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수록 강한 경기 방어 품목으로는 주로 세 가지가 꼽힌다.
식사 대용식 가운데 가장 저렴한 라면, 국내 주류를 대표하는 만큼 수요가 안정적인 소주, 가격 움직임이 적어 불황기에도 판매가 안정적인 담배다.


주도주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 증시를 주도하던 정보기술(IT), 자동차의 기세는 예전만 못하다. 그 대신 음식료, 제약 등 홀대받던 업종들이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됐다. 대외 변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소위‘경기 방어주’다. 이들은 올 초까지만 해도 증시에서 존재감이 약했다.

우선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타격이 컸다. 음식료주는 물가 인하 압박으로 소매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기 어려웠다. 제약주는 약가 인하의 직격탄을 맞고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실적이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 속에 최근 위기가 달라졌다. 음식료주는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고, 제약주도 원가 절감 등으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무엇보다 경기에서 덜 민감하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유럽 재정 위기가 확산될 조짐인 데다 글로벌 경기 회복도 더뎌지면서 투자자들에게 ‘피난처’로 떠오른 것이다.
[KOSPI] 불안한 시장의 대안, 경기 방어주…음식료주와 제약주 화려한 부활
불황이라도 음식료 수요는 든든

음식료업종은 올해 2분기에 본격적인 이익 개선이 기대되는 업종이다. 우원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2분기 이후 원재료 투입 단가 개선, 수요의 기저 효과, 해외 사업 고성장 등이 음식료업종의 이익 개선을 이끌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음식료주 8개(CJ제일제당·오리온·농심·대상·롯데삼강·빙그레·오뚜기·매일유업)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7.6%, 하반기 이익은 27.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음식료주 실적 개선의 관건인 곡물 가격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해지자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곡물 가격 하락분은 올해 2월 원재료 투입 단가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란 전망이다.

억눌렸던 가격 인상 역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농심의 라면 가격 인상 후 삼양식품과 오뚜기 등도 라면 가격 인상의 명분을 확보했다”며 “12월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가격 인상이 어려워 2분기 말이 식품업체에게는 최적의 시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의 물가 의지가 여전한 만큼 과다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조언이다.

불황일수록 강한 경기 방어 품목으로는 주로 세 가지가 꼽힌다. 식사 대용식 가운데 가장 저렴한 라면, 국내 주류를 대표하는 만큼 수요가 안정적인 소주, 가격 움직임이 적어 불황기에도 판매가 안정적인 담배다. 반면 맥주와 홍삼, 위스키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제품들은 같은 음식료업종에서도 경기에 민감하다.
[KOSPI] 불안한 시장의 대안, 경기 방어주…음식료주와 제약주 화려한 부활
이와 별개로 레토르트나 냉동식품 등 편의성을 앞세운 제품들은 장기 성장세가 탄탄할 것으로 예상됐다. 1인 가구가 늘어난 데다 여성 인력이 증가하면서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수 시장도 여전히 성장세다.

음식료주 가운데서도 이처럼 성장 동력을 갖춘 종목이 주목 대상이다. CJ제일제당은 라이신 등 마진이 높은 바이오 부문을 중심으로 외형 성장이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중국 선양(瀋陽)에 라이신 생산시설을 증설한 데 이어, 미국과 말레이시아 등에도 바이오사업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오리온은 중국 제과 시장에서 선두업체로 떠오르면서 관련 매출이 크게 뛰었다. 중국 법인은 시장지배력 강화에 힘입어 2014년 오리온 전체 매출의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일본에 프리미엄 제과를 지속적으로 내놓아 신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이 외에도 매일유업, 현대그린푸드, 대상 등이 실적 증가를 예상해볼 수 있는 추천주로 꼽혔다.
음식료주 실적 개선의 관건인 곡물 가격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해지자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음식료주 실적 개선의 관건인 곡물 가격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해지자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무더위 타고 빙과류 관련주도 상승세

일찍 찾아온 무더위도 음식료주에겐 호재로 작용했다. 빙과업체인 빙그레와 롯데삼강의 주가는 지난 5월부터 상승에 시동을 걸었다. 우원성 연구원은 “지난해는 강우량이 많아 아이스크림 부문이 부진했지만 올해는 기상 여건이 양호해 다를 것”이라며 “빙그레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상반기는 37.0%, 하반기엔 52.8%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 호조도 빙그레의 주가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강희영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빙과류 수출 국가가 늘어나면서 올해 빙그레의 전체 수출 규모는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400억 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바나나맛우유, 요플레 등 장수제품의 가격을 9%씩 올려 수익성 개선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했다.

