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벤처기업 메디포스트의 양윤선 대표는 ‘제대혈 대모(代母)’로 통한다.
그런 그에게서 맨손으로 회사를 일구는 과정에서 여성 경영자들이 으레 겪기 마련인 어려움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매 순간 즐기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뿐이다. 국내 바이오산업 선구자의 성공기는 그리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창조경제 시대에 여성 리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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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를 만난 건 최근 여성가족부 ‘사이버 멘토링 2013’에 위촉됐다는 뉴스를 접하고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성공한 여성 리더가 젊은 여성들에게 생생한 노하우를 전하고 롤 모델이 돼주는 제도로, 양 대표는 여기에서 경제경영 부문 대표 멘토에 선정됐다. 또 얼마 전에는 대학생이 닮고 싶은 성공한 여성 벤처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손수 회사를 세우고, 코스닥 상장까지 이끌어낸 국내 몇 안 되는 여성 리더로서 희소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경제 시대에 국내 바이오 업계 개척자인 양 대표님이 우리 사회 여성 멘토로 자리 잡는 모습입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사회적으로 여성 리더를 조명하는 이슈가 이전에 비해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제가 대표 멘토라고 하기엔 쑥스럽고, 다만 조윤선 장관이 서울대 동문이고 사적인 안면이 있으니 저를 위촉해준 것 같아요. 바이오는 특히 융합 기술이 필요한 분야라 창조경제 시대에 ‘해볼만 하구나’라는 인식이 늘어날 겁니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영광이지요.”


여전히 벤처 업계에서 여성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맞습니다. 현재 2000여 개 상장사 가운데 여성이 대표로 있는 곳은 14곳에 불과해요. 그중에서도 저처럼 창업해서 직접 상장까지 한 회사는 두세 곳 정도죠. 기업이나 공공기관에도 여성 임원이 너무 적어요. 아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회가 공평하게 변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점점 자신의 커리어를 키우려는 여성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바이오 분야가 미래 국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분야를 꿈꾸는 이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주로 어떤 멘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나 젊은 여성들이 많아요. 창업을 하고 싶은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일과 가정을 현명하게 꾸려갈 수 있는 방법 등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의사로 일하던 중 기술 연구에 초점을 두고 창업한 경우라 애초에 기업가 정신이나 목표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엇을 준비했느냐’고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다만 뛰어든 이후에 거친 시행착오를 중심으로 조언해주죠. 경험치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모험 즐겼던 모범생, 의사 가운 벗고 제대혈 사업에 뛰어들다

어릴 적부터 공부 잘하고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모범생’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양 대표가 기억하는 자신의 유년시절은 조금 다르다. 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었고, 새롭게 도전하고 부딪히는 데 두려움이 없는 씩씩한 아이였다. 이런 DNA는 기어이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2000년 삼성서울병원 교수로 재직 중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제대혈 보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탯줄혈액을 보관해 뒀다가 나중에 병에 걸리면 여기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골수처럼 몸에 이식하는 사업으로, 국내에 ‘제대혈 붐’을 일으켰다. 메디포스트는 현재 국내 시장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라는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2000년 메디포스트를 창업했습니다.
“1998년부터 병원에서 제대혈 은행을 담당하고 있었으니 저는 그 연장선에서 창업을 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의사에서 사업가로의 ‘변신’이 아니라 제대혈 은행을 하다 보니 이건 병원보단 기업 형태로 운영하는 게 더 맞겠다 싶어 회사를 만든 거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방점을 찍으니 내가 의사건 기업가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2000년엔 벤처 창업 붐이 식지 않았을 때라 주변 분위기도 한몫 거들었죠.”


