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이과도 없고 학년도 없다. 수능과 전혀 관련 없는 과목도 많다. 시험에는 감독이 없다. 다른 특목고와 마찬가지로 내신이 좋을 리 없다. 그리고 매일 체육, 음악, 미술에 1시간 반씩 투자하고 주말이면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에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등 국내 주요 대학과 해외 명문대에서 하나고 졸업생을 부르는 이유에는, 하나고 학생들은 전략적으로 입학부터 고교 3년 동안 각자의 꿈을 중심으로 실력을 키워 수시 전형에 적합한 인재로 육성된 배경이 있었다.
[입시 돌풍, 하나고에 가다] 하나고 교육 스타일 키워드는 ‘체·덕·지’
2012년 12월 11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하나고등학교 교정에서 만난 우진영(19) 양은 연세대, 고려대를 합격하고 미국 스탠퍼드대로부터 합격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 양은 자신의 진로와 꿈에 대해서 이미 확고했다.

디자인과 기술을 융합한 기능설계(functional design)를 전공한 후 작은 아이디어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선택에 있어 어느 곳이 자신의 꿈에 가장 적합한 진로인가를 고민 중이다.

우 양의 중학교 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2010년 하나고 입학 전형 때도 합격이 불투명했지만 면접에서 자신의 꿈을 강력히 어필한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전국 상위 5% 안팎의 수재들이 모인 하나고에서 첫 학기 주눅이 들기도 했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았다고 회상한다.

“그때 자포자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전의식이 생겼어요. 주위 친구보다 더 잘하겠다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 더 좋은 성적을 조금씩 성취하고 싶었어요.”

또래들로부터 충분히 동기 부여를 받은 우 양은 학교 시스템에 따라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워야 했고,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기 위해 면학실(자습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전에는 4시간 이상 공부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뭐든 일을 시작해놓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목표를 세우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영어에 특기가 있던 우 양은 2학년 때 하나금융그룹이 스탠퍼드대에서 주최한 ‘코리아 컨퍼런스’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의 유명 사립고교 교사들을 초청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그는 이 행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경험을 계기로 스탠퍼드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미국 대학 입학자격시험(AP) 과목과 국제법 등을 선택해 수강했다.

마침내 스탠퍼드대로부터 면접 통보를 받고 입학사정관 앞에 섰을 때 받은 질문은 한·미행정협정(SOFA)에 대한 것이었다. 우 양은 이미 국제법 시간에 이에 대해 토론을 해본 적이 있어서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우 양은 성공적인 학업 성취 외에도 해금 연주, 요가, 국궁도 수준급이다. 하나고의 ‘1인(人)2기(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난 3년 동안 틈틈이 실력을 닦아온 덕이다. 공부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해금 연주는 큰 위안이 됐고, 1학년 때부터 함께 해금을 배워왔던 10여 명의 친구는 모든 고민을 나누는 베스트프렌드가 됐다.
수업은 스스로 과제 연구 계획을 수립해 친구들과 공동 연구팀을 구성해 연구하는 방식이다. 교사는 과제 연구의 과정을 평가하고 형식만을 지도할 뿐이다. 결과물은 학술제에서 발표하는 프로세스다.
수업은 스스로 과제 연구 계획을 수립해 친구들과 공동 연구팀을 구성해 연구하는 방식이다. 교사는 과제 연구의 과정을 평가하고 형식만을 지도할 뿐이다. 결과물은 학술제에서 발표하는 프로세스다.
문·이과 구분과 학년도 없어

우 양 외에도 하나고가 양성한 인재 중에는 화제의 인물들이 많다. 대학생이나 금융사 직원이 취득하는 증권분석사 시험에 수석 합격한 학생, ‘한·일 이공계 국비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전국 최상위권의 성적을 올려 도쿄대 자연계열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학생, 20개국 140여 명이 참가한 국제 청소년 물리토너먼트대회(IYPT)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학생, 금융투자동아리를 통해 모의 투자뿐 아니라 기업 탐방 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나 작성하는 보고서를 쓴 학생들, 수준급 영어 논문을 쓴 학생 등.