김윤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유통업계가 주도하던 빙과의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로 이전되고 있는 데다 지난해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도 높다”며 롯데삼강을 하반기 최선호주(톱픽)로 꼽았다. 신성장 동력인 식자재사업이 롯데그룹의 유통 인프라에 힘입어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것도 점수를 줬다.

다만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부담은 점검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 주가가 급등해롯데삼강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1배로 과거 흐름상 고점을 넘어섰다”며 “하지만 식자재사업의 성장성이 가시화된 만큼 1배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음식료주의 상승 드라이브에는 환율 변수가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환율 상승에 따라 음식료업체들의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외화 환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원성 연구원은 “환율이 오르면 KT&G는 해외 담배 매출이 잎담배 수입 규모보다 많아서 이익에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CJ제일제당과 농심 등은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고 외화 부채 규모가 큰 편이라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규제 뭇매 맞았던 제약주도 부활

제약주는 약가 인하 등 각종 규제가 겹치며 지난해 최악의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맷집’이 좋은 상위업체들을 중심으로 하반기 실적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경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처럼 경기방어주 역할도 가능할 것이란 진단이다.

제약업종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개량 신약과 대형 제네릭(복제약) 품목을 기반으로 높은 성장성을 보였다. 금융 위기 당시에는 경기방어주 역할도 톡톡히 했다. 2008년 제약업종 주가등락률은 -29.%로 코스피지수(-40.7%)보다 나은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약가 인하, 리베이트 관행 규제에 나서며 방어주 패턴은 사라졌다. 지난해 제약업종의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1.8%포인트 하락한 8.0%에 그쳤다. 하태기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주요 제약사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30~60% 감소했다”며 “2분기는 4월 약가 일괄 인하 여파로 여기서 더 감소해 최악의 실적을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KOSPI] 불안한 시장의 대안, 경기 방어주…음식료주와 제약주 화려한 부활
제약사들은 자구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승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다국적 제약사의 상품 도매를 강화해 외형 성장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라며 “저마진 상품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부담이지만 영업 효율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입 원료 가격 재협상을 통해 제조 원가율을 낮추고, 판관비를 축소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노력이 하반기 실적부터 반영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약주(상위 7개사 기준)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9.2% 급감하며 바닥을 찍을 것”이라며 “판매 관리비 절감과 원료 단가 인하를 통해 3분기부터는 실적 회복이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옥석은 가려야…대형주 노려라

전문가들은 앞으로 3~4년간은 약가 규제가 추가적으로 나오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번 약가 인하로 인한 업계 손실규모는 1조7000억 원으로, 지난 6~7년간 합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기를 벗어난 만큼 반등을 시도하기 적절한 시점이란 분석이다.

정부가 이달 ‘혁신형 제약기업’을 뽑아 약가 우대 등 지원에 나설 방침인 것도 호재다. 현대증권은 “매출과 연구개발비가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동아제약, 유한양행, 한올바이오파마, 메디톡스 등이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분석에 힘입어 주가도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의약품업종 지수는 4.4% 내렸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등락률(-7.0%)보다는 선전했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 들어 월간 기준으로는 처음 시장수익률을 웃돈 것”이라며 “제약주가 오랜 부진의 끝을 지나 이제 경기방어주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음식료주의 상승 드라이브에는 환율 변수가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환율 상승에 따라 음식료업체들의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외화 환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료주의 상승 드라이브에는 환율 변수가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환율 상승에 따라 음식료업체들의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외화 환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옥석은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형 제약사들은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운 반면, 규모가 크고 브랜드 가치가 좋은 기업은 실적이 차별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미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리베이트 규제가 강해진 만큼 ‘정도(正道) 영업’을 하는 중상위 제약사가 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라며 유한양행과 종근당을 ‘톱픽’으로 꼽았다.

반면 매출구조상 리베이트 영업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제약사들은 이번 규제 강화에 따라 적잖이 영업이 위축되고 성장성에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해외 진출이 활발하거나 글로벌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춘 한미약품, 동아제약, 유한양행을 주목했다. 유한양행은 다국적 제약사에서 도입한 에이즈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등의 신규 매출이 외형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됐고, 한미약품은 중국 매출이 성장세인 점에서 점수를 받았다.

현대증권은 녹십자에 대해 “혈액제제와 백신 등 약가 규제와 무관한 주력사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계절독감 백신을 올해 신흥 시장에 수출하는 등 수출도 양호해 올해 영업이익 개선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 한국경제 기자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