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가 사석원 & 토픽 포토에이전시 이명조 사장

(좌)사석원 작가(우)이명조 사장
(좌)사석원 작가(우)이명조 사장
화가 사석원이 가나아트센터와 가나아트부산에서 ‘하쿠나 마타타 - 문제없어’ 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7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준비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3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전시회 준비가 한창인 가나아트센터에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사진작가 이명조 사장이 찾아왔다.

동물화가로 유명한 사석원이 3년 만에 여는 ‘하쿠나 마타타’ 전은 치열하게 생을 이어가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석원 특유의 원색과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이번 작품들은 아프리카 원주민과 동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욱 부각된다.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석원을 만나는 날, 이른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약속보다 이른 시간에 갤러리에 도착해 느긋하게 전시회를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맞은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즈음 작가와 절친인-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니 나이와 상관없이 절친이라 해도 무방할 터이다-이명조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 앉은 이 사장은 이번 전시회에 나온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추켜세웠다. 강렬한 원색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는 사석원식의 해학이 돋보인다고 했다.
1. <하쿠나 마타타, 가면 쓴 표범>, oil and mixed media on blackboard, 195x120cm, 2008 2. <1003-02, 푸들>, oil and mixed media on blackboard, 100x80cm, 20093.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거북들>, oil and mixed media on korean paper, 1996~2009
1. <하쿠나 마타타, 가면 쓴 표범>, oil and mixed media on blackboard, 195x120cm, 2008 2. <1003-02, 푸들>, oil and mixed media on blackboard, 100x80cm, 20093.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거북들>, oil and mixed media on korean paper, 199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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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야생성과 강렬한 원색이 조화를 이룬 ‘하쿠나 마타타’ 전

이명조(이하 이) :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그림을 보면 강 속에서는 악어가 누우 다리를 물고 있거든요. 강아지 세 마리가 그려진 그림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 강아지와 이들을 질투하는 외톨이가 있죠. 저는 이런 게 재밌어요.

사석원(이하 사) : ‘하쿠나 마타타’는 2007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기획한 작품들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의 치열한 삶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야생동물에게 단 1초의 방심은 죽음을 의미하거든요. 죽지 않으려면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이 : 칠판이라는 소재도 좀 특이하던데요.

“두 남자의 막걸릿집 순례기, 오지 여행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사 :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서울 화양리에서 우연히 외국인 노동자를 만났어요. 서툰 한국어로 병원을 찾는 그를 보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된 삶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 뒤 외국인 노동자들을 찾아 칠판에 쓰고 싶은 걸 마음대로 써보라고 했어요.

원망이나 넋두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결과는 의외였어요. 대부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 등을 썼더라고요. 그 칠판 위에 코팅을 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이 : 여행을 같이 못 간 게 아쉽네요. 사실 우리가 많은 여행을 같이 다녔거든요. 둘이 처음 만난 것도 여행이 매개가 됐잖아요. 이집트 사하라 사막이었던 것 같은데요.

사 : 제가 사하라 사막 여행을 계획한다는 얘길 듣고, 아시는 출판사 사장님이 이미 다녀오신 분이 있다며 이 사장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이 : 가족여행을 사하라 사막으로 다녀왔거든요. 나일강 크루즈도 하고 사막에서 고생도 좀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무리였어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식구들을 전부 깨웠어요. 또 하나 사막의 밤이 의외로 추워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 선생은 추위로 고생하지 않으셨어요.

사 : 저는 따뜻할 때 가서 추위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어요. 일행은 텐트에서 잤는데 저만 답답해서 비박을 했습니다.

막걸릿집 순례로 시작된 도타운 관계

이 : 아무튼 사하라 여행이 우리 두 사람을 이어준 끈이 됐죠.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사 선생이 막걸리에 대한 책을 썼다는 거예요. 책 제목이 ‘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였는데 집에 가서 한 번 읽어봤어요.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면서 소탈한 게 사 선생의 인품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코드가 맞았던 거죠.

사 : 그때부터 막걸릿집 순례를 시작했죠. 저희는 서민들의 정취가 남아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피맛골부터 SC제일은행 본점 뒤 ‘남원집’, 종로5가 광장시장 좌판 한가운데 있는 ‘오순례’. 기자 분 집이 정릉이라고 그랬죠. 거기는 고대 근처에 ‘허파집’이라고 있어요. 허파볶음을 기가 막히게 하는데 메뉴도 대, 중, 소 세 가지뿐이에요.

저희가 가는 이런 곳은 대부분 예약이 안 되고, 장소도 좁은 곳이라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두 남자의 막걸릿집 순례기, 오지 여행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 :
인사동 ‘흑산도’ 같은 곳은 화장실 문이 안 닫혀서, 여자분들 모시고 가기에는 좀 그래요. 이상하게 모던하고 깔끔한 곳은 막걸리 맛이 안 나는 듯해요. 막걸리와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주인의 인간적인 매력과 전체적인 분위기도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사 :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모임이 생겼어요. ‘낭만모임’이라고. 여기 계신 이 사장이 ‘낭만모임’ 회장이세요.

