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워텍 사건의 주역 최유신 스팩맨그룹 회장

2000년 1월 최유신 회장이 인수한 리타워텍은 34일 연속 상한가 기록을 세웠다.그해 7월 리타워텍이 홍콩의 아시아 넷과 합병을 결정하면서 코스닥 최대의 스캔들이 터졌다.국 주식시장에서 최유신 스팩맨그룹 회장은 독특한 존재다. 한편에서는 그를 ‘미다스의 손’으로 치켜세운다. 앞선 금융기법을 동원해 기업을 인수·합병하고 가치를 높이는 ‘M&A의 귀재’라는 것이다. 하버드대를 나오고 외국계 IB에서 경력을 쌓은 그의 이력도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반면 다른 편에서는 그를 머니 게임에만 능란한 ‘기업사냥꾼’으로 본다. M&A를 통해 주가를 부풀리는 데에만 골몰한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그가 손대는 주식은 ‘작전주’로 치부되기 일쑤다.최 회장의 이 같은 야누스적 모습은 모두 리타워텍 사건에서 잉태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만 10년이 돼가고 관련자들은 모두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리타워텍의 그림자는 여전히 최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리타워텍 사건 이후에도 2002년 키이엔지니어링, 2003년 시큐어테크, 2004년 사이더스 등을 인수했다가 되팔면서 꾸준하게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웰스브릿지의 금융자문 역할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에 거주하는 그는 여전히 서울을 빈번히 드나들며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서울을 방문한 최 회장을 만나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계획에 대해 들어봤다.“기업 투자, 인수·합병, 파이낸싱 등을 하는 회사다. 작년 말 현재 총 투자자산은 약 13억 달러 정도 된다. 본부는 홍콩과 뉴욕에 있다. 각 사업은 70여개의 투자목적기구(vehicle)로 나눠져 진행된다. 이들은 버뮤다 케이먼군도 등 조세회피 지역에 펀드를 설정해서 사업을 한다. 각 기구는 자체 자금 또는 일부 외부자금을 조달해 투자한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는 것은 언제든지 자산을 사고 팔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나라별로 전략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중국은 주로 오퍼레이팅 컴퍼니에 투자했다. 그리고 장기투자가 원칙이다. 대표적인 것은 헤이룽장성에 있는 스키리조트인 어바운스 엔터프라이즈다. 또 랴오닝성의 동물백신 회사인 알레프 바이오메디칼사, 광저우에 있는 장거리버스 서비스회사인 썬헤이 버스 트랜스포테이션에도 투자했다. 중국 투자는 이들 3개사가 메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지난 2003∼2005년에 투자한 것들이다. 중국 주식시장은 거의 투기장 수준이어서 아직 들어갈 생각이 없다. 반면 미국 쪽에서는 오퍼레이팅 회사 투자를 하지 않는다. 무조건 거래 가능한 자산(Tradable Asset)에만 투자한다. 일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도 투자했지만 주로 그렇다는 얘기다. 헤지펀드도 운영하는데 주로 창의적인 전략이 있는 곳을 선택한다. 우리 직원들은 하버드 MIT 등 대학생들도 만나 새로운 투자기법을 찾는다. 이들의 투자전략이 괜찮으면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줘서 운용토록 한다. 스팩맨그룹의 메인 비즈니스는 회사를 인수해서 개발하고 높은 값에 되파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는 다양하게 가져가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2007년까지 미국에서는 PEF(사모펀드)가 붐이었다. 이 때 PEF가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기도 했다.”“우리 회사의 투자원칙은 ‘모든 보유자산은 필요 시 3개월 내에 팔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모든 사람이 자산거래를 중단했고 우리도 약 3억 달러의 유동성이 묶여서 고전했다. 그래서 새로운 거래를 완전히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3개월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돈이 있는 곳은 은행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은행들은 규모가 작은 자산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반면 시장의 스몰 플레이어들은 지갑을 완전히 닫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합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은행들이 사줄 정도로 규모를 키워서 팔기 위해서다. 2005년께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큰 펀드를 조성할까도 고민했었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더 큰 수익을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리스크는 커진다. 지금까지 레버리지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최근 주식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투자심리가 많이 회복됐다고 느낀다. 그러나 펀더멘털의 문제는 여전하다. 우리가 과거 인터넷 버블을 겪었지만 그건 한 섹터에 불과했다. 신용버블과는 비교도 안 된다. 지금의 신용위기는 경제주체들이 너무 많은 돈을 빌려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돈을 더 빌려줘서 문제를 수습하려고 한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벌써 사람들은 경제위기를 잊어버린 것 같다. 주변을 들러보면 펀더멘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다 느낀다.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다. 은행도 돈만 들고 있지 돈을 굴리지 않는다. 앞으로 상업용 부동산과 소비자 금융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아직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사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돈벌기 쉬웠다. 우리도 홍콩 IPO시장에서 공모주만 받아도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도 돈을 쉽게 벌다보니 완전히 썩었다. 5년 동안 개념이 없이 돈을 굴리다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이다.”