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흔히 정글로 묘사된다. 시장이라는 생태계에서 첨예한 경쟁을 벌이던 기업들은 경영 사정이 악화된 기업이 나타나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된다. 이것이 바로 인수·합병(M&A)이다. M&A는 아마 인간이 매매할 수 있는 매물 중 가장 비싼 거래일 것이다. M&A는 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취하는 일종의 경영 전략으로, 대상 기업들이 합쳐 단일 회사가 되는 합병(merger)과 경영권 획득을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매수(acquisition)를 합한 개념이다. 글로벌 기업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7대 M&A를 살펴본다.
[RANKING SHOW] 세계가 깜짝 놀란 7대M&A
1 보다폰의 만네스만 인수
2028억 달러·2000년

유럽 거대 이동통신업체 간의 M&A가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2000년 2월 독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독일의 ‘만네스만(Mannesmann)’이 영국 ‘보다폰에어터치(Vodafone AirTouch)’에 의해 적대적 M&A를 당했다. 규모가 2028억 달러(217조80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M&A였다. 참고로 2014년 대한민국 예산은 357조 원이다. 12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만네스만은 기관투자가들의 머니게임에 휘말려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손을 들어야 했다. 영국 1위 이동통신사업자인 보다폰은 만네스만에 우호적 합병을 먼저 제안한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독일 만네스만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이에 보다폰은 적의 심장을 겨누게 된다. 만네스만을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후 만네스만은 프랑스 미디어 그룹 비방디를 백기사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보다폰에 선수를 빼앗기고 만다. 보다폰이 한 발 앞서 비방디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이다. 다시 만네스만은 1억7000만 유로를 자사주 매입에 쓰며 안간힘을 쓰지만 보다폰의 치밀한 전략과 역사상 최대 인수 금액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일부 영국 사람들은 이 모습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통렬한 복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독일에선 처음으로 발생한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매수 사건이어서 ‘독일주식회사의 종말’이라고 불릴 지경이었다.
[RANKING SHOW] 세계가 깜짝 놀란 7대M&A
2 AOL의 타임워너 인수
1647억 달러·2000년

미디어 업계의 제왕 ‘타임워너’와 세계 최대 인터넷 서비스업체 ‘아메리칸온라인(AOL)’의 만남은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M&A 건이다. 2900만 명의 온라인 가입자(AOL)와 2000만 명의 케이블 방송 시청자(타임워너)의 결합이었기에 M&A 초기 모두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으로 치달았으며 지금까지도 역대 M&A 실패 사례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인수 규모는 1647억 달러(176조7500억 원)로 역대 두 번째 초대형 합병이었다. AOL은 타임워너보다 작은 회사였다.

AOL의 1999년 매출액은 겨우 48억 달러지만 타임워너의 같은 해 매출액은 268억 달러였다. 직원 수도 AOL은 1만2100명, 타임워너는 7만 명이었다. AOL의 덩치는 타임워너보다 훨씬 작았지만 당시 시가총액으로는 규모가 컸다. AOL 시가총액은 1431달러, 타임워너는 1106달러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AOL의 주식을 다 팔아도 타임워너의 인수 대금을 모두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M&A를 추진해 AOL은 주식을 더 발행했지만 AOL-타임워너는 M&A 후 수익성이 악화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02년 AOL-타임워너라는 사명에서 AOL을 떼어냈다. 현재 AOL은 타임워너의 자회사가 됐다.
[RANKING SHOW] 세계가 깜짝 놀란 7대M&A
3 버라이즌의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인수
1300억 달러·2013년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 와이어리스’가 미국 최대 통신업체 ‘버라이즌’에 2013년 인수됐다. 이름만 봐서는 계열사인 것 같은데 무슨 M&A가 이뤄졌을까. 버라이즌 와이어리스는 버라이즌과 영국 보다폰이 각각 55 대 45로 투자해 2000년에 설립됐다. 보다폰이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버라이즌 와이어리스는 버라이즌의 100% 자회사가 됐다. 거래 규모는 1300억 달러(144조 원)에 달해 역대 세 번째다. 자금난을 겪고 있던 보다폰은 이 거래로 대규모 돈뭉치를 손에 쥐게 됐고 버라이즌은 수익성이 높은 이동통신사업을 통해 유동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서로 맞아 떨어져 성사됐다.



