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로 스포츠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것은 ‘시장 개척(market developement)’이나 ‘시장 침투(market penetration)’ 전략이다.

기업들이 근거지가 되는 자국에서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출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확대는 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세계무대를 거대한 하나의 시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글로벌화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로 스포츠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화는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을 갖춘 거대 기업이 ‘승자 독식’을 노린다는 점에서 ‘토종 기업’들에는 엄청난 도전과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스포츠 역시 자국 내 스포츠팬들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스폰서까지 독차지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대비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러스트·이경국
일러스트·이경국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역시 미국 프로 스포츠다. 미국은 메이저리그, 미식축구(NFL), 프로 농구(NBA), 아이스하키(NHL) 등 세계 프로 스포츠계의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100여 년을 넘게 각 지역을 연고로 탄탄하게 다져온 프랜차이즈와 기업들의 후원이 어우러져 성장해 왔다.

외국의 자본 없이 자국 시장만으로도 프로 스포츠는 자족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는 프로 스포츠 시장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타격을 입혔다. 특히 미국의 기간산업으로 프로 스포츠 시장의 ‘돈 줄’ 역할을 담당해온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스포츠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각 리그들과 구단들은 갑작스레 스폰서들의 자금이 끊어지자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해 기존에 후원사로 인정하지 않던 주류회사나 도박회사들의 자금까지 끌어들이는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그동안 너무 덩치를 키운 탓에 충족이 되지 않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보릿고개’를 만난 미국의 프로 스포츠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군침을 흘리는 곳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이다. NBA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NBA는 중국 출신 야오밍(姚明)의 인기를 업고 중국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미국 농구팬들의 여론조사에서 해외 프랜차이즈 1호로 가장 유력한 곳으로 중국이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업도 추진 중이다. NBA는 현재 아에게(AEG)와 손잡고 중국의 12개 주요 도시에 ‘NBA 규격’의 농구 경기장을 설립키로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총 투자 금액만 200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NBA와 AEG는 이미 베이징(北京) 올림픽 때 사용했던 경기장을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NBA 리그가 창설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첫 NBA 경기장은 상하이(上海)에서 올 연말께 개장할 계획이다. 이어 난징(南京)과 광저우(廣州) 등에도 들어설 예정이다. NBA는 자회사인 NBA차이나를 통해 중국 내 5개 기업(디즈니, 차이나그룹 인베스트먼트뱅크, 레전드홀딩스, 리카싱 펀드, 차이나머천드 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2억5000만 달러의 투자도 받았다.

NBA는 현재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터키 이스탄불, 서울, 일본 도쿄, 스페인, 멕시코, 홍콩, 캐나다 토론토, 대만 등 12곳의 해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조만간 인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도 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미국 내 최대 인기 스포츠인 NFL은 런던에서만 개최하던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중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규 경기는 아니지만 빠르면 올 가을이나 2011년에 ‘차이나볼(China Bowl)’로 명명된 프리시즌 경기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2008년 중국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그와 LA다저스가 시범 경기를 갖고 야구 클리닉 행사까지 열었다.

미국뿐 아니다. 세계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 구단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맨체스터라는 지역 대신 ‘맨유’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정규 리그가 끝나면 아시아, 미국, 아프리카 등을 돌면서 스폰서를 끌어들이고 팬 관리까지 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등도 이미 지역이나 국경을 넘어 글로벌 팀으로 성장했다.

프리미어리그에는 전 세계 기업들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어리그 첼시팀 유니폼에 로고를 새기는 조건으로 5년간 1000억 원을 전달했다. 미국의 거대 보험사인 AIG는 지난해 맨유와 4년간 5650만 파운드(약 850억 원)에 유니폼 광고 계약을 했다.

맨유가 한 해 전 세계 기업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3억 파운드(4500억 원)가 넘는다. 맨유 역시 중국 시장 공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을 다섯 차례 방문했다. 맨유의 커머셜 디렉터(commercial director)인 리처드 아널드는 “중국은 맨유의 제2의 고향”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성공하는 이유는 세계 소비자들의 기호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역시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리그에 팬들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인터넷 등 다양해진 미디어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좋아하는 팀들의 경기를 쉽게 접하게 되면서 유명 리그나 구단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국내 시장 역시 ‘메이저 프로 스포츠 리그’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생존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스포츠 글로벌화의 최대 타깃이 되고 있는 중국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는 조만간 전 세계의 프로 스포츠가 상륙하게 될 것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가 살아남을 수 있는 출구도 바로 중국에 있다. 자국 리그에 자족하는 태도를 버리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아울러 한·중·일 3개국에 기반을 둔 프로 야구팀을 별도로 창설해 아예 메이저리그에 편입해 뛰게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아시아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는 아시아 기업들의 후원이 줄을 이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거부한다면 ‘한·중 프로 야구 리그’를 창설해 향후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 야구와 삼각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차와 삼성, LG 등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메이저 스포츠’ 시장에서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단순히 후원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세계 유명 리그의 팀을 인수·합병(M&A)해 소유할 수 있다. 세계적인 팀을 인수하면 해당 기업은 일약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을 수 있게 된다.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5월 미국 NBA의 뉴저지 네츠는 러시아의 부호 미하일 프로호로프를 새 구단주로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의 구단주인 일본 게임기회사 닌텐도의 창업자 야마우치 히로시에 이어 미국 프로 스포츠 사상 두 번째 외국인 구단주다.

미국 프로 스포츠는 예전만 하더라도 외국인 구단주의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문턱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 프로 농구나 아이스하키, 메이저리그 축구팀의 경우 마음만 먹는다면 사들일 팀들이 많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글 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