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지적 능력은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측정됩니다. 지금 같은 모바일 시대에도 직접 실행해 답을 찾는 ‘코딩(coding)’이 답인 이유죠. 저는 지금도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의 소스를 받아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어요.”

김택진(45) 엔씨소프트 사장은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쉐라톤 다큐브시티 호텔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디브온 2011’에 참석해 자신의 아이폰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줬다. 그가 직접 만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의 화면에는 그의 동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최근 2주 동안 두문불출하고 만들었다”며 “제가 다녔던 모든 길과 장소를 저장하다 보니 배터리가 빨리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해결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최고 경영자
국내 대표적인 게임업체 최고경영자(CEO)인 김 사장은 여전히 현직 프로그래머다.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엔엑스씨 대표가 개발 일선에서 물러난 것과 비교된다. 이는 김 사장이 지금의 엔씨소프트를 일궈낸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는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에 매진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나온다”고 말한다. 김 사장이 디브온 2011에서 후배 개발자들에게 현실과 부딪히며 답을 찾는 과정의 필요성을 프로그램을 만드는 단어인 코딩에 비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속담 중에 ‘염불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돼요. 대박이라는 결과가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죠.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좋은 생각입니다.” 이날 그의 이 말은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이끌어 냈다.



맨손으로 이룩한 ‘리니지’ 신화

김 사장은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 ‘아래아한글’을 이찬진(현 드림위즈 대표)과 공동으로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한글타자 연습 소프트웨어의 대명사인 ‘한메타자교사’도 그가 개발했다. 대학 졸업 후 병역 특례 연구원으로 입사한 현대전자에서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인 ‘아미넷’도 만들었다. 1997년 직원 17명과 함께 자본금 1억 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설립,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8년에 선보인 첫 작품이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만든 ‘리니지’다. 2010년 리니지 시리즈는 국내 온라인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누적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후 ‘리니지2’,‘아이온’ 등도 잇따라 성공시키며 온라인 게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창립 첫해인 1992년 5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0년 6497억 원으로 급증했다.

18년 새 1300배로 폭증한 셈이다. 2000년에는 코스닥에 진출해 2012년 1월 12일 기준 시가총액이 6조525억 원이다. 김 사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은 551만 주(25.2%)로 1조5000억 원이 넘는다. 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1년 세계 갑부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내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지난해 4월에는 경남 창원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를 창단해 화제가 됐다.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최고 경영자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엔씨소프트 성공의 중심에는 당연히 김 사장이 자리한다. 회사 설립 이후 계속 게임 개발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넥슨, 네오위즈게임즈, NHN 한게임, CJ E&M 넷마블 등 경쟁업체의 수장들이 게임 개발보다는 회사 경영에 주력하는 것과 대조된다. 새로운 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회사에서 게임을 점검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 2010년도는 신작 ‘블레이드 앤 소울’ 사내 테스트를 하면서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4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3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엔씨소프트의 야심작이다. 트위터를 애용하는 김 사장은 2010년 관련 트위트를 잇따라 올렸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보려고 10년 넘게 서양의 판타지로 경험을 쌓아왔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스타일의 게임이 블레이드 앤 소울(블소)이다. 동양의 자부심을 그리고 싶다. 일하다 나와 회사 옥상에서 벌벌 떨며 어이 춥다’, ‘블소 테스트하다 까만 밤하늘을 보며 집에 들어간다. 하얀 사무실 불빛 속에 남기고 온 동료들과 아이들을 품고 자고 있을 우리들의 아내들과 남편들이 아른거린다. 미안함과 고마움 속에 또 새벽별 보기가 시작됐다. 하루하루 땀방울 속에 꿈이 자라났으면’ 등 게임 개발에 대한 애환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일하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며 “행복감은 과정에 있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투수가 마운드에 섰을 때 지금 이 순간 어떤 공을 던질까 고민해야지 오늘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회사도 연초에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자고 하지만 결국 과정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매순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성공 비결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대 게임개발사,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국내에서 가장 큰 게임개발사다. 경쟁 업체는 좋은 게임을 보유한 게임개발사를 인수하거나 게임 유통을 하는 데 주력한다. 업계 1위인 넥슨의 캐시카우인 ‘메이플 스토리’와 ’‘던전 앤 파이터’는 넥슨의 자체 개발 게임이 아니다. 각각 위젯과 네오플이라는 개발사를 인수해 확보한 게임들이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슬러거’, NHN 한게임의 ‘테라’ 등은 자체 개발 게임이 아니라 유통하는 게임들이다.

반면, 엔씨소프트의 주력 게임인 리니지 시리즈, ‘아이온’ 등은 자체 개발 게임이다. 엔씨소프트는 우직하게 4~5년 동안 하나의 게임 개발에 매진한다. 그것도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이라는 한 장르만 고집한다. 이 분야에 있어서 엔씨소프트는 세계적인 ‘장인’으로 자리 잡았다. 신작인 블레이드 앤 소울 이후 준비 중인 게임도 MMORPG다.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박람회 지스타 2011에서 전격 공개한 ‘리니지 이터널’이 그것. 자체 개발한 게임들이 주력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도 높다. 지난해 매출로 따지면 네오위즈게임즈에 2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영업이익은 더 많다.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최고 경영자
“아이디어는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에 매진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나온다.” 김택진 사장이 현실과 부딪치며 답을 찾는 과정의 필요성을 프로그래밍 단어인 코딩에 비유한 이유다.



신작 개발과 맞먹는 업데이트

리니지 1, 리니지 2, 아이온 등은 출시 이후 인기 순위 상위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심지어 리니지 1은 지난해 2분기에 후속작들을 따돌리고 분기 최고 매출(663억 원)을 기록했다. 비결은 신작 게임 출시와 맞먹는 대규모 업데이트다. 온·오프라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용자의 의견을 수렴, 게임에 반영하고 있다. 리니지는 지난해에는 출시 13주년을 맞아 해상전투 콘텐츠가 추가되고 상아탑 등 게임 배경이 리뉴얼됐다. 리니지 2는 올해 1월 11일에 신규 업데이트 ‘파멸의 여신 챕터 2-타우티’를 실시했다.

지난해 6월 진행된 대규모 업데이트 ‘파멸의 여신-각성’ 이후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해 콘텐츠를 다시 손질한 것이다. 새로운 공성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아이온도 지난해 4회나 업데이트했다.업계 관계자는 “MMORPG 같은 온라인 게임은 닌텐도 위, 플레이스테이션 3 등 콘솔용 게임처럼 출시되고 반짝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매번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며 “엔씨소프트가 게임 3개만으로 국내 최고 게임업체로 자리 잡은 것은 업데이트에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자체 개발 게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점도 있다. 신작 게임이 나오지 않은 지난해 성장세가 주춤했다. 그래서 야구 게임 등을 보유한 엔트리브소프트를 인수해 게임 라인업을 다양하게 짠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MMORPG 명가’라는 타이틀은 지킨다는 각오다. 김 사장은 “지금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사양이 낮아 엔씨소프트 게임을 이용할 수 없지만 아이패드4가 나올 때는 저희 게임이 돌아갈 수 있다”며 “2~3년 뒤면 엔씨소프트의 MMORPG도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