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서거가 현 정부의 정치적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어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 침체 상태에 있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수 있다.북한의 핵실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해 외국인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향후 전개 과정에 따라 ‘셀 코리아’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경우 증시 또는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서거했다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이에 못지않은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이 금융시장에서는 일시적인 파장으로 끝났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북한 핵실험에 대해서도 현재 전 세계 증시 가운데 한국만큼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좋은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쉽게 한국 증시를 떠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낙관적 분석도 있다.하지만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사회불안이 장기화된다면 증시는 물론 경제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잘 봉합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노 전 통령의 서거로 당장 6월 통과가 기대되던 각종 법안들의 발목이 묶일 가능성이 커졌다. 6월 임시국회의 연기도 불가피해졌다. 여야는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정치적 움직임을 자제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의원연찬회 등 이미 예고됐던 정치적 일정을 무기 연기한 상태다. 이에 따라 6월 임시국회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에나 일정이 논의될 전망이다.일정도 불투명해졌지만 여야 간 대립도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여론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여당에 대한 반발심리가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야당은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계류된 법안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법안이었던 미디어법(신문법, 방송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지주사 규제완화) 한·미 FTA관련법 등의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처음 열린 지난 25일 증시에서 미디어 관련주와 금산분리 관련주 등의 주가가 곤두박칠쳤다.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디어법 등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통과시기가 늦춰지거나 논쟁이 심화될 소지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집권여당이 전체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추경을 포함한 정부의 경기부양책 수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일부 테마주에는 큰 영향을 주겠지만 주식시장이나 금융시장 전반에는 단기적으로도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사건이 기본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탈과는 무관한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북한의 핵실험, 서해교전, 촛불집회 등 정치적 사건이 있었을 때도 증시는 기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6월29일 서해교전 직후 코스피 지수는 0.47% 올랐고 이후 4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는 장중에 5.5%,종가 기준으로는 2.4%나 하락했지만 이후 안정을 되찾으면서 3일 만에 낙폭을 만회했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때에도 당일에는 2.41% 하락하면서 충격을 받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반등세로 돌아섰다. 최근 북한의 로켓발사 때에는 오히려 코스피지수가 6개월 만에 1300선을 돌파하고 원 달러 환율은 급락하는 등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외국의 경우에도 정치적 사건은 증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난 2003년 뮐레만 독일 전 부총리는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독일 증시는 당일 1.3% 하락하면서 불안감을 반영했지만 이내 정상을 되찾아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난 1993년 프랑스의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총리의 권총자살 사건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그는 친구로부터 무이자 대출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총선에 참패하자 자살을 선택했다. 당일 주가는 0.11% 하락하는 데 그쳤다.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된다면 의외로 우리 경제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가장 큰 우려는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진보진영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정부의 각종 정책들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게 된다. 노동계의 하투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구조조정도 어려워져서 경제 전반의 회복이 지연된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일시적으로 빠져나가가고 국가 신용위험 및 유동성 위험이 다시 고조된다. 금리가 내려가고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제는 다시 악순환에 빠진다.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외국인들도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이 국내에서는 떠들썩하지만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에 영향을 줄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쪽에서 먼저 얘기를 꺼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한화증권 윤지호 연구원은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외환 보유고가 확충되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금융시장은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전향적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김태완 기자 twkim@hankyt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