하나고 학생들은 여느 고등학생처럼 단순히 내신 1등급, 수능 전국 상위권 성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고의 커리큘럼은 수능시험과는 거리가 멀다. 문·이과의 구별도 없고 수능시험에 대비하는 획일적 시간표도 없다.

특히 내신은 현 입시제도하에서 하나고 학생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 하나고 선택 과목이 다양해 12명 미만의 소수가 선택하는 강좌도 개설된다. 이럴 경우 학생들의 내신 산출 점수는 매우 불리해진다. 하나고에는 내신 1등급이 많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우수한 학생들끼리 과목을 수강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내신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하나고 학생들은 학년 구분 없이 본인의 적성과 희망 진로에 따라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해 대학처럼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다. 수능과는 상관없는 ‘대중연설과 프레젠테이션’,‘비교문화’,‘영미문학’,‘생활과 심리’, ‘미술 감상과 비평’,‘국제법’,‘AP과목’,‘고급 수학’ 등 대학 커리큘럼에나 있을 법한 과목이 많다.

하지만 현행 입시제도와는 맞지 않는 하나고의 새로운 교육 방식은 대학의 수시모집에서는 빛을 발한다. 하나고는 입학부터 전략적으로 학생들의 흥미와 능력을 중심으로 교육해 수시 전형에서 경쟁력을 갖게끔 커리큘럼을 설계한 것이다.
지난여름 하나고는 해외 고등학생들을 초청해 녹색 성장을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지난여름 하나고는 해외 고등학생들을 초청해 녹색 성장을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100%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신입생 뽑아

하나고의 신입생 전형부터 살펴보자. 모집 인원은 한 해 모집정원 200명 중 40명이 하나임직원의 자녀 대상이다. 학교 측에 따르면 지원이 가능한 하나금융그룹의 임직원 자녀는 한 해 1000명에 달한다. 이 중 20명이 선발된다. 그리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40명이다. 여기에는 국민기초수급자,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등이 속한다.

특별 전형 80명을 제외하면 일반 전형은 120명이다. 지원 자격은 특별한 제한이 없다. ‘2013년 하나고 신입생 전형 안내’에 따르면 제출 서류는 입학원서, 교사추천서, 내신산출결과표, 생활기록부 등이다. 시험도 없고 특별한 제출 서류도 없다. 전형에서의 배점을 살펴보면 교과 성적이 50%로 가장 중요하다. 학교 측에 따르면 전국 상위 5% 안팎의 학생들이 합격선이다. 그러나 높은 성적만으로는 합격하기 힘들다.

‘100% 자기주도학습 전형’인 만큼 하나고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외의 다양한 활동 경험이다. 학교 측의 귀띔에 의하면, 특별한 재능이 있다거나 봉사활동, 일정 사안에 대한 탐구·조사 활동을 한 경우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자기개발 계획서상의 진로나 꿈과 잘 연결되는 경우 합격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주목할 만한 스토리가 있는 지원자가 선발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전언이다.

이는 대학의 수시 전형과 내용이 일맥상통한다. 하나고는 입학에서부터 이미 잠재적으로 대학 수시 전형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새싹을 뽑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새싹들은 하나고 3년 동안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양한 교과목에서 자신의 진로, 적성, 흥미와 능력에 맞는 수업을 골라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난이도를 조절하며 잎을 피운다. 한 달에 한 번만 외출, 외박이 가능하므로 과외나 학원 등의 사교육은 전면 차단된다.
[입시 돌풍, 하나고에 가다] 하나고 교육 스타일 키워드는 ‘체·덕·지’
“Hana Academy makes it possible”