11년간 270억 원을 쏟아 부은 연골 재생 치료제 ‘카티스템’이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상용화 허가를 받았습니다. 올해엔 이를 활용한 수술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하던데요.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우리 회사가 좋은 건지 마냥 얼떨떨했어요. 나는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것이 국가의 허가를 받고서도 늘 ‘안전할까’ 불안해하던 시간들이었지요. 그런데 부작용 하나 없고 수술한 뒤 장기적인 효과가 더 좋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뛸 듯이 기뻤어요. 줄기세포가 재생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데 의의가 있지요. 고령화가 빨라질 미래에 사람들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줄 치료제로 키워낼 겁니다.”


2011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줄기세포 정상회의에서 주요 연사로 발언했는데, 한국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초창기라 우리처럼 제품을 완성한 곳은 없어요. 바이오 분야 종주국이 아닌 한국에서 첫 성공 사례가 나오니 시기와 동경의 시선들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줄기세포로 노벨상을 탄 일본이 우리가 먼저 상용화한 것에 대해 배 아파하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국산 오리지널 신약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식약처도 끊임없이 카티스템의 효능을 검증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국내를 넘어 중국과 미국, 유럽에서도 산업 경쟁력을 갖추는 게 목표입니다.”
[POWER OF THE WOMAN] “유한한 인생, 내 몸뚱이만 챙기는 게 무슨 의미 있나요”
‘긍정’은 나의 힘, 사업도 가정도 하고 싶은 일 즐겨야 성공

양 대표와의 인터뷰는 유쾌했다. 오목조목하고 여성스러운 외모였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카리스마’ 쪽에 가까웠다. 그의 흡인력은 쿨(cool)함, 그리고 어떤 상황을 바라보든 무한한 긍정에 있었다. 11여 년을 공들여 탄생시킨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의 성공에도 무덤덤한 건 지금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병원을 박차고 나와 벤처사업가가 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의사 생활도 만족했고 지금도 좋아요. 분명한 건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이 내 인생에 플러스가 됐다는 생각이에요. 진료실에서 환자만 마주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그렇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그렇지요. 특히 재생 치료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도의적인 책임감도 느낍니다. 어차피 유한한 인생, 내 몸뚱이만 챙겨 혼자 편하게 사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거라 할까요. 너무 힘들 땐 ‘그냥 조용히 살아도 아무 일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책임감이 있으니 적어도 도망가지 않죠.”


여성의 몸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사회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된 사람들을 만날 때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애환보다는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워낙 소수다 보니 어딜 가든 구색 맞추기 식으로라도 발언 기회가 많았고, 경청해주었지요. 또 출산을 경험한 엄마였기에 제대혈을 더 많이 알릴 수 있었으니 감사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POWER OF THE WOMAN] “유한한 인생, 내 몸뚱이만 챙기는 게 무슨 의미 있나요”
사고방식이 참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이만큼이라도 된 게 감사하죠. 운도 따랐고요. 우리보다 백배 천배 노력해도 안 되는 회사도 많아요. 노력에 결과가 늘 비례하는 건 아니죠. 지금 잘된다고 해서 영원한 것도 아니니 늘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며 육아나 가사 일은 어떻게 병행하셨나요.
“(저울로) 재지 않았어요. 오늘은 무조건 회사 일을 해야 한다 혹은 가사를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일도 가족을 돌보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희생한다는 차원이 아니죠. 옛날엔 아이 학교에서 녹색어머니나 급식당번을 하러 오라고 하면 ‘내가 의사인데 거기를 왜 가’라고 생각했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그게 아니더군요.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쓰면 전혀 아깝지 않아요. 미련 남기지 말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 후 그걸 정당화하면 돼요. 그조차 내팽개칠 정도로 24시간을 바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미래의 여성 리더에게 한마디.
“벤처기업 CEO는 대기업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또 다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실패 앞에 꼼짝 못하게 하는 권위적인 분위기도 안 되고, ‘연구만 해’ 이런 강제도 안 돼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의외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또 여성이라고 안전성을 고수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울타리를 넘어서 도전해보세요. 그다음은 주변 인맥들과 강력하게 네트워킹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선하게 소통하면서 내 편을 만들고, 내 일을 가치 있다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세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