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스포츠’는 항상 차별화를 원하는 ‘상류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서 리처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데리고 ‘폴로(Polo)’ 경기를 관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폴로’는 말을 탄 채로 나무막대기를 이용해 자그마한 공을 쳐서 득점을 많이 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영화에서는 폴로 경기 도중 관람객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뜯겨진 잔디를 발로 메우는 행동을 보면서 폴로 경기의 전통이라고 에드워드(리처드 기어)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에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영화에서 상류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폴로’ 경기를 등장시켰을 정도로 폴로는 ‘럭셔리 스포츠’의 대명사로 불린다. 경마가 주로 일반 대중들과 함께 했다면 폴로는 귀족들의 점유물이었다. 폴로는 지금도 돈 많은 사람들만이 제한적으로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다. 폴로 팀들은 어떤 기업들의 후원 아래 팀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 형태의 친목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팀을 운영하고 재원도 대부분 자력으로 마련한다. 폴로 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퍼트론’(patrons; 미국식으로 ‘패트론’이라고 발음하면 안 되고 영국식으로 ‘퍼트론’이라고 발음해야 한다)이라고 불리는 백만장자들이 구성원들이다.폴로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제한적으로 즐기다보니 대중적인 홍보효과를 누리는 기업들 대신 명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이 주로 후원을 한다. 예를 들어 스위스 시계 삐아제(Piaget), 와인회사 로버트 몬다비, 프랑스 샴페인 회사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롤스 로이스, 랜드로버, 폴로 의류 브랜드를 갖고 있는 랄프 로렌 등이다. 이들은 폴로 대회를 만들기도 하고 팀도 후원하며 선수 계약까지 한다.TV 중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회 후원비용은 크게 들지 않는다. 수천 달러에서 많아야 25만 달러 정도면 대회를 열 수 있다. 하지만 돈의 액수가 적다고 아무나 폴로 경기를 후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폴로를 후원하는 기업들은 다른 스포츠처럼 브랜드를 노출하는 식의 마케팅이 아니라 폴로를 즐기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접근해봐야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폴로 경기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런 이미지가 더욱 뚜렷해진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아웃백스테이크 하우스의 공동 창업자인 팀 개논, 귀족 출신의 폴로 선수인 피터 브렌트, 슈퍼 모델의 원조격으로 통하는 스테파니 세이무어, 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 등 최고급 문화를 선도하는 이들이다.폴로 경기장에는 그 흔한 기업들의 VIP 접대도 없다. 자기 돈으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든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도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다.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폴로 프로 리그’를 창설하려고 수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은연중에 폴로의 대중화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폴로는 미국에서 주로 동부 해안을 따라 각 클럽에서 열린다. 1월에 플로리다주에서 시작해서 9개월여간 대회가 이어진다. 가장 큰 대회는 메르세데스-벤츠 폴로 챌린지와 US오픈이다.대회 비용은 얼마 들지 않지만 관람객들이 와서 쓰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경기장 바로 옆에 만들어진 ‘VIP 부스’는 이용료가 1만 달러다. 맨해튼에서 열린 ‘뵈브 클리코 맨하탄 폴로 클래식’은 입장료가 500달러에서 5만 달러에 달한다. 입장요금부터 철저하게 ‘하이 엔드’를 지향한다.‘세일링(sailing)’도 럭셔리 스포츠로 뺄 수 없다. 이들을 후원하는 기업들이 LVMH, 롤렉스, BMW 등 세계 명품 기업들이다. 세일링도 폴로처럼 자체 프로리그가 없고 대회를 운영하는 대표 협회 같은 기구도 없다. 대신 지역이나 국제적인 요트클럽끼리 서로 연결해 대회를 개최한다. 가장 큰 대회는 ‘어메리카 컵’과 ‘볼보 오션 레이스’이지만 대회 시기도 딱 정해져 있지 않다. 3년 또는 4~5년마다 부정기적으로 열린다.세일링 팀을 운영하려면 연간 수억 달러가 소요된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로 손꼽히는 ‘포뮬러 원’에 준하는 비용이 든다. 포뮬러 원은 굴지의 자동차 기업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돈을 들여 운영하지만 세일링은 억만장자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다. 세일링은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간 25만 달러 이상을 써야 세일링을 즐길 수 있다.세일링은 기업들로부터도 막대한 돈을 끌어들인다. 기업들은 요트에 자신들의 로고를 노출시키기 위해 연간 작게는 10만 달러에서 많게는 1000만 달러까지 쓴다. 예를 들어 어메리카컵은 기업 후원금 등을 포함해 거의 30억 달러짜리 대회로 평가받는다. 볼보 오션 레이스는 10개월간 11개 포트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열린다. 스페인에서 시작해 3만7000마일을 항해한 뒤 러시아에서 끝난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이름을 단 요트가 각국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세일링 팀들은 기업 브랜드 노출의 대가로 엄청난 돈을 끌어들인다. 에릭슨, 퓨마, 디즈니, 네덜란드 은행인 ABN AMRO 등은 연간 수천만 달러를 지불한다.세일링 마니아인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어메리카컵이 열리는 동안 보트를 만들고 스폰서십,TV중계 등의 비용으로 1억 달러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MW 오라클 레이싱’팀을 이끌고 있는 그는 평균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요트클럽에다 이 돈을 적립한다고 한다.또 플로리다주 최남단의 키웨스트에서 열리는 ‘월드 세일피시(Sailfish)챔피언십’도 ‘값비싼 스포츠’다. 이 대회는 1.2∼1.5m 에 달하는 ‘세일피시’를 잡아 가장 큰 것을 잡은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이 대회 참가자들의 38%가 비즈니스 오너이거나 CEO들이다. 이 대회를 보려면 보트를 빌려야 하는데 그 비용이 수천 달러다. VIP용 관람보트는 7500달러다. 이 기간 동안 밤에는 축제가 열리면서 관람객들이 엄청난 돈을 뿌리고 돌아간다.‘럭셔리 스포츠’는 항상 차별화를 원하는 ‘상류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 골프가 그런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 기능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상류층의 고객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스포츠를 통해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트나 폴로 같은 경기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비즈니스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