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고세원
최근 연기자 ‘고세원’은 지독하게 욕을 먹었다. KBS-2TV 주말연속극 ‘수상한 삼형제’에서 5년간 사귄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악역 중 악역, 왕재수역을 맡으면서다.‘사람을 비꼬는 말투부터 얄미운 눈빛까지’, 고세원의 ‘수상한 삼형제’ 속 연기는 ‘독했다’. 중년 연기자들 사이에서 낯선 얼굴인 고세원을 자칫 신인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1997년 KBS 공채로 데뷔한 13년 차 연기자다.
스무 살에 데뷔해 방황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우 고세원을 만났다. 참으로 오래, 악역이 ‘고팠다’
TV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이하 ‘수삼’)’에서 고세원은 한 마디로 ‘지독하게 나쁜 놈’이다. 성공과 신분 상승, 출세욕에 눈 먼 ‘왕재수’ 역을 너무 리얼하게 소화한 탓인지 돌아온 것은 완벽한 연기에 대한 칭찬이 아닌 ‘욕’이었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수삼’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질타는 어찌된 일인지 ‘왕재수’가 아닌 고세원에게 쏠린다. 하지만 오랫동안 ‘악역’이 고팠던(?) 그에게는 그 ‘욕’마저도 응원이 된다. “연기자에게 있어 늘 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요. 항상 개성 넘치는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사실 그동안 악역을 해 보고 싶었어요.
‘수삼’에서 맡은 ‘왕재수’ 역처럼 사람을 쉽게 가지고 놀고, 게임을 하는 역할이랄까요. 그런 차원에서 ‘왕재수’는 제겐 속이 시원할 정도로 고마운 존재예요.”
가족, 친구, 스태프들조차 ‘재수 없다’고 했다. 작정한 만큼, 참으로 제대로 해낸 것 아닌가. 무명 I - 그 치열했던 시간
1997년 꼭 스무 살이 되던 해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2년간 SBS TV 드라마 ‘승부사’, 패션 의류 브랜드 ‘스톰’ 광고 모델을 하며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은 잠깐, 2년 만에 시련이 찾아왔다. 스무 살, 연예인으로서는 준비가 덜 된 탓이었을까. 방황이 찾아오자 급작스런 군입대가 결정됐고, 이후 뜻하지 않게 ‘무명’의 시간이 길어졌다. “제대 후 찍은 2~3편 영화는 개봉도 하지 못했고,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자는 새 소속사의 제안에 2년을 넘게 준비에만 몰입했어요.
새벽부터 하루 종일 운동과 연기 연습, 외국어 연습, 춤 연습을 반복하며 재기를 노렸죠.” 그런데 서른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육중한 고민으로 어깨가 짓눌려 왔다. ‘이립’의 나이에 해 놓은 것 하나 없는 이름 앞에서 허망함만이 남더란다. 그때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 시작됐다. 무명 II - 뮤지컬과의 만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픔’은 ‘성숙’이란 선물을 안겨준다. 진짜, 목숨 한 번 제대로 걸어보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것. 해답은 ‘뮤지컬’. 즐기는 사람한테 당할 재간이 없단 말이 맞았다.
‘벽을 뚫는 남자’, ‘김종국 찾기’, ‘아이 러브 유’ 등 무명배우였던 그가 최고의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중의 시선을 ‘제대로’ 머물게 한 캐릭터를 만났으니, 2007년 케이블채널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의 ‘찌질남 혁규’다.
‘찌질남’은 ‘왕재수’로의 가교 역할이 돼 주었고 지금, 고세원은 토를 달 필요 없이 ‘유명’ 연기자가 됐다.“겉으론 밝아 보이지만, 슬픔이 서려있는 미스테리한 인물은 어떨까요.” 이제부터 그는 ‘미스테리남’에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한다. 여행, 비움의 시간 후 갖는 ‘채움’의 즐거움
그에게 여행은 ‘비움을 위한 시간’이다. 비워내는 작업이 즐거운 것은 그만큼 채울 공간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수삼’ 촬영이 끝나자마자 영화 세 편을 쉴 새 없이 찍고 있다.
각각의 영화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분했다. ‘개 같은 인생’과 ‘여의도’란 작품은 이미 촬영을 마쳤다.
“3월 말에 크랭크인 한 영화 ‘로드킬’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머리와 수염도 기르는 중이에요. 밤새 도박하고, 새벽에 옥탑방으로 돌아와 라면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인물이거든요. 그래도 행복해요. 10년 후에도 ‘국민배우’라 불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고세원’이란 이름만 듣고도 영화표를 사는 ‘그날’까지 그의 연기 열정은 충분히 뜨거울 것 같다.
Editor 김가희
Photographer 김유철(피에스타 스튜디오)
Stylist 엄정민, 김정애(위버)
Hair & Makeup 최금남(메이크업 초이)
Place 생각속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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