이 : 네 명이 전부인 모임에 회장은 무슨. 요즘 막걸리가 인기잖아요. 그런데 새로 생긴 막걸릿집 가보면 인테리어도 너무 모던하고, 음식도 퓨전이라 진짜 막걸리 맛을 못 느끼겠어요. 그게 좀 안타까워요.

사 : 그렇다고 저희가 말술을 마시는 술꾼은 아닙니다. 막걸리 몇 주전자면 하룻밤을 지내죠. 어찌하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는 꼭 술자리를 하는 듯해요.

이 : 밤 11시에도 시간이 되면 만나게 되니까요. 우리는 좋은데, 사 선생 사모님이 싫어하시죠. (웃음) 제 아내는 사 선생을 워낙 좋아해서 별소리 안합니다.

제가 사 선생 책을 몇 권 갖다 줬더니 읽고는 집사람이 사 선생 팬이 됐어요. 사 선생이 패션 감각도 남다른데 저더러 옷 살 때 사 선생 꼭 데려가라고 그래요.

현재 사진 관련 사업을 하는 이 사장은 사진작가이자 도자기, 특히 조선 시대 백자에 조애가 깊다. 그는 조금만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조선 시대 백자 한두 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도자기 애호가다.

소재를 찾아, 또는 촬영을 위해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진작가와 화가는 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과 동행하기 어렵다. 작업에 방해가 돼서다. 그런 의미에서 뜻이 통하고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은 더없이 좋은 여행의 동반자다.

잊혀져가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좇아 떠난 해외 여행길도 함께였다. 그동안의 순례와 여행은 풍성한 추억과 진한 감동, 그리고 우정을 선사했다.

두 사람은 국내에서는 경북 영덕을, 해외에서는 남미를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꼽았다. 두 곳 모두 순탄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애주가에 취미도 비슷해 함께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재밌다.
두 사람은 애주가에 취미도 비슷해 함께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재밌다.
한옥 기행 하다 갑자기 대게잡이 배를 타게 된 사연

사 : 지난해 말에 이 사장님과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남미 여행을 갔어요. 멕시코, 페루를 거쳐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갈라파고스까지의 여정이었습니다.

: 하루는 사 선생이 뜬금없이 남미 여행을 제안하더라고요. 제왕나비라는 게 있는데 20만 마리가 떼를 지어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날아간다는 거예요. 그걸 보러 가자는데 전에 본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어요.

나비 보러 그 먼 곳을 가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갈라파고스까지 가자는 거예요. 거기서 확 끌렸죠. 사진하는 사람한테 갈라파고스는 성지나 다름없거든요.

사 : 그런데 여행이란 게 항상 계획한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페루에 있을 때 사장님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사장님은 그 길로 돌아오셔야 했죠. 갈라파고스를 눈앞에 두고요.

이 : 그뿐인가요. 나비도 못 봤어요. 8시간 버스를 타고 나비를 보러 갔는데 현지 기후 사정으로 나비를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기후 변화로 나비가 날아오는 시기가 늦춰졌다고 하더라고요.

사 : 저한테 갈라파고스에서 동물들 사진을 찍어주시기로 했는데, 결국 그 약속을 못 지키셨죠. 결국 제 아들이 이 사장을 대신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행은 즐거웠어요. 가이드도 잘 만났고요. 다 사 선생 덕이죠. 멕시코에서는 사 선생 고등학교 후배인 가이드를 만났고 페루에서 만난 험악한 인상의 가이드는 사 선생 대학 후배더라고요.

사 : 여행하면 대게잡이 배 탔던 경북 영덕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프차를 타고 한옥 기행을 다니다 경북 영덕에 닿았어요. 우연한 기회에 대게잡이 배 중 가장 작은 배를 탔어요.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데 배 이름이 ‘대길호’였어요. 사진을 좀 찍으려고 배를 탔는데 파도가 워낙 심해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이 : 그때도 발단은 술자리였어요. 밤늦게 술을 마시는데 사 선생이 갑자기 대게잡이 배를 타자고 하는 거예요. 다음날 7시인가 배를 탔는데 사 선생은 나보다 나았는데 저는 20분 만에 속을 다 비웠어요.

그때부터 배가 귀항한 12시까지 창고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힘든 적이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돌아가자는 소리를 못하겠더라고요. 마음이야 ‘오늘 일당 다 드릴 테니까 돌아가자’고 하고 싶은데, 그 상황에서도 뱃일 하는 어부들을 보니 차마 그 말이 안 나오더군요. 그 뒤로 가끔 ‘대길호’에 연락해서 대게를 주문해 먹는데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먹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배짱 맞는 사람과 어울려 낄낄대며 노는 재미란 얼마나 쏠쏠한가. 사회생활을 하며 뒤늦게 만났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만큼 소중하고, 무엇보다 재밌다. 그 재미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술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처럼 확장될 수 있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