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陽宅)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집터를 정하는 첫째 조건은 지리이며, 다음으로는 생리(生理)와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지리란 곧 풍수지리를 말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과 산의 형태를 강조했다. 풍수의 안목으로 물과 산을 보는 법을 살펴본다.
“물과 산을 보고 집터를 잡아라” 성공하는 터와 실패하는 터
물은 풍수에서 생기와 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시장이 생겨 재물이 쌓이며, 도시가 형성된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아는 재래시장은 모두 천변(川邊)에 자리하고 있다.

모란장, 화개장, 안성장, 정선장 등 전국의 유명 장터가 물가에 있으며, 서울의 청계천을 중심으로는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 중부시장, 중앙시장, 축산시장, 그리고 벼룩시장까지 몰려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는 당연히 사람도 모이고 돈이 집중된다.


재물운이 좋은 자양동, 압구정동, 용산

이때의 물은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감아주어야 좋은데, 재물이 다정스럽게 안아주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기준으로 서울의 지형을 보면 크게 물이 감싸는 지역은 자양동과 압구정동, 그리고 용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자양동은 건국대 주변을 중심으로 최근에 급부상하는 지역이고, 압구정동은 강남의 개발을 선도적으로 이끈 요지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1970년대 초 영동 지역 개발에서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정 명예회장의 땅을 보는 안목은 무서울 정도로 적중했다. 따라서 지금의 현대그룹을 일군 신화는 압구정동에서 기반을 다졌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용산은 한강이 가장 크게 감아 도는 지역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땅이다. 서울시는 용산에 대규모 국제업무단지를 유치해 뉴욕 맨해튼에 버금가는 금융상업지구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특히 용산의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땅이 된다.

필자는 저서 <청와대 입지의 재조명>이란 책에서 역사적으로 용산을 차지한 집단이 한반도를 좌지우지했으므로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하면 그곳으로 청와대를 옮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물이 좋은 형태는 앞에서 구부구불 들어와 나의 집터 뒤로 돌아나가는 지형으로 대표적인 것이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이다. 그곳은 2000년 10월 현대자동차 사옥 이전 프로젝트에서 필자가 세 곳의 후보지 중에서 강력하게 추천했던 곳인데, 그 이유는 양재동 사옥은 정면의 청계산 물이 사옥을 향해 들어오다가 뒤로 휘돌아 양재천으로 나가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풍수 고전에 “만약 당신이 속발(速發)하고자 하면 앞에서 물이 들어오는 땅을 구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 부합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양재동으로 이사한 후 승승장구해 매년 최고 매출과 이익을 경신하더니 드디어 세계 4위의 세계적 회사로 발돋움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단, 물이 들어오는 형태라도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예리하게 찌르는 형태이므로 불길하고 반드시 꿈틀거리며 들어와야 한다.


‘물’은 생기와 재물, 물길이 둥글게 감싸는 곳이 길지(吉地)

이처럼 물이 들어오는 형태도 좋지만 여러 곳의 물이 모이는 지점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지역이다. 대표적인 곳이 해방 이후 무려 120명의 박사를 배출한 춘천 서면으로 이곳은 북한강과 소양강, 그리고 작은 개천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모 월간지에서 신혼부부들에게 ‘국내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싶은 곳은’이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춘천 서면이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들의 2세도 좋은 땅의 기운을 받아 잉태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리라.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도 세 곳의 물줄기가 모이는 지점이다. 춘천 서면과 경주 양동마을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집단 취락이 있었던 전통적인 지역이다. 이를 통해 3000년 전 선사시대 사람과 현대인의 택지관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터를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곳에서 선택한다면 크게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근에 갑자기 마을이 형성된 곳이라면 옛사람들은 어째서 이곳에 집을 짓지 않고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요즈음 유행하는 전원주택 단지나 타운하우스 같은 입지 조건은 꼼꼼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의미에서 종합해 보도록 하자. 물은 생기와 재물이므로 둥글게 감싸주거나 앞에서 들어와 뒤로 나가는 모습이 길하다. 여러 물이 모이는 지점이라면 역시 좋은 터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등을 돌리고 나가거나 곧게 빠지는 모습은 불길하다. 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것도 재물이 급하게 빠지는 곳으로 마땅치 못하다.