“기업을 인수하지는 않았지만 주식투자는 꾸준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 주로 블루칩이다. 물론 큰 비중은 아니다. 홍콩에서 한국 뉴욕증시를 보고 주식거래를 한다. 저녁 9시면 뉴욕증시가 열리기 때문에 하루에 4∼5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전체 투자 규모가 3억 달러가 넘는다. 회사 4곳에서 운용한다. 미국시장에서는 지난해 말에 거의 다 팔고 나왔다가 지난 3월부터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로 금융주에 투자했다. 씨티뱅크는 한때 99센트까지 떨어졌었다. 그 때는 안 샀지만 2달러70센트에 사들였다가 2주 만에 4달러대에 팔고 나왔다. 리먼도 부도가 나기 전에 대규모 매매를 한 적이 있다. 25달러까지 내려갔다가 46달러까지 반등을 했는데 42달러에 팔았다. 운이 좋았다. 사실 지난해에는 모든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특정자산만 사들인 사람이다. 예들 들면 숏(공매도)을 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거의 10년을 잃다가 작년 한해 딴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우리는 그동안 한국에서 중소 상장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하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꽤 효과가 있다. 코스닥시장에 부실한 기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코스닥상장 프리미엄이 너무 많이 올라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의 비상장회사를 인수해 싱가포르나 캐나다 증시에 상장시키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또 부실한 상장사에 전략적 투자를 한 뒤 턴어라운드 시킬 수 있는지도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에 투자할 3000만 달러의 자금을 마련했다. 투자대상 기업은 주로 기술이 있는 기업이다. IT회사와 바이오텍 회사도 보고 있다. 지금은 화학회사 한 곳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기업을 해외시장에 상장시키거나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해외기업과의 주식스왑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주식스와프 방식으로 해외기업에 인수되더라도 바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받은 것은 주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세금을 내기 어렵다. 외국의 경우 나중에 주식을 팔 때 세금을 내면 된다. 중국은 이미 2006년 10월부터 외국기업과의 주식스와프를 허용했다. 이렇게 되면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커진다. 싱가포르 증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상장사들의 장점이 나열돼 있는데 주식으로 다른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장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주식으로 외국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면 경쟁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것 없이는 국경을 넘는 M&A가 활성화되기 어렵다.”“웰스브릿지는 회사가 부실화된 데다 워낙 CB(전환사채) BW(신수인수권부사채) 보유자도 많아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금융자문계약을 맺은 것이다. 6개월간 한시적인 계약일 뿐인데 일부 언론에서 부풀렸다. 지분투자는 없고 계약기간도 끝났다. 우리가 계약했을 때 웰스브릿지의 부채는 340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12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자산운용과 M&A자문에 관심이 있다. 이 사업을 위해 한국에서 증권사나 운용사를 살 생각도 있다. 예전에 국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로부터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에는 너무 비싸 사지 못했다. 사실 꼭 인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견 증권사에 지분을 투자해 국내 부문은 파트너 측이 맡고 해외 IB는 우리가 맡으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어차피 IB는 국내에서만 활동해서는 클 수 없다. 우리는 뉴욕 홍콩 런던 등에 네트워크가 있다. 증권사 해외지사도 지금처럼 신디케이트론 등 제한적인 활동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사업체를 만들 생각이다. 2∼3개의 미국 금융기관들이 함께 일을 추진하고 있다. 아버님(최석진 한국푸르덴셜생명보험 회장)도 은퇴 후에는 합류하시기로 하셨다. 월스트리트가 몰락했기 때문에 지금이 이머징 국가의 금융회사가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다. 1∼2년 내에 시작해볼 생각이다.”“반드시 했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당시 리타워텍은 기업대상 비즈니스 기업, 아시아넷은 소비자대상 비즈니스를 하는 인터넷업체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이걸 하나로 묶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걸로 생각했다. 당시에는 규모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척도였다. 2개의 회사보다는 하나의 큰 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사실 리타워텍은 모든 회사를 주식으로 인수했다. 현금은 사용하지 않았다.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거래의 규모를 얘기한 것이지 현금을 투입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타워텍은 20여개의 회사를 인수했는데 그 정도 규모는 된 것 같다. 당시 우리는 8개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국세청의 소송에서도 우리가 2심까지 완승했다. 리타워텍의 퇴출은 사실 과세가 결정적이었다. 검찰수사로 주가가 폭락했고 국세청의 과세로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이 나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은 있겠지만 외부의 영향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점이 분명히 있다.”“아시아넷 투자자들이나 리타워텍 투자자들 중에서는 돈을 번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돈을 벌지 못했다. 