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미술애호가 혹은 개인 컬렉터에만 머물렀던 이들 중 화랑 설립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미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대중화되고 미술품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증거이다.거품현상이건 유통과정의 불협화음이건 적어도 미술품이 사회적 주요 관심의 대상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다보니 미술을 단지 개인 기호나 여가생활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넘어, 직접 화랑을 차려 운영주체가 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눠진다. 우선 적지 않은 작품수집 경력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소유한 컬렉터층이거나, 처음부터 미술애호 활동과 화랑설립 계획을 함께 해보려는 경우이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과연 화랑이란 어떤 것이고, 설립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점일 것이다. 화랑 설립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알아두면 좋은 기본적인 사항을 정리해 보았다.흔히 화랑이라는 단어는 공간적 의미만이 아니라 ‘화상(Art dealer)’이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이해하는 예가 많다. 물론 화상은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분배하는 사람을 말한다. 화랑과 화상을 동일하게 볼 때 화상의 역할은 곧 화랑의 기능으로 볼 수도 있겠다. 때문에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만한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바로 화랑의 역할이자 화상의 안목과도 직결되는 것이다.상업화랑의 역할은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좋은 컬렉터와 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상업화랑의 사회적 기능은 그보다 더 많고 의미가 깊다. 넓게 보자면 인간의 다양한 삶을 숭고한 예술세계로 표현해낸 창작품을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장소이다. 인간 본질은 물론 삶의 깊이 있는 성찰이 배인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화랑. 그렇기 때문에 화랑은 흔히 작가에게 전시장소를 제공한다거나, 수요자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국내 미술시장의 국제화와 잠재적 수요자가 급증하면서 화랑의 성격과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령 기존의 화랑들은 작품의 발표와 유통에 중점을 두었다면, 점차 미술이 일상생활의 향유문화로써 자리 잡으면서 문화소통의 창구로서 역할이 확대된 것이다. 이젠 화랑이 국내는 물론 해외의 새로운 시각문화를 선보일 의무까지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시장의 산업화에 가속이 더해질수록 화랑도 함께 빠른 속도로 진화할 것이며, 그런 화랑의 변화에 작가들 또한 적응해야 상호 간의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미술시장은 50년대 반도화랑을 선두로 최초의 미술작품 상거래 시장이 형성되면서 출발하였다. 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현대적 화랑인 현대화랑과 명동화랑 등이 개관하게 되고, 70년대 후반까지 기본적인 초석을 다진다. 그 이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수많은 화랑들이 개관하였고,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금의 현대적인 미술시장 구조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빠른 속도로 국제 미술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내에도 점차 선진화된 시스템의 시장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특히 2000년 이후 등장한 화랑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을 겨냥한 예가 많다. 미술시장도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면서 글로벌 마케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처음부터 활동무대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감안하고 시작해야 시류에 빨리 적응하고 성공확률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화랑도 운영성격에 따라 몇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기획화랑, 대관화랑, 상설화랑 등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기획화랑은 주로 작가의 성향에 맞게 전시를 기획하거나, 일정한 테마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작가를 초대한다. 이럴 경우 대개 작품제작 이외의 출품과정 이후의 대부분은 화랑에서 경비를 부담한다. 대관화랑은 쉽게 말해 전시공간 임대업 성격이다. 원하는 전시기간을 정해진 경비를 지불하면 누구나 전시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시에 따른 모든 사항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끝으로 상설화랑은 365일 상품의 매매가 이뤄지는 상설매장과 같다. 주로 시장성 있는 작품의 유통을 전담하며, 기존 컬렉터들이 소장품의 환금창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상설화랑은 중개화랑으로 불리기도 하며, 미술시장의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유통단계이기도 하다.기존 기획이나 대관화랑에 비해 상설화랑에 대해선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상설화랑은 작품 판매만을 위한 전시공간이다. 주로 작가가 직접 작품을 위탁해서 판매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판매할 작품을 직접 화랑에서 구매해 걸어 놓거나 일반 컬렉터가 재판매를 의뢰하는 예가 대부분이다. 상설화랑의 경우 작가의 의지에 상관없이 시장의 분위기에 따라 작품가격의 편차가 심하다. 만약 같은 작가라도 시장의 선호도가 매우 높을 경우 작가의 호가보다 실제 판매가격이 훨씬 높아지고, 반대로 시장의 선호도가 낮을 경우엔 호가보다 밑돌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작가들은 상설화랑의 유통사례를 부정적으로 보는 예가 많다. 