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44호 (2009년 01월)

시간의 미학, Timepiece & Chronometer

기사입력 2009.01.15 오후 05:14

시간의 개념

시간은 언제나 물음표다. 19세기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출간되자 철학은 실존적 시간을 담론하기에 이른다. 존재와 시간의 목표는 인간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밝히는 데 있다. 이 물음은 더 근본적인 물음, 즉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그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을 통해 답을 구하려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시간을 아이온(Aion), 크로니쿠스 (Chronicus), 카이로스(Kairos)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아이온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수평적이며 동시적인 시간 개념으로 하루 24시간씩 활용할 수가 있다. 크로니쿠스는 수직적 개념의 시간으로서 1년, 1달, 1시간, 1분, 1초 등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수직적 시간을 의미하는 역사적 시간이다. 세 번째 카이로스는 특정한 사건이나 일을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내야 가장 효과가 큰지를 결정할 때 사용된 질적인 시간 개념으로 혼돈의 시간을 뜻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우리의 수명은 크로니쿠스에 속한다. 크로니쿠스의 시간 속에는 카이로스의 시간들이 잠재해 있다.

자오선

1884년 10월 세계의 계시(啓時) 체계에 대한 국제협약을 맺기 위해 국제자오선 회의가 소집됐다. 25개국 41명의 대표가 미국 워싱턴에 모였으며 대부분은 외교관이었지만 몇 명의 천문학자와 기술자들도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결의한 제1조에는 기준 자오선(子午線)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으며 격론을 거쳐 제2조에 그리니치 천문대의 자오선을 경도 0으로 채택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4조에는 ‘하루’의 길이와 시작을 국제적으로 통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고 5조에는 하루를 평균 태양일로 명시했다. 평균 태양일은 전 세계에서 본초 자오선(그리니치 자오선)이 밤 12시에 도달하는 순간에 시작되며 0시에부터 24시까지로 이뤄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의 국제시의 표준이 나타난 것이다.

시계의 출현

앤티크 지구의(地球儀)를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해 18세기까지 지구의가 오늘날의 시계처럼 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중국 등은 물의 흐름을 시간 측정의 기준을 삼았고 중세에는 모래시계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선향(線香)이 도구로 등장한다.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이 선향의 길이는 법으로 정했다. 후에 나온 향(香)시계는 천천히 타들어가도록 향의 특성을 이용했는데, 예를 들어 후각만으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천연향을 집어넣기도 했다.

고대 사람들은 낮과 밤의 반복을 세어 달력을 만들거나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의 경과를 측정했다. 최초의 시계는 1개의 막대를 땅 위에 세웠던 그노몬(gnomon)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벨리스크가 그노몬으로 쓰였고, 지침(指針)은 지축에 평행하게 기울어지도록 해 1년 동안 그림자 길이는 변화해도 방향은 변하지 않도록 개량되었는데 이것이 해시계(sun dial)의 기원이다.

유럽에서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에 걸쳐 1년마다 평균을 내어 평균태양일을 정하고 이것을 24등분한 것을 시(hour), 시를 60등분해 분(minute), 분을 60등분해 초(second)로 하는 제도가 시작됐다.

기도와 노동으로 살아가는 수도사들에게는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 시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낮에는 해시계를 보고 밤에는 모래나 물시계를 사용했다. 영어의 ‘눈(noon)’은 정오 기도를 뜻하는 라틴어 ‘none’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모래시계나 물시계에 타종 장치를 달았느냐 하는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기계 미학 시계

기계시계가 발명된 것은 1300년께쯤이다. 14세기에 이르면 이탈리아 북부를 시작으로 유럽의 도시는 시계탑들을 다투어 설치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는 1370년 독일인 H비크가 프랑스의 샤를 5세를 위해 만든 파리 대법원의 것이다. 1960년 복제품이 만들어져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시계의 원형은 이탈리아의 G 돈디가 제작한 천문시계로, 1.4m의 높이로 1364년의 문헌에 기록에 근거해 복제됐다.

