다는 것.카스텔레가 특별한 마지막 이유는 바로 4성급 호텔인 카스텔레 호텔 리조트(Hotel du Castellet Resort)다. 폴 리카르드 레이싱 서킷에서 자동차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실제로는 거의 나란히 붙어 있는 이 호텔은 프랑스 프로방스의 스타일과 이탈리아 투스카니, 그리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풍미를 적절히 조화시킨 외관이 매력적이다. 2층 건물이 날개를 뻗어 나가듯 넓은 정원 사이사이에 조성된 스타일은 중세 장원의 영주 저택을 닮은 듯 하며 붉은 기운이 살짝 내비치는 오렌지 빛깔의 건물은 지중해변의 별장을 떠올리게 한다.서울 시내만 하더라도 5성급 호텔이 넘쳐나는 우리의 시선으로 이 4성급 호텔을 판단하면 상당한 시각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계 호텔 비즈니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4성급’이라는 의미는 그 수준과 세계적인 인지도 등에서 우리의 5성급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카스텔레 호텔 리조트도 그 좋은 예가 된다.4홀짜리 골프 코스를 둔 이 호텔은 지난 2002년 멀리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문을 열었다. 객실 수는 겨우 47개. 하지만 객실마다 우아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가구와 침대들로 꾸며져 있어 지중해풍 저택의 분위기를 만끽하게 한다. 모든 객실은 남쪽을 향해 야외 테라스가 널찍하게 나 있어 프로방스의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한껏 끌어들이는 자연 친화적인 콘셉트를 더했다. 우아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 초고속 무선인터넷, 전용 팩스머신, 서라운드 스테레오 시스템, 평면 플라즈마 TV 등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 호텔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마감재로 단장된 욕실에는 불가리(BVLGARI)의 욕실 용품들로 채워져 시선을 끈다.탁 트인 경관이 펼쳐지는 실외 수영장과 더불어 실내 수영장을 갖춘 스파와 피트니스 센터는 물론 묵직하면서도 동시에 경쾌함을 잃지 않는 바와 라운지의 분위기도 이 호텔의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호텔이 자랑하는 레스토랑 ‘몬테크스리토 레스토랑(Le Monte Cristo Restaurant)’은 미슐렝 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이 높다. 수석 조리장 니콜라 살(Nicolas Sale)의 섬세함과 우아함이 잘 살아난 요리는 이 호텔을 더욱 유명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방스에서 그 계절에 가장 풍미가 잘 살아 있는 재료들을 창의적으로 조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마르세유나 인근 여러 도시에서 이곳까지 애써 찾아와 요리를 맛보는 이들이 많다. 레스토랑이 보유한 와인셀러에는 프랑스산 와인 가운데서도 최상급의 빈티지를 자랑하는 와인들로 채워져 있다. 손님들은 와인셀러에 직접 들어가 와인을 고를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여느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 마련된 부티크는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은데, 간단한 기념품을 사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을 기대하면 그 이상을 채워줄 것이다. ‘수드 부티크(La Boutique Sud)’는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샤넬의 보석과 시계, 불가리의 목욕 용품들과 샤팔의 가죽 재킷, 최고급 와인 등을 비롯해 여러 명품 브랜드의 액세서리 등 이 호텔을 찾는 이들의 남다른 취향을 만족시켜 줄 것들로 가득하다.따지고 보면 호텔과 레이싱 서킷, 국제공항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제각기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의 그룹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셋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한꺼번에 둘러 보다 보면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럽과 미대륙의 부호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상’과 취향을 엿본 듯해 그 거리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렇듯 생소한 여가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의외로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지방의 이 작은 국제공항이 정기편 한 편 없이도 성황을 이룬다는 사실은 크고 화려하게 지어졌으나 국내선 한 편도 제대로 운항하지 못하게 된 우리의 지방 국제공항들을 뒤돌아보게 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요와 시장성만 있다면 그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느 국제공항의 절반도 채 될까 말까 싶은 카스텔레 국제공항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의 단골 ‘착륙장’이 되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항공 산업이 지닌 고부가가치성을 가장 제대로 실현한 경우라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카스텔레는 카스텔레 국제공항과 폴 리카르드 레이싱 서킷, 그리고 카스텔레 호텔 리조트가 구사하는 소수를 타깃으로 한 고부가가치 정책으로 덩달아 빛을 발하는 곳이 되었다. 가치를 높이는 것은 정부나 관의 정책이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안겨 준 마을이다.취재 협조: 프랑스정부관광성(kr.franceguide.com) 에어프랑스(www.airfrance.co.kr)● 찾아 가기 : 카스텔레까지 운항하는 정기 항공편은 없다. 파리에서 마르세유 국제공항까지 간 뒤 이곳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한다. 테제베(TGV)로 마르세유나 툴롱까지 간 뒤 열차를 갈아타고 카스텔레까지 갈 수도 있다. 파리로 가는 가장 편리한 항공편은 단연 에어프랑스의 운항편이다. 코드 셰어편까지 포함하면 매일 2회 인천~파리 간 노선을 운항하는데 비행 시간은 11시간 30분 정도. 특히 2월까지 파리는 물론 유럽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들을 57만 원의 왕복 요금으로 이용하는 온라인 이벤트를 열고 있다. www.airfrance.co.kr카스텔레 국제공항Add. : RN8-3100 Route des Haute du Camp 83330 Le Castellet-FranceTel. : +33 (0)494 983 999Web. : www.aeropotducastellet.com폴 리카르드 레이싱 서킷Add. : RN8-2760 Route des Haute du Camp 83330 Le Castellet-FranceTel. : +33 (0)494 983 666Web. : www.circuitpaulricard.com카스텔레 호텔 리조트Add. : RN8-3001 Route des Haute du Camp 83330 Le Castellet-FranceTel. : +33 (0)494 983 777Web. : www.hotelducastellet.com글·사진 남기환 비틀맵트래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