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가치는 협력·완전·재능

세계적으로 가족이 화합하고 단결해 장수하는 기업 사례가 수없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문 중 하나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로스차일드가(家)가 어떻게 200년 이상 가족기업으로 성공했는지 알아보자.
[FAMILY BUSINESS CONSULTING] 로스차일드 가문 250년 지속 경영의 비밀
최근에 만난 중견기업의 박 회장은 동생과 함께 사업을 크게 일구었고 이제 두 형제 모두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박 회장은 아들 두 명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동생인 박 부회장도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4명의 사촌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 회장과 박 부회장은 최종적으로 누구를 후계자로 결정할지 고민 중이다. 박 회장은 자녀들을 경쟁시켜서 가장 능력 있는 자녀를 최종 후계자로 정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런데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아주 위험한 계획이다. 가족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 간의 경쟁심에서 비롯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박 회장의 생각은 잠재적인 분쟁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같이 가업승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기업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로스차일드 가문 250년 지속 경영의 비밀
로스차일드, 최초의 다국적 금융기업이 탄생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세기 이후 약 250년간 유럽 금융계를 이끌어 온 유대계 거대 금융 가문이지만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174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격리지역 게토(ghetto)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마이어는 은행에서 사환으로 일을 시작해서 5년 뒤 돈을 모아 골동품 가게를 열었다. 그 뒤 독일 내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화폐를 교환하는 환전소를 차렸는데, 이는 초보적인 형태의 은행이었다. 마이어는 헤센의 제후인 빌헬름 공에게 진귀한 메달과 동전을 팔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다 1769년에는 빌헬름 공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임명 받게 된다. 그는 빌헬름 공이 나폴레옹 군대에 쫓겨 망명을 떠나자 자신의 재산을 다 뺏기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벨헬름 공의 대외 차관 장부를 지켰다. 망명에서 돌아온 빌헬름 공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유럽 각국에서 돈을 수금할 권리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가난한 유대인 골동품상에서 왕실 재정 대리인으로 변모했다.

마이어의 가장 큰 자산은 그의 다섯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들에게 자신을 대리해 유럽 각국에서 수금하는 일을 맡겼다. 그 덕분에 그의 아들들은 유럽의 지리와 정보를 훤히 꿰뚫게 됐고, 이는 훗날 로스차일드 가문이 다국적 금융기업으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된다. 다섯 형제는 유럽 주요 도시에 은행을 하나씩 세워 나갔다. 첫째 암셀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차남 살로몬은 오스트리아 빈, 셋째 나탄(네이선)은 영국 런던, 넷째 칼만은 이탈리아 나폴리, 다섯째 야코프는 프랑스 파리에 은행을 세웠다. 역사상 최초의 다국적 금융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마이어는 아들들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 온화함을 가르쳤다. 그는 협상 능력보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자녀들에게 스스로 미소를 지었다. 형제들은 도끼로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결속력으로 서로를 도왔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흘린 피땀의 씨앗을 정성껏 길러 막대한 수확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땀은 다시 후대를 위한 새로운 씨앗이 됐다.

로스차일드에는 확고한 가풍이 있다. 아무리 개인이 총명하더라도 큰일을 성취하려면 집단의 힘이 필요한데, 형제나 사촌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려도 이 가풍은 지속되고 있다.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은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대문자를 써서 ‘The Family’로 표현한다. 가문의 긍지와 결속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가족 간의 결속은 가문의 문장을 통해 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문장에는 라틴어로 ‘협력·완전·재능(Concordia·Integritas·Industria)’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로스차일드가를 지배하는 핵심 가치다. 그리고 문장의 중앙에는 방패가 있는데, 방패에는 한 손에 다섯 개의 화살을 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다섯 개의 화살이 바로 가문의 시조인 마이어의 다섯 형제를 상징한다. 화살처럼 빠르되, 하나로 묶여 있어 어느 누구도 부러뜨릴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닌 형제를 뜻한다. 로스차일드가에서 형제간 협력은 무엇보다 우선한다. 이는 후대에 남기는 선대의 유서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프레더릭 모턴의 ‘250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그들이 가족 협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1836년 2대 나탄은 임종이 가까워지자 그의 아들들에게 “이제는 세상이 우리의 돈을 빼앗으려 할 것이므로 예전보다 더 긴장해야 한다”며 “누가 5만 파운드 이상의 유산을 물려받을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너희들이 일치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나탄은 선대인 아버지처럼 유언을 통해 자신의 아들들만이 회사의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족의 화합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이 보여 주었던 단결력과 상호 존중의 예를 충실히 지키겠다고 서약했다.

1874년 3세 안젤름이 작성한 유언장을 보자. 유언장에 담긴 당부와 감정들은 로스차일드가의 시조 마이어가 62년 전에 작성한 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명한다. 항상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고, 가족의 유대를 잃지 말 것이며, 서로 간에 분쟁이나 불화를 일으키지 말고, 재판을 하지 말고, 관용과 인내로 서로를 감싸 주고, 악한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의 자녀들은 위대한 조부모를 본받으라. 그러면 모든 로스차일드가가 영원히 행복하고 번영을 누릴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이런 가문의 정신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라.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나의 할아버지의 훈계를 따라 너희와 너희 후손들은 언제까지나 유대교 신앙에 충실하도록 하라.”


로스차일드가 250년 번영의 DNA
로스차일드 가문이 250년 동안 항상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도 한때 큰 위기를 겪었다. 1863년에는 나폴리 은행이 시칠리아 황실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데 이어, 후계자가 없던 프랑크푸르트 은행도 1901년 문을 닫았다. 빈 은행은 1938년 나치에 몰수됐다. 특히 로스차일드 은행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은행은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국유화됐다. 그러나 이들에겐 200년을 이어온 번영의 DNA가 있었다. 이는 가문의 문장에 새겨진 ‘콩코르디아(Concordia·협력)’다. 이 협력의 정신을 기반으로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오를레앙을 설립했고, 영국 일가와 지분 관계를 맺은 뒤 다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로스차일드가의 250년 성공의 비밀은 바로 ‘콩코르디아’, 즉 가족 간의 협력에 있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도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으로 엮이는 가족의 연대감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 “다섯 개의 화살이 한 묶음으로 유지될 때 부러지지 않듯이 다섯 형제간에 화합하라. 흩어지면 번영은 끝날 것이다.” 이처럼 창업자의 유언에 담긴 콩코르디아 정신으로 말이다.

가족기업이 가족의 화합과 협력 없이 수세기를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관계가 제대로 될 때에만 가족기업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발전할 수 있다. 가족 간 화합과 협력은 기업 규모나 업종, 국가 등을 초월해 대다수의 장수 가족기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족기업이 장수 경영을 꿈꾼다면 가족 화합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꿈을 공유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가족기업의 성패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 이미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경영학 박사. 가족기업 컨설턴트.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 전략’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