하지만 상설화랑이 자본주의 시장의 순기능에서 엄연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이 외에도 미술관의 유사한 기능을 하는 대안공간, 기획과 대관이 합쳐진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화랑 등이 있다. 최근에는 단일 성격보다는 여러 기능을 병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작품 판매는 화랑을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기획전이나 개인전 등을 통해 작품이 출품되고 매매된다. 또한 작품이 매매된 수익금은 전시형식에 따라 배분이 달라진다. 가령 전시 진행에 대한 경비를 화랑이 부담한 초대전일 경우엔 ‘작가 50% : 화랑 50%’의 비율로 배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혹 상황에 따라 ‘60:40’인 예도 있다. 일부에선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작가에 비해 화랑이 너무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이의를 제기하는 예가 있는데, 이는 짧은 소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랑이 초대전을 갖게 될 경우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을 경우까지 감안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전시장 대여료, 운영비, 인건비, 도록비, 홍보비 등의 실질적인 경비지출은 화랑이 떠안기 때문에 작가가 작품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성공적인 전시를 위한 화랑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화랑 초대로 전시가 이뤄졌다면 작품 판매에 대한 권한은 해당 화랑이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가격의 산출은 화랑과 작가가 협의해서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작품가격을 정하는 과정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한다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통례적으로 작가의 고집보다는 시장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화랑의 의견이 존중될 때 더 큰 효과가 발휘되는 예가 많다.만약 자비부담으로 전시회를 열게 된다면 작품판매에 관한 모든 사항 역시 작가의 몫이 된다. 간혹 전시 기간에 대여 화랑의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예도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관념상 작가가 직접 고객을 대상으로 작품판매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모양새가 안 좋다’는 견해가 높기 때문이다. 좀 더 적극적일 경우엔 프리랜서 아트딜러를 고용하기도 한다. 최근엔 전시 안내 도슨트와 작품 판매 아트딜러의 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화랑을 설립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편하다. 화랑을 운영할 공간을 확보한 이후에 관할 구청에 가서 사업자 신고과정만 거치면 된다. 이 경우 개인사업자로 할 것인가, 아니면 법인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세부 구비서류는 달라진다. 어떤 경우건 일련의 서류를 구비해 관할 구청과 세무서에 신고절차만 거치면 화랑 설립은 끝난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화랑의 설립과정이 아니다. 어떤 목적으로 화랑을 운영할 것인가 미리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화랑의 성격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랑들은 더욱 원활한 활동을 위해 화랑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이 (사)한국화랑협회는 상업화랑의 권리와 의무를 관장하는 기구이다. 가입절차는 어떻게 될까?협회에 가입신청을 하려면 사업자로 등록(개인사업자 혹은 법인)한 이후 3년 이상 영업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신청한 후보자에 대한 이사회 심의절차를 거치면 가입여부가 결정된다.심의과정에선 지난 3년 이상의 대외적인 실적을 평가하게 된다. 구체적인 심의항목으론 기획전의 실적평가가 대부분이다. 어떤 작가와 작품을 취급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취급품목은 근현대 미술품이어야 한다.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화랑은 고미술협회가 따로 있다. 그 외에 설립자의 대외 활동실적, 전시공간 확보여부, 사업자등록자와 실제 운영자의 동일여부 등을 따지게 된다.협회에 가입하게 되면 일정한 회비를 납부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신입 가입비는 200만 원이다. 가입한 지 1년이 지나면 정회원 심의를 거치고, 추가로 100만 원의 정회비를 납부한다. 그래서 화랑을 설립한 이후 협회의 정회원이 되기까지 총 300만 원이 소요되는 되는 셈이다. 또한 월별 정기회비는 화랑 소재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서울·경기지역이 월 8만 원이고, 기타 지역은 월 5만 원이다.만약 협회의 정회원으로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하게 될 경우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참여하게 될 국제 아트페어의 지명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부스비의 30% 정도를 지원받게 된다. 참고로 지원 대상의 아트페어는 국제적인 메이저급 혹은 주요 위성아트페어 등 약 16개 정도가 해당된다.상업화랑은 미술시장의 꽃이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창구이며, 보편적인 유통경로이다. 또한 상업화랑을 통해 1차적인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 미술품이 선보이는 첫 관문이자, 수요자를 만나는 창구인 셈이다. 그만큼 화랑의 역할은 미술시장의 건강상태를 좌우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애호가에게 그런 화랑을 직접 설립하고 싶다는 욕구는 어쩌면 그만큼 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도 지나치면 애증이 된다. 화랑설립의 꿈, 분명히 매력적이고 도전해 볼 만하다. 미술의 진정한 묘미는 즐기는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음을 잊지 말자.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