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한국마이팜제약 회장

허준영 한국마이팜제약 회장이 양복 대신 빨간색 레슬링복을 입고 링 위에 섰다. 한때 촉망받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였던 그가 한순간의 부상으로 운동을 접은 지 20년 만이다. 인생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때로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지만, 위기 때마다 그의 승부사 근성은 빛을 발했다. 비운의 레슬러에서 제약회사 대표, 그리고 유엔(UN) 산하 비정부기구(NGO) ‘스포츠닥터스’ 이사장에 오르기까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동안 그를 일으켰던 것은 ‘한다면 한다’는 스포츠정신이었다.
[SUCCESS STORY] 스포츠 정신으로 제약 업계를 엎어 치다
“감독님, 더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허준영 한국마이팜제약 회장은 지금도 가끔 운동선수 시절 ‘그 순간’이 꿈에 나온다. 악몽이다. 촉망받던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였던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훈련 도중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출전은 당연히 좌절됐다. 당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안한봉 선수가 그레코로만형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6개월간 재활하다 부상이 심해져 결국 은퇴했다.

중학교 때 레슬링에 입문해 평생 상대를 엎어 치고 메치는 일밖에 몰랐던 청년의 첫 번째 실패였다.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신세 한탄만 하고 있기엔 스물 둘의 나이는 너무 혈기왕성했다.

“레슬링 쪽은 쳐다보기도 싫습디다. 오로지 금메달 하나 바라보고 달려왔던 인생이었는데 목표가 사라지니 모든 것이 허망해졌지요. 당시 체육선생님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겠더군요.”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무렵 제약 업계에 있는 선배를 알게 됐다. 활달하고 부지런하며 근성까지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선배는 영업일을 적극 권유했다.



올림픽 좌절과 국가대표 은퇴, 그리고 제약사 1등 영업사원
1993년 그는 근화제약 영업사원으로 입사, 제약 업계에 몸담기 시작하며 신세계에 눈을 떴다. 레슬링을 하면서 배운 강인한 체력과 끈기, 악바리 정신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단연 돋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가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연봉 2억의 사나이. 150명 신입사원 가운데 단연 1등이었다.
[SUCCESS STORY] 스포츠 정신으로 제약 업계를 엎어 치다
“약을 쓰는 곳이라면 대학병원, 개인병원 가리지 않았어요. 아홉 번 거절당하면 열 번을 찾아갔지요. 의사가 화를 내면 물러섰다가 며칠 후에 또 방문했어요. 그런데 가서 약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이 잘 기억을 못 해요. 그때부턴 단순 판매원이 아닌 ‘상대가 어려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지요. 의사나 약사가 어려운 처지를 이야기하면 그걸 기억했다가 해결해 줬어요. 각 분야에 아는 인맥들을 총동원했어요. 병원장의 가족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제가 먼저 달려갔고, 병원에 어려움이 있으면 홍보에도 뛰어들었어요. 의료사고가 났다고 하면 경찰서에 찾아가 대신 일을 도와주고, 결혼 적령기의 의사나 약사들에겐 혼신을 다해 중매를 서주기도 했습니다.(웃음)”

입사 첫 해 삼성서울병원장 고(故) 하권익 박사를 만난 일화는 업계에서 아직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누구의 소개도 없이 안면도 없는 하 박사의 방문(房門)을 두드렸다.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업계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를 찾아간 것.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죽기 살기로 상대에게 달려들었던 ‘무대포’ 레슬러 시절을 떠올리면 못할 것이 없었다.
[SUCCESS STORY] 스포츠 정신으로 제약 업계를 엎어 치다
하 박사는 당황했지만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패기 넘치는 이 젊은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허 회장은 하 박사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운동선수로 활약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하 박사는 “내 방을 찾아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너무나 용감하고 기특하고 대단하다”고 말하며 엄청난 양의 소염제를 사준 것은 물론 물심양면으로 그의 영업 활동을 지원해줬다. 허 회장은 ‘그래, 이렇게 하는 거구나. 사람이야말로 재산이구나. 4년 뒤에는 꼭 사장이 돼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무대포’ 정신으로 제약회사 인수…20대 젊은 사업가가 되다
그 이후 허 회장은 20대 후반에 부도 직전의 반도제약을 인수, 의약품 도매업체 한국마이팜제약을 설립했다.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120억 원에 반도제약을 인수했지만, 태반주사제 ‘멜스몬’과 태반영양제 ‘이라쎈’을 출시하면서 기업을 기사회생시켰다.

“2001년 약국 체인 사업을 시작하고 전국의 주요 병원 앞에 30개 마이팜 약국을 열었는데, 때마침 의약분업이 시행돼 엄청난 돈을 만지게 됐습니다. 한 달에 5000만~3억 원의 순수입을 올렸지요. 젊은 사업가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SUCCESS STORY] 스포츠 정신으로 제약 업계를 엎어 치다
그러나 곧바로 시련이 닥쳤다. 회사가 60억 원의 소송에 휩싸였다. 직영 약국들을 처분하고 약 250명인 직원을 15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는 뼈아픈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2001년 출시한 신약들의 반응이 좋아 회사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매출이 늘자 직원들을 추가로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것은 다름 아닌 태반영양제 ‘이라쎈’과 태반주사제 ‘멜스몬’이었다. 태반영양제는 몸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에게 필수의약품이나 마찬가지다.