나는 회사를 인수한 후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될 때까지 단 한주도 팔지 않았다. 당시에도 스팩맨그룹은 주로 차이나닷컴 레드햇 등 미국의 IPO시장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 검찰수사에서도 우리의 주식매매 현황이 주요 수사 대상이었다. 우리가 차익을 챙겼다면 무혐의로 나올 수 있었겠는가.”“해외에서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당연히 걸림돌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로 바이 사이드(구매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당시에는 젊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누구에게 설명하고 납득을 구해야한다는 생각도 안했다. 앞만 보고 내 할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가정을 이루고 애들을 키우면서 주변에 대한 배려도 생각했고 모두가 잘되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I Win You lose’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경험이 스팩맨그룹을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번에 우리는 처음으로 캐나다 시장에 들어간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사업 시작한 지 2년 만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나는 비록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우리 부모님이 한국인이고 부인도 한국인이다. 나도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른다. 당연히 한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싶다.”지난 2000년 1월 최유신 회장은 파워텍이라는 보일러 모터회사를 인수하면서 코스닥 시장에 등장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중국 등 아시아권을 무대로 활동한 M&A전문가, 그리고 <포춘>지 표지모델이라는 화려함까지 겹쳐지면서 그는 단숨에 한국 증시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후 과정은 거칠 게 없었다. 20여개 인터넷 업체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했고 주가는 하늘을 뚫을 듯이 솟구쳐 올랐다. 인수 직후인 1월26일 2만 원이던 주가는 34일 연속 상한가 기록을 세우며 3월17일에 100만5000원을 기록하더니 5월17일에는 325만5000원(액면가 5000원 기준)까지 뛰었다.당시 리타워텍은 많은 인터넷업체들을 인수했지만 현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피인수기업의 대주주에게 대금을 모두 리타워텍의 주식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즉, 인수계약을 맺은 후 피인수기업의 대주주를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주금납입은 반드시 현금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돈을 대주주에게 일단 지급했다가 유상증자 때 다시 받았다. 요즘에는 이런 주식스와프가 일반화됐지만 당시에는 법적 규정도 없을 정도로 생소한 방식이었다. 주식스와프는 인수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결국 주가가 결정적인 요소였다.리타워텍은 그 해 7월 홍콩의 인터넷 지주회사인 아시아넷과의 합병을 결정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 역시 최 회장이었다. 소위 리타워텍 사건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리타워텍은 아시아넷과의 주식스와프를 위해 리먼브러더스에서 1조4000억 원을 빌려왔다. 정확히는 리먼의 보증으로 씨티은행이 빌려준 것이다. 합병 금액이 너무 커서 자체자금으로는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 돈은 리타워텍 계좌에서 홍콩의 아시아넷 계좌로 옮겨졌다가 몇 시간 후 다시 리타워텍 계좌로 되돌아왔다. 결국 인수 후 제3자 유상증자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시간. 리먼은 이 거래에 3시간 돈을 빌려주고 40억 원대의 이자를 받아갔다.이 거래가 성사된 후 며칠 지나 국회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정형근 의원은 산업자원부에 그 해 7월 외자유치 통계가 왜곡됐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산자부에서 진상을 조사해보니 리타워텍이 빌린 자금이 외자유치로 잡혔던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리타워텍은 투기자금을 끌어들인 이상한 회사로 전락했다. 금감원의 조사가 시작됐고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당시 리타워텍의 주가는 구 아시아넷 주주들이 매도를 시작하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검찰수사가 겹치면서 급속히 폭락했다. 더구나 이 회사가 제출한 반기 보고서 (2000년6월1일∼2000년 11월30일)에 따르면 매출은 고작 20억 원이었고 당기순손실은 355억 원이나 됐다. 결국 최 회장은 홍콩으로 피했고 당시 리타워텍의 허 모 사장은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그러나 법원은 2002년에 리타워텍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죄판결을 내렸다. 일부 과장·허위공시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리타워텍은 국세청이 부과한 450여억 원의 세금문제로 인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결국 2003년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다. 세금을 납부하게 될 경우 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회계법인의 판단이었다. 현재 리타워텍은 국세청과의 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했으며 최종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최 회장은 “리타워텍 사건은 주가조작 사건이 아닌데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알려졌다”며 “그러나 잘못된 투자로 회사가 큰 손실을 본 것은 결국 경영자였던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스팩맨그룹 회장서울 외국인학교하버드대 경제학과자딘플레밍 스미스바니 등에서 근무리타워텍 전 회장글 김태완·사진 이승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