시계 구조는 무거운 추의 힘으로 기어를 회전시켜 관형탈진기(冠形脫進機)에 관성이 큰 막대 템포를 물려 축의 회전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막대 템포 자체는 오늘날의 진자나 템포처럼 등시성(等時性)을 가진 진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계의 오차는 하루에 30분이나 됐다. 이 때문에 당시의 시계는 시곗바늘이 1개뿐이었고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시각을 알리는 것이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시계에는 글자판이 없었다. 클락(clock)의 어원이 종(鐘)이 되듯이 일반 시민은 종소리에 맞춰 생활하게 됐고 그때까지의 부정시법 대신 하루를 24등분해 시를 구분하는 정시법이 생겼다. 이러한 공공 시계가 그대로 실내에 맞는 크기로 소형화된 것은 14세기 말이었으며 일반의 부유한 가정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16세기가 되면서부터다.

태엽 발명에 의해 탁상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전반이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에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시계 제조의 중심은 15세기 말, 남독일에서 조금 뒤 프랑스 블루아로 옮겨갔다. 뉘른베르크의 자물쇠공 P 헨라인이 1510년 무렵 회중시계의 전신인 휴대 시계를 만든 일은 유명하다.

시계의 분류

앤티크 시계는 마니아가 아니어도 장식적인 요소와 함께 투자 가치로서도 훌륭하기 때문에 관심이 높다.

워치는 보통 몸에 지니는 시계, 클락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위치에서 사용되는 시계를 말한다. 실제로는 케이스가 붙어 있지 않은 무브먼트(movement: 시계의 동력) 상태로 거래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나라에 따라서는 무브먼트의 지름이나 두께 또는 용적에 따라 워치의 무브먼트를 구분하고 있다. 클락의 경우는 놓는 장소에 따라 그 이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미있다. 벽에 걸어놓는 시계는 월 클락(wall clock), 벽난로 맨틀에 놓아 두는 시계는 맨틀 클락(mantel clock), 선반에 놓는 시계는 브래킷 클락(bracket clock) 등이다. 롱케이스(long case) 클락은 그랜드 파더 클락, 약간 낮고 아담한 사이즈는 그랜드 머더 클락이라고 부른다. 시대사조가 시계 디자인에 투영되었으므로 종류별 혹은 시대별로도 컬렉션 할만하다. 특히 손목시계는 1940년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유는 아르데코 사조의 디자인과 관련이 있다.
시간의 미학, Timepiece  &  Chronometer

1. 로코코풍의 롱 케이스 클락. 네오 클래식 스타일이다. 전체적으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신화 속의 장면을 정교하게 표현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약 12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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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장면을 그려 넣은 이 포켓 워치는 에나멜 장식과 작은 진주를 박아서 장식적이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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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딕 리바이벌 스타일의 맨틀 클락. 나폴레옹 3세 시대의 작품이다. 중세의 로망을 교회와 기사의 절묘한 결합으로 완성했다. 최근 경매에서 약 1만2000달러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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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르데코의 프랑스 유리 예술가로 빛을 발했던 라리크(Lalique)의 작품. 투명한 유리로 빚은 두 명의 여인상이 시간을 꽃 줄로 들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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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캔들 클락(candle clock). 초가 타 들어 가는 표식이 보이고 벽장식 겸용의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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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호가니로 제작된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추시계. 19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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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딕풍의 실버 맨틀 클락. 정면에는 성모의 수태고지(受胎告知)가, 양옆에는 성경의 장면들이 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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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르누보의 케리어지 클락. 에나멜로 정교하게 그려진 꽃들이 금빛 프레임이 백색 바탕의 숫자판을 감싸고 있어 고급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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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로코코풍의 전형적인 프랑스 양식의 맨틀 클락. 스크롤한 오물로 장식이 에나멜 숫자판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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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국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의 영향으로 제작된 아르누보 스타일의 실버 테이블 클락. 20세기 초에 제작됐으며 가격도 적당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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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롱케이스 클락(Long case clock). 마르케트리 장식과 오물로 마운트가 돋보이는 루이 15세 스타일이다. 일명 그랜드 파더 클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당시의 가구 장인들이 시계 케이스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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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르데코풍의 시계. 헌터라는 이름의 조각을 장식해 예술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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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국의 시계 메이커 세스 토마스(Seth Thomas)의 맨틀 클락.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 약 4000달러를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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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방울방울 떨어지는 방식으로 시간을 재는 오일 램프 클락(oil lamp 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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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3세기 최고의 시계 기술자인 알자자리(al-Jazari)의 캔들 클락. 이슬람 문헌에 나타난 삽화가 사용됐다.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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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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