기자는 하루 종일 하나고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주관적이겠지만 학생들이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밝고 해맑다는 느낌이었다. 영재들이 모인 만큼 그 안에서 경쟁도 치열하고 스트레스도 많을 듯한데 어두운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에 찌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등학생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더불어 선생님에 대한 반감은커녕 스스럼없이 선생님과 장난치고 있는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63명의 교사들은 거의 전교생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과 학생이 밤낮없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친밀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읽었는지 김승유 하나고 이사장은 기자에게 “우리 아이들 예쁘죠? 일반 고등학생과 다를 겁니다. 느낌이나 말하는 것이나…”라고 말을 건넸다. 하나고 학생들은 학업뿐 아니라 1인2기, 동아리 활동 등으로 다방면의 지식과 소양을 쌓은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고 울타리 안에서 공부와 자기 꿈에 집중하는 동안 외부의 때나 유혹은 파고들지 못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고 학생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모든 학생은 오전 6시 20분에 기상한다. 학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8시 약 10분간 명상을 한다. 그리고 8시 20분부터 1교시를 시작해 오후 4시면 7교시까지 마친다.

기자가 참관한 수업은 2학년 영어회화 시간으로 10여 명의 학생이 반원 형태로 둘러 앉아 원어민 교사와 지난 주말에 했던 일에 대해 영어로 수다스럽게 대화하고 있었다. 일반 수업은 대부분 학생이 스스로 과제 연구 계획을 수립해 친구들과 공동 연구팀을 구성해 연구하는 방식이다. 교사는 과제 연구의 과정을 평가하고 형식만을 지도할 뿐이다. 결과물은 학술제에서 발표하는 프로세스다.

방과 후 저녁식사 전까지 1시간 반 동안은 1인2기 프로그램 시간이다. 학생들은 체육 활동 하나는 기본이고 음악과 미술 프로그램들 중 1개씩을 선택해 참여한다. 악기를 연주하며 혹은 운동하며 땀을 흘린 후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털어낸 학생들은 저녁을 먹고 7시부터 자기주도학습에 들어간다.

사설 독서실과 비슷한 면학실에서 전교생은 모두 11시까지 스스로 학습을 한다. 중간에 40분간 간식 시간도 있다. 11시 넘어 기숙사로 이동한 후 점호를 한다. 기숙사는 4인 1실로 사감이 9명 상주한다. 12시면 의무 취침이지만 방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침대나 책상에서 여전히 불을 켜고 책을 보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 1시 20분에는 강제 소등이지만 역시 침대에서 플래시에 의지해 책을 보는 아이도 있다”고 정철화 하나고 교감은 전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3학년 박재우(19) 군은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라 지난 3년 동안 하나고에서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제까지 19년 살면서 시험 기간에 공부할 때처럼 뭔가에 그렇게 몰두해 본 적이 없었어요.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우연히 함께 탄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또래답게 친구들과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던 학생들은 “그게 될까”란 질문에 “Hana Academy makes it possible(하나고에서 뭐든 가능하지)”이라고 영어로 랩을 했다. 짧은 말이지만 학생들의 자신감과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읽을 수 있다.
[입시 돌풍, 하나고에 가다] 하나고 교육 스타일 키워드는 ‘체·덕·지’
하나고의 학비

하나고 학생이 부담하는 한 해 학비는 연간 1300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비싼 수업료 때문에 귀족학교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고 측의 설명을 들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하나고가 학생 한 명에게 투입하는 교육비는 2753만 원으로 국내 고교 중 최고다. 학생이 부담하는 학비와의 차액 약 1500만 원은 재단에서 지원한다. 여기에다 사교육이 전면 차단된다는 점과 기숙사비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계산기를 두들겨 볼 필요가 있다. 일반계 공·사립고 수업료는 분기당 36만2700원, 연간 총액은 145만 원이다.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이 조사, 발표한 사교육비 월평균 액수는 56만 원, 한 해면 672만 원. 거기에 기숙사 비용을 약 월 3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1년 360만 원. 모두 합쳐 일반 고등학생에 한 해 들어가는 비용은 1117만 원이다. 하나고 1년 학비와는 한 해 약 200만 원 정도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