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Auction

와인 경매 시장도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을 피해가진 못하고 있다. 국내 와인 경매 시장은 반짝 있는 듯했다가 사라졌고, 국내 와인 애호가들을 비롯해 지금 전 세계의 와인 경매는 홍콩으로 몰리는 상황. 그러나 와인은 엔터테인먼트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다른 경매 시장의 침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경매 공매 트렌드] 와인 경매 시장 트렌드. “홍콩이 세계 시장 ‘흡수’… 엔터테인먼트로 진화 중”
지난 1월 21일,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경매업체인 소더비는 2012년 와인 경매액이 6450만 달러로 집계돼 2011년 8550만 달러에 비해 25%나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하루 전날, 세계 최대의 와인 경매업체인 미국의 애커 메럴 앤드 컨디트도 2012년 매출이 8330만 달러로 집계돼 전년 대비 25%가 줄었다고 밝혔다. 세계 경제의 영향으로 와인 시장의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와인 경매 시장에도 타격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소더비에 따르면 홍콩 시장에서 경매된 와인이 총 2700만 달러로 전체의 42%를 차지하는데, 홍콩 시장의 경매액도 전년도의 4470만 달러에 비하면 40%나 줄어든 결과다. 그럼에도 여전히 홍콩은 전 세계 와인 경매 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홍콩이 글로벌 와인 경매 시장의 메이저로 자리 잡은 지는 이미 몇 년 됐다. 와인 경매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1990년대에 와인 경매에 대한 규제가 자유화되며 런던의 아성을 넘겨받은 뉴욕도 홍콩의 등장 이후 지는 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홍콩이 와인 경매의 메카로 떠오른 이유는 하나다. 거래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낮기 때문. 홍콩은 2008년 세금을 전면 면제하면서 그때부터 가장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올랐고, 같은 이유로 런던과 뉴욕의 경매회사들도 홍콩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 목적보다 즐기는 수단으로 접근해야
[경매 공매 트렌드] 와인 경매 시장 트렌드. “홍콩이 세계 시장 ‘흡수’… 엔터테인먼트로 진화 중”
상황이 이러니 전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이 홍콩으로 몰려가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국내 와인 애호가들도 홍콩으로 달려가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홍콩과 관련한 비즈니스가 늘어나면서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것도 한몫한다. 한때 국내에서도 와인 경매 시장이 열렸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와인 거래에 대한 세금이 비싸 정상적인 성장이 불가능했고, 지금은 상업 경매가 아닌 이벤트 성격을 띤 와인 경매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국내에서 와인 경매를 시작했던 와인칼럼니스트 조정용 씨는 “와인에 대한 과세가 60~70%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경매 시장이 형성될 수가 없다”며 “홍콩이 전 세계의 와인 경매 시장을 흡수하는 상황이니 그쪽에 가서 하든가 대행을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한다.

홍콩 와인 경매 시장이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접근 때문이다. 주로 샹그릴라나 페닌슐라 등 호텔의 연회장에서 열리는 와인 경매는 하나의 축제다. 현재 홍콩에서는 소더비, 크리스티, 애커 등 너덧 개의 경매회사들이 2~3개월에 한 번 꼴로 경매를 열어 연간 총 20회 정도가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 참석이 가능한데 경매 전날 출품된 와인들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수많은 와인 애호가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조 와인칼럼니스트는 “와인은 접근 방식 자체가 미술품과는 다르다”며 “꼭 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귀한 와인을 마셔봤다는 경험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술 경매 시장에 비해 변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와인 경매는 되팔기 위한 ‘투자’의 목적보다 즐기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또한 그는 “와인 투자의 가장 마지막 말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마시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와인 경매 시장의 추세가 ‘엔터테인먼트 성향’으로 변해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와인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전적이다.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보르도 1등급 와인은 항상 각광받는 ‘변하지 않는 가치’다.

투자 시장에서 블루칩이 존재하듯 와인 시장에서의 블루칩도 존재한다. 숙성력, 희소성, 지명도 등 세 가지 특성이 그것. 즉 오래 묵힐 수 있어야 하고, 진귀해야 하며, 따로 마케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특성을 고루 갖춘 대표적 와인이 바로 보르도 와인인 것이다.

이미 홍콩 와인 경매 시장이 전 세계의 대세가 돼가는 요즘, 국내 와인 경매 시장은 설령 과세 기준이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여건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조 와인칼럼니스트는 “국내 와인 시장의 저변은 이미 넓어졌기 때문에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다시 와인 시장 자체가 붐 업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편으로 경매 시장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와인 경매 시장은 홍콩으로 병합되거나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