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범의 Mystic Art Story

“펠팜은 작업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은 런던보다 훨씬 영적인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곳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금문(golden gates)이 모두 열려 있답니다. 이곳의 창에는 안개가 서려있지 않죠. 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보다 뚜렷하게 들리고 그들의 외모는 훨씬 우아하게 보인답니다. 나의 거처도 그들 거처의 응달에 자리하고 있지요. 나의 부인과 여동생은 잘 지낸답니다. 둘은 넵튠(바다의 신 포세이돈)보고 안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답니다. (중략) 제 작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이곳 천국에서 인기가 있죠. 나의 머릿속에는 습작이 가득하고 방에는 내가 인간 세상에 나오기 전인 영원의 시절에 쓰고 그린 책과 그림으로 채워져 있어요. 이 작품들은 대천사가 (저의 손을 통해) 환희 속에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1827)가 1800년 9월 21일 친구 존 플랙스맨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마치 정신병자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낭만주의 회화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지만 살아있을 때만 해도 그는 늘 ‘미친 ×’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툭하면 천국의 사람들, 혹은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 그 누가 정상이라고 여겼겠는가.

속설에 따르면 블레이크가 이상한 것, 즉 환영을 보기 시작한 것은 네 살 적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창 밖에서 집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신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여덟 살에는 천사로 가득 찬 나무를 보고 이 사실을 아버지한테 알렸다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호되게 매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평생 현실과 초현실이 뒤섞인 환상 속에서 살았다. 성장하면서 그림에 흥미를 느낀 블레이크는 15세에 제임스 바사이어의 문하에 들어가 7년간 수련을 했는데 바사이어는 그가 이미 16세 때 자신만의 상징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블레이크는 자신이 본 환영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 세계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세계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블레이크의 눈에 세계는 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세계를 창조한 신도 사악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창조주를 유리젠(Urizen)이라고 명명했다. 또한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는 메시아(구원자)가 아니라 단순히 우주를 만들어낸 창조주로서 모든 도그마와 논리, 도덕을 초월한 존재라고 봤다.

블레이크는 제도화된 기성의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인간적 욕망의 자연스러운 분출을 억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죄(sin)’라는 개념은 인간의 욕망을 옭아매기 위해 만든 올가미로 질투심과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연애를 옹호하는 듯한 이런 입장은 무분별한 사랑을 옹호한 것이라기보다 기성의 종교가 남녀관계를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계로 몰아감으로써 진실한 사랑을 방해한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아울러 사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오류 상태에 빠진 것을 지칭하며 따라서 구원의 대상이라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독특한 종교관을 바탕으로 블레이크는 서양미술사상 어느 화가도 생각한 적 없는 수많은 신비로운 이미지들을 창조해낸다.
‘태초의 창조주’, 1794년, 동판화에 수채, 23.3×16.8cm, 런던 대영박물관
‘태초의 창조주’, 1794년, 동판화에 수채, 23.3×16.8cm, 런던 대영박물관
‘태초의 창조주’는 그의 독특한 신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젊은 시절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그가 런던의 램버스(Lambeth)에 살 때 계단 위에서 떠오른 환상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여기서 창조주는 바다 앞에서 컴퍼스를 세워 작업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구약성서의 잠언 8장에 나오는 깊은 바다 앞에서 컴퍼스를 세우고 만물을 창조하는 야훼(여호와)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블레이크는 1805년을 전후한 시기에 토마스 부트로부터 성서를 테마로 한 이미지 100여 컷을 주문받는데 그중 묵시록 12, 13장을 주제로 한 드래건 시리즈는 보는 이를 전율감에 빠트리고도 남음이 있다.

‘거대한 붉은 드래건과 태양을 두른 여인’은 그중 한 장면으로 온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인 붉은색의 드래건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멸망시킬 듯한 기세로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사탄을 상징하는 이 드래건(번역하면 ‘용’이지만 동양의 용과는 다르다)은 7개의 머리, 10개의 뿔을 가진 강력한 존재다. 지금 드래건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태어날 아기(예수)를 성모로부터 강탈하려고 접근하고 있다. 하트 모양의 날개를 단 성모는 태양을 업은 채 사탄에 대적하고 있다.
‘거대한 붉은 드래건과 태양을 두른 여인’, 1805~1810년, 수채, 40×32.5cm,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거대한 붉은 드래건과 태양을 두른 여인’, 1805~1810년, 수채, 40×32.5cm,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블레이크의 상상력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문받은 단테의 ‘신곡’ 삽화에서도 빛난다. 단테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여행하던 중 맞닥뜨린 장면을 묘사한 ‘사랑하는 이들의 회오리’는 그중 대표적인 장면이다.

클레오파트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등 애욕에 빠져 죄를 범한 자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장면을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것이다. 오른쪽에는 이들을 지옥에 보내는 절대자가 고뇌하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이는 평소 욕망의 억압에 반대했던 블레이크 자신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이들의 회오리’, 펜·잉크 및 수채, 37.4×53cm, 버밍엄미술관
‘사랑하는 이들의 회오리’, 펜·잉크 및 수채, 37.4×53cm, 버밍엄미술관
블레이크는 평생을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았다. 사람들이 ‘미친’ 화가의 그림을 사줄 리 만무했다. 몇몇 극소수의 혜안을 지닌 사람들만이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다. 그의 작품의 진가를 처음 발견한 것은 낭만주의자들이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이 자가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자의 광기 속에는 제정신이었던 바이런이나 월터 스코트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평가했다. 광기는 세상을 바꾸는 힘인 것일까. 오늘도 수많은 예술가들은 블레이크 작품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정석범 _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