이러한 물길의 형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지도 검색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살피면 큰 도움이 된다. 풍수지리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물길을 살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과 함께 길지와 흉지(凶地)를 가르는‘바람’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말이 의미하듯 풍수는 물과 바람을 살피는 학문이다. 이때의 바람은 고요한 산들바람이면 좋지만 일정한 방향에서 지속적으로 부는 바람은 기를 흩어지게 하므로 흉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하도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바람을 사람이 오랫동안 맞으면 건강에 치명적이듯 집도 계속 바람을 맞으면 풍파가 끊이지 않는 집이 돼 불길한 것이다.
“물과 산을 보고 집터를 잡아라” 성공하는 터와 실패하는 터
어느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시골에 A, B 두 마을이 약 200m 거리로 이웃하고 있다. A마을의 이장이 말하기를 자신의 동네는 자식들도 잘되며 별 어려움이 없지만, B마을의 남자들은 60세를 넘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고와 우환이 많다고 한다. 시름시름 앓게 돼 병원에 가면 뚜렷한 증세 없이 단순히 신경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가축들조차도 병에 걸려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풍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B마을의 입지 조건이 매우 꺼림칙하다. A마을은 마을 뒤쪽에 산을 의지하고 있어서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맞게 형성됐으나, B마을은 양쪽 봉우리의 중간 지점에 있어서 마을 뒤편이 허전하게 뚫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B마을은 바람이 몰아치는 정확한 지점에 위치한 것이니, 등 뒤의 차고 매서운 바람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그 후 집집마다 뒤편에 방풍림을 조성했으나 자연의 힘 앞에는 무력할 따름이다. 지금도 해마다 가구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10년, 20년 후에는 마을 전체의 존립 자체가 걱정되는 곳이다. 참고로 A마을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B마을은 근래에 형성됐다. 이처럼 바람은 전후좌우 관계없이 불리한 것이기 때문에 풍수에서는 주산과 청룡·백호 안산 등을 따지며, 국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경복궁의 지세도 마찬가지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자하문 근방이 허해서 경복궁은 늘 바람을 맞는 지점이다. 조선 초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윤신달이 이성계에게 이점을 지적했으나 중신들의 의견에 묻히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은 518년 동안 경복궁을 사용한 기간(245년) 보다 버린 기간(273년)이 많았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종이 즉위해 경복궁을 중건했지만, 또다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불과 45년 만에 망하고 말았으니 이 모두 풍파가 많은 탓이다.

한편 요즈음 도시의 팽창으로 집이 점점 높은 산마루로 올라간다. 특히 마루터기 정상에 위치한 곳은 탁 트인 전망은 좋을지 모르지만 역시 늘 바람이 세찬 곳이다. 이러한 곳은 얼마 전까지도 취약한 산동네 달동네였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풍수 고전에 “물 아끼기를 피 아끼듯 하고, 바람 피하기를 도적 피하듯 하라”고 경계했으니 현대에도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면산 산태가 던진 풍수지리적 교훈

우리는 지난달 서울 지역의 엄청난 호우와 산사태로 우면산 근처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죽거나 재산의 피해를 입은 것을 목격했다. 필자는 사고 다음날 그곳을 방문해 사고 난 지점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모두가 계곡에 위치한 곳이었다. 제 아무리 도로로 포장하고 콘크리트 옹벽으로 물길을 돌려도 물은 자신의 길을 정확히 기억하며 흐른다.

물길은 평상시 한가할 때는 여유롭지만, 자신의 길을 막았다고 판단할 때는 거침없이 분노하고 용서가 없었다. 이 자연의 분노 앞에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계곡은 물과 바람의 통로다. 위에서 말했지만 물은 재물이며 생기인데, 계곡은 빠르게 물이 빠지는 지점이다. 또 밤낮으로 바람까지 불어대니 풍수 이론의 양택 조건과 대치되는 땅이다.

집을 선택할 때는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러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끝으로 풍수지리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돼 수천 년을 지내오면서 하나하나 정립된 지혜와 경험의 이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면, 아니 실패하지 않으려면 한번쯤 자신의 위치를 풍수를 떠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지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