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감독: 볼프강 페터젠 주연 : 브래드 피트(아킬레스 역) 에릭 바나(헥토르 역) 올란도 블룸(파리스 역) 다이안 크루저(헬렌 역) 브라이언 콕스(아가멤논 역) 피터 오툴(프리암 왕 역)머의 ‘일리아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답게 신화와 전설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트로이 전쟁을 그려나간다.3200년 전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대부분의 그리스 국가들을 느슨하게나마 단일 동맹체로 규합했다.그러나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우스는 전쟁에 지친 나머지 철통같은 성벽과 뛰어난 궁술로 그리스의 수없는 외침을 막아 온 강적 트로이와 평화협정을 맺는다.메넬라우스의 궁에서 열린 축하 연회에 특사로 온 트로이의 두 왕자 헥토르와 파리스. 철부지인 바람둥이 파리스 왕자는 메넬라우스의 왕비인 헬렌과 눈이 맞아 몰래 사랑을 나누다 급기야 트로이로 돌아가는 배에 헬렌을 숨겨 데려간다. 아내를 빼앗긴 것을 알고 격노한 메넬라우스. 형 아가멤논을 찾아가 트로이를 칠 것을 주장하고 아가멤논은 이번이 트로이를 정벌할 절호의 기회라며 전 그리스 군대의 출정을 명한다. 드디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아가멤논에게는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다름 아닌 그리스 최고의 전쟁 영웅 아킬레스를 어떻게 꼬드겨 출전하게 만들 것인가였다. 사실 아킬레스는 야심에 눈먼 아가멤논에 대한 거센 반감으로 출전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킬레스를 회유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지혜가 뛰어나고 아킬레스가 평소 존경해 온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였다. 자신을 찾아 온 오디세우스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킬레스. 그러나 이내 낌새를 눈치 챈다.아킬레스: “아가멤논이 가보라 하던가요? 나는 그를 위해선 안 싸워요.”오디세우스: “아가멤논을 위해 싸워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닐세. 그리스를 위해 싸워 달라고 간청하고 있네. 아킬레스, 자네는 영광을 위해 싸우게. 아가멤논은 권력을 좇도록 내버려 두고. 영광이 누구에게 갈지는 신들이 결정하겠지. 이 거대한 전쟁은 역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거야. 그 전쟁에서 싸운 영웅들 역시.”뒤돌아 내려가는 오디세우스를 바라보는 아킬레스의 마음은 트로이 전쟁으로 역사 속에 불멸의 영웅으로 깊이 아로새겨질 자신의 이름을 되뇌고 있다. ‘아킬레스’.‘로디드 워드(Loaded Word)’는 ‘저의가 숨겨진 말’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싶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코 무작정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 많이 내뱉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상대의 영혼까지 매혹시킬 수 있어야만 가히 유창(Eloquence)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지위, 재력, 명성까지 높은 콧대 높고 자존심이 강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단순한 논리성이나 기분 좋은 아첨(Flattery)만으론 부족하다. 자칫 섣부른 논리나 이익 운운 하다간 그나마 있던 기회조차 무산시켜 버릴 수 있다.잠들어 있는 영혼의 눈을 번쩍 뜨게 할 수 있는 ‘말’을 찾아라. 오디세우스의 세치 혀끝에서 나온 대수롭지 않은 듯한 단어들이 불세출의 전쟁 영웅 아킬레스의 영혼을 관통한 것이다. ‘그리스’, ‘영예’, ‘찬양’, ‘영웅’, ‘불멸’.영혼을 울리고 심장을 고동치게 할 촌철살인의 함축적인 말(Loaded words)을 찾아라.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비즈니스를, 그리고 역사를 바꿀지도 모른다.수십만 그리스 대군으로 밀어붙였으나 트로이의 견고하고 높은 성벽을 넘지 못한 아가멤논. 결국, 오디세우스의 책략에 따라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에게해 해변에 만들어 두고 모두 철수한다. 그리스군이 철군했다는 소식에 해변으로 달려 온 트로이의 프로암왕과 파리스 왕자. 그들 눈에 들어온 것은 역병에 걸려 널브러져 있는 그리스군 시체들과 포세이돈에게 귀향길을 축복해 달라고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목마였다.신화에서는 프로암왕의 딸이자 예언자인 카산드라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재앙이니 불태우라고 했지만 영화에서는 파리스 왕자가 그 말을 대신한다. 그러나 왕은 막강한 그리스 연합군을 격퇴했다는 벅찬 승리감과 오랜 전쟁에 지친 트로이 국민들에게 좋은 위안거리라며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간다. 그날 밤, 트로이 성 전체가 전승 축제로 술과 열광에 젖어 지낸다. 그 다음은 다들 아는 대로다. 목마 속에 숨은 병사들에 의해 성문이 열리고 숨어 있던 그리스 대군들이 성안으로 물밀 듯 밀려들어 온다. 아비규환 속에 잿더미로 변하며 찬란했던 문명 트로이는 역사에서 그렇게 너무도 덧없이 사라진다.트로이의 목마 전술은 상대로 하여금 그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만술, 혹은 교란술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만술이 협상 막바지에서 조건부 교환 (Trade-off) 상황 유도를 위한 목적을 가지는 반면 트로이의 목마 전술은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에서 전혀 대응책을 준비하지 못한 사이에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상호 승인한 계약서에 의거해 합법적으로 준행할 의무를 상대에게 요구하거나 혹은, 상대가 제시하는 조건이나 정책을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시스템이나 환경을 상대의 편익에 부합되도록 변화시키는 전술이다.대표적인 예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MS)의 윈도 운영체제(OS)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인 IBM에 공급한다. 이를 통해 IBM 컴퓨터를 구입한 소비자는 MS사가 판매하는 응용 프로그램 외에는 설치 및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경쟁사 응용 프로그램이 더 우수하고 저렴하다고 하더라도 어쩔 도리 없이 MS사의 프로그램만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IBM 컴퓨터 역시 MS사의 윈도 OS 프로그램을 주력 기반으로 자사 연구·개발(R&D)을 오랜 기간 진행해 온 터라 더 이상 타 OS 프로그램을 주력으로 교체하기가 곤란해 질 뿐만 아니라 컴퓨터 주변기기 사업체까지 MS사의 OS 프로그램을 채용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MS가 세계시장을 석권한 것은 뛰어난 기술 덕도 있겠지만 IBM과의 사업에서 시행한 바로 트로이의 목마 전략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결국 거래 상대보다 더 뛰어난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시장 변화 및 기회 요인을 예측한 후 근시안적인 거래 상대에게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처럼 지금 당장은 달콤하기 그지없는 호조건을 제시해 합법적인 계약이나 협정을 체결한 후 예측하고 있던 특정 시점이나 상황 도래 시, 엄청난 추가 금액을 요구하고 나온다. 혹은, 기술 협약 및 영업 협력 조항에 묶여 거래처 변경이나 거래를 종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다각적인 족쇄, 어찌 보면 노예 문서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력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협상 전략이다.한마디로 멀쩡히 눈 뜨고 있는 촌사람 코 베어 간다는 서울 사람. 바로 트로이의 목마 협상 전술이다.트로이의 목마는 비단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외교 통상 협상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 그리고 한·EU FTA 등. 자동차 관세 문제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역 규제, 투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놓친 미국의 통상 전문가들이 숨겨 놓은 트로이의 목마를 찾아 제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원 글로벌협상 주임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