4 주주들의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인수
1076억 달러·2008년

담배 ‘말보로’로 유명한 필립모리스사의 모그룹은 ‘알트리아(Altria)그룹’이다. 알트리아는 2008년 해외 판매를 담당하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을 설립했다.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은 세계 최대 담배회사로 세계 180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알트리아는 신흥국에서 필립모리스의 매출을 더 늘릴 목적으로 2008년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을 스핀오프(회사분할)한다. 미국 중심의 소유권 탓에 신흥국에서 각종 규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트리아의 주주들이 런던증권거래소(LSE) 등 미국 외의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주식을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기존 주주들에게 1076억 달러(119조5300억 원)에 매각했다.
[RANKING SHOW] 세계가 깜짝 놀란 7대M&A
5 RBS 등 컨소시엄의 ABN암로 인수
985억 달러·2007년

유럽 3위의 은행인 네덜란드 ABN암로가 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주도 컨소시엄에 금융 M&A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985억 달러(105조7800억 원)에 2007년 매각됐다. 이 건은 2개 이상의 금융기관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대형 은행을 분리, 인수하는 이례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스페인의 방코산탄데르와 벨기에-네덜란드 소유의 포티스, RBS 3개 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ABN암로를 분리해 나눠 가졌다. 이에 따라 RBS는 런던 소재의 투자은행(IB) 사업부문 등을 손에 쥐게 됐다. 방코산탄데르는 브라질과 이탈리아 등지의 자산운용 부문을, 포티스는 네덜란드의 자산운용 부문을 인수했다. 또 이 M&A 건으로 유럽 3위 은행인 ABN암로를 해체시킴에 따라 유럽 내 은행계의 구도가 재편됐다.



6 화이자의 파머시아 코퍼레이션 인수
892억 달러·2003년

세계 1위 제약회사인 미국 화이자가 미국 5위의 파머시아 코퍼레이션을 892억 달러(95조75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로써 화이자는 연간 매출액 480억 달러, 연구·개발(R&D) 예산이 70억 달러로 늘어나 세계 1위 제약업체 자리를 굳히게 됐다. 비아그라로 유명한 화이자는 매출 323억 달러로, 세계 2위인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을 20여억 달러란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었다. 파머시아는 세계 의 약품 가운데 최대 보석 중 하나로 꼽히는 관절염 치료제 ‘셀레브렉스(Celebrex)’를 갖고 있어 화이자는 이 약의 단독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화이자의 파머시아 인수는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파머시아 주주들은 파머시아 주당 1.4주의 화이자 주식을 받게 됐다. 이는 당시 파머시아 주식 종가에 36%의 프리미엄을 얻어주는 값이었다. 양사의 합병 소식은 제약 산업이 정부 및 개인구매자로부터 가격 인하 압력을 받고 있는 데다 생명공학 업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등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었다.



7 엑슨의 모빌 인수 789억 달러·1998년
미국의 석유회사 엑슨의 모빌 인수가 7위를 차지했다. 엑슨은 모빌을 인수한 후 당시 업계 최대였던 로열더치셸그룹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회사로 발돋움한다. 엑슨과 모빌은 미국 1, 2위 석유회사였다. 양사는 1998년 12월 1일 공동 성명을 통해 엑슨-모빌이 되는 새 회사에서 엑슨의 주주는 70% 지분을, 모빌의 주주들은 30%를 갖게 될 것이라 발표했다. 두 회사가 손을 잡은 이유는 석유회사가 경제 불황과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비용 절감을 위해 추진된 것이었다.


곽미진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