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44호 (2009년 01월)

한국 미술의 내일, 누구를 주목하나

기사입력 2009.01.15 오후 05:11

미술 시장의 호황은 르네상스를 뒤따른 매너리즘이 그러했듯이 창의성과 다양성의 빈곤을 초래했다. 이제 옥석 가리기에 앞서 옥석을 가리는 렌즈 자체를 교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술품의 투기 시대가 끝났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 해외 유명 작가들을 겨냥해 급조된 고수익 보장 미술 투자 포트폴리오에 빨간 불이 켜졌다. 얼마 전 끝난 모 옥션에선 거래된 지 불과 1년도 안 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무더기로 나왔다. 결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젊은 작가들의 자존심을 구기기에 충분했고, 그것을 기획한 옥션 회사는 작가들의 원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잘 파는 화랑이 좋은 화랑이고, 잘 팔리는 작가가 좋은 작가고, 큐레이터의 목소리보다 딜러와 컬렉터의 돈다발이 더 힘을 발휘하고, 평론가의 쓴소리보다 옥션의 낙찰가에 희비가 교차되는 지난 3년이었다. 미술관과 대안 공간 등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풍족한 자본시장 속에서 돈 가뭄을 경험한 반면 투자가가 넘친 아트페어와 옥션의 열풍은 연일 일간지 지면을 장식했다. 공들인 작품을 작가가 직접 옥션에 출품하는 기현상은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암묵적 지지 속에 용인됐다. 그러나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다. 잃어버린 지난 3년의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최근 미술시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신중함 그 자체다. 어떤 카드를 꺼내 들어도 실패한다. 정보의 양과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컬렉터들의 움직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졌다지만 여전히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 3년간의 미술시장 호황이 배출한 배준성 김동유 홍경택 최우람 이형구 정연두 함진 등의 활약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미술시장의 호황은 단기적으로는 작품의 재료와 사이즈를 키웠고 숫자도 늘어났고 화려한 도록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미술 시장의 호황은 르네상스를 뒤따른 매너리즘이 그러했듯이 창의성과 다양성의 빈곤을 초래했다. 이제 옥석 가리기에 앞서 옥석을 가리는 렌즈 자체를 교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바꾼 렌즈로 무엇을 먼저 살펴야 하나. 필자는 작업에 접근하는 태도를 첫 번째로 꼽고 싶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만들까’의 재현 문제와 ‘이번엔 어떤 색을 써볼까’의 장식 문제를 넘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 말이다. 김혜련과 김동기의 검은색 화면이 어떻게 다른지, 그 검은색이 어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고 있는지 정도는 구별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점 많은 작가들이 ‘내 작업은 무엇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특정 형식은 극복해야 할 제약에 불과하고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의 장르 선택이 팔레트의 물감 고르듯 자유롭다. 독일의 화랑과 베이징의 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제의를 받고 있는 작가 심승욱, 런던과 뉴욕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박정혁, 스위스와 일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조훈 역시 그런 작가들 중 하나다.

심승욱은 검은색 실리콘이 덩굴식물처럼 휘감기며 만들어 낸 기괴한 형상을 이용해 평면을 덮어 버리거나 공간에 낯선 덩어리로 던져 놓는다. 부분을 개별적으로 보면 덩굴식물, 혹은 인체의 특정 부위를 연상시키지만 그들의 반복이 만들어 내는 전체는 생경한 풍경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을 장식적 파편들이 얽히고설켜 전혀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보편화된 상징체계의 경계를 넘어선 진화다. 조각으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평면 드로잉과 부조로, 사진으로, 설치 작업으로 연결된다. 솔드 아웃을 기록한 뉴욕과 시카고 전시에 이어 독일 전시가 기대된다.

박정혁은 미디어의 범람이 만들어 낸 풍경을 그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2001 네트워크 프로젝트, 2003 전주국제영화제, 2004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 아트 서울을 통해 데뷔한 미디어 아티스트다. 최근 그는 영상과 조각적인 설치를 근간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발전시켜 평면 회화와 퍼즐 작업을 완성했다. 그의 작품에 따르면 몸 이미지는 순환한다. 그리고 이 순환은 또 다른 이미지를 낳는다. 영화와 결합하고, 잡지 광고에 차용되고, 포르노 사이트에서 남용되고, 문학작품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새로운 목적에 따라 새롭게 태어난다. 이질성은 문맥에 따른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이미지의 텍스트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면 서로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새롭게 탄생한 이미지들을 한 화면 속에 재배열하면 어떨까. 과연 관객은 텍스트화된 몸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어울리는 박정혁만의 독특한 화면 구성과 화풍에 대한 열광이 미국과 런던에 이어 한국에서도 이어질지 궁금하다.

조훈의 작품은 개념 조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와 디테일한 묘사 기법으로 인해 극사실주의 조각 정도로 해석한다. 테크닉에 현혹돼 그 내용을 읽어 내지 못했거나, 2008년 초 대안 공간 루프에서 선보인 두루마리 휴지로 만든 동영상 작업을 보지 못한 것이다. 조훈은 현대사회의 아이콘을 추적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살핀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어떻게 아이콘을 변질시키는지 풍자한다. 길거리에 뿌려진 ‘마사지 걸’ 명함을 수집하는 퍼포먼스로부터 시작해 그것을 확대해 전시장이라는 문맥 속에 재배치하고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풍자한다. 스위스와 영국, 네덜란드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이 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유망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대중의 관심, 시장의 관심보다는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인다. 한국 미술을 선도할 흔들림 없는 진지함에 큰 기대를 해 본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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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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