레슬링을 그만둔 후 스포츠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결국엔 스포츠가 그를 위기에서 구한 것이었다. 운동선수들을 위해 보다 확실한 지원책을 구상했다. 주변에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운동하며, 금메달 하나만 바라보고 피땀 흘리는 어린 꿈나무들이 많았다.

1998년 열린의사회 창단 초기부터 힘을 합쳐온 그는 의료봉사 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의사들과 함께 국내외 의료 혜택의 불모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 봉사를 펼치고 매년 의약품도 지원해왔다. 태릉선수촌으로 다량의 태반영양제를 기부하기도 했다.

“20년 동안 꾸준히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 힘을 써왔습니다. 기업가가 돈을 버는 이유는 남을 돕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어려운 운동선수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가슴 깊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30억~40억을 써도 개인으로 활동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더군요.”



의료봉사 NGO ‘UN스포츠닥터스’ 출범, 양학선 선수 후원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지난해 9월 유엔 메디컬 서비스 ‘UN스포츠닥터스’를 출범시켰다. 스포츠닥터스는 유엔사무국의 공보국(DPI)에 소속된 NGO로 의료, 환경, 스포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 활동하는 기구다. 허 회장은 국경과 인종, 사회이념을 초월해 유엔과 함께 전 세계 도처에 인류의 사랑을 전파하고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출범 당시 다양한 이름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그는 ‘스포츠’와 ‘닥터스’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양분하는 단어라고 생각해 이렇게 이름 지었다.
[SUCCESS STORY] 스포츠 정신으로 제약 업계를 엎어 치다
“봉사단체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힘을 합쳐주지 않으면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약인들과 의사, 약사들의 참여가 그래서 더 절실하지요.”



현재 여기에는 의사 1000여 명과 한의사, 약사, 간호사, 일반인 봉사자 150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정준호·하지원 등 인기스타, 김연아·박찬호·손연재·박태환·이봉주 등 스포츠인들도 후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후원 기금 7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포츠닥터스의 첫 번째 후원자는 런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도전해 꿈을 이룬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공교롭게도 양학선 선수는 그의 광주체육고 후배이기도 하다.

“양 선수는 제게도 큰 가르침을 줬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4년 동안 피땀을 흘립니다. 훈련하다 다치면 평생 장애인이 될 수도 있어요. 국가에서는 책임지지 않아요. 모두 본인이 떠안아야 할 문제이지요. 금메달을 따도 연금 100만 원이 고작입니다.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국위선양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요.”

기업을 세우고, 돈을 벌어 남들을 돕는 동안 20대 열혈청년은 40대 중반이 됐다. 사납고 날 선 레슬링 선수의 얼굴은 좋은 일을 하는 동안 밝고 환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양복 사 입을 돈을 아껴 기부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지원을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봉사단체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힘을 합쳐주지 않으면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약인들과 의사, 약사들의 참여가 그래서 더 절실하지요. 앞으로 스포츠닥터스를 후원하는 개인, 기업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레슬링에서 배운 죽기 살기로 이겨내는 힘, 사업하면서 큰 도움

태릉선수촌 필승관 레슬링장을 찾은 이날도 그는 먼발치에서 트레이닝 중인 후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수 생활을 하며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제약업에 투신한 뒤로는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흔히 우리끼리는 운동한 사람들은 사회에 나오면 대부분 망한다고 해요. 그런데 전 아직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10년 된 기업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잖아요. 사업이 부도났다고 해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 결국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정신력이 없는 겁니다. 버티어 살아 있으면 결국 이뤄내는 거죠. 꿈을 꾸는 한 결국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많은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목표는 더 많은 돈을 벌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후배들에게 되물림되지 않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는 것이다.

허 회장의 승부수는 다양하다. 국내 태반주사제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는 ‘멜스몬’은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앞두고 있다. FDA의 허가를 받게 되면 태반주사제로는 세계 최초가 된다.

약국과 편의점을 결합한 한국형 드러그스토어를 지난해 전국에 약 30곳에 오픈했으며 향후 약국, 편의점 체인을 7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미국 건설 그룹 루멘과 마이팜 드러그스토어 미국 진출도 준비 중이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UN스포츠닥터스’의 이사장직을 맡은 뒤 부쩍 어깨가 무겁다.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일단 시작이 좋으니 많은 사람들의 뜻대로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5년 뒤에는 노벨평화상에 도전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시니어 올림픽도 개최하고 싶어요. 유엔과 함께 젊은 친구들뿐 아니라 나이든 일반인이 참여하는 전혀 새로운 스포츠 무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허준영 대표는…
1969년생. 단국대 수학교육학과(체육교육학과) 졸업.
한양대 보건관리학 박사과정.
1992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6kg 이하급 국가대표.
1994년 근화제약 입사.
1999년 준메디팜(주) 법인 설립.
2000년 마이팜 약국 체인 설립.
2001년 한국마이팜제약(주) 법인 설립.
2012년 스포츠닥터스 설립, 이사장 취임.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