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 기자의 금융레시피

지난해 미술품 경매 시장은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훈풍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단색화 열풍을 타며 미술품들이 추정가의 몇 배를 뛰어넘어 수억 원의 가격에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미술품 시장은 저금리 시대 갈 곳 없는 투자 자금의 달콤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신에게는 아직도 12보루의 담배가 남아 있습니다.” 담배 가격이 일제히 오르기 전인 지난해 연말 담배 사재기를 한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패러디해 인터넷상에 올려 놓은 글들이 웃음을 주고 있다. 해가 바뀌며 담배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으니 미리 담배만 넉넉히 사 두었다면 가만히 앉아서 2배의 효용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소극적인 담배 사재기를 두고 투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모름지기 투자라고 한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1% 저금리 시대에도 확실한 수익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일부에서는 아예 예금을 환금성이 좋고 자녀 양도가 편한 골드바로 교체하거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태에서 달러화 사재기에 나서는 등 투자 방식에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최근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투자처 중 하나가 바로 미술품이다. 사실 공공연하게 부자들의 상속·증여 수단으로 이용돼 온 것이 바로 미술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미술품이 소수 애호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지금은 미술품 자체가 투자 개념의 ‘아트펀드’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후끈 달아오른 미술 시장, 단색화 열풍 불어
눈여겨봐야 할 것이 최근 미술 시장의 분위기다. 이른바 미술 시장에 큰손들이 복귀하며 시장의 파이를 키워 놓았다는 평가다. 실제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 경매 시장은 1년 만에 35%나 성장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에 나온 그림 1만3822점 중 8828점이 팔려 총 거래액은 970억7300만 원을 기록했다.

서울옥션의 경우 지난해 낙찰총액은 418억 원(홍콩 경매 포함)으로 2013년 393억 원에 비해 6.4%(25억 원) 증가했고, K옥션은 지난해 303억6000만 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하며 전년도(188억2000만 원) 대비 62%나 몸집을 키웠다.

지난해 국내 최고가 거래 금액을 기록한 작품은 11월 24일 서울옥션홍콩에서 거래된 제프 쿤스의 ‘꽃의 언덕’이었으며 24억4800만 원의 경매가를 기록했다. 이어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약 18억900만 원), 앤디 워홀의 ‘꽃’(17억2400만 원) 등이 경매 열기를 달궜다.

지난해 말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서보의 ‘묘법 No. 47-74’가 당초 추정가 4000만 원보다 약 18배 많은 7296만 원에 팔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K옥션의 겨울 경매에서는 국내 최고의 블루칩 작가 김환기의 1969년 작품 ‘26-Ⅱ-69 #41’이 이날 최고가인 7억9240만 원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단색화 열풍이 불며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등 대표 작가군의 작품이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판매되며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단색화는 1960~1970년대 시작된 단색조의 추상회화를 말하는 것으로 미술사적 가치에 비해 가격이 저평가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지난해 K옥션이 내놓은 22점과 서울옥션 출품작 12점이 모두 완판되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K옥션 관계자는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미술 시장이 반 토막이 났는데 이후 경매 시장은 보합세를 유지하며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다”며 “하지만 지난해에 시장이 완전한 반등을 보이며 전체 미술품 경매 시장이 35%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3년에 비해 온라인 경매의 회수가 늘어나고 매 경매별 출품된 작품의 숫자도 늘어남에 따라 거래량이 증가했으며, 여기에 단색화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상승과 함께 거래량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인 김환기, 천경자, 이우환 등의 작품이 소폭 상승했는가 하면 단색화 작가인 정상화, 윤형근, 박서보, 정창섭, 하종현 등의 작품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모처럼 찾아온 미술 시장의 훈훈한 온기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자산가들에게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은 시기상조다. 미술작품이 투자가치가 있는 안전자산으로서 인정받기에는 아직 무언가 2% 부족한 상황이다.
1 김환기, ‘26-Ⅱ-69 #41’2 김환기, ‘봄’3 정상화 ,‘무제 07-02-05’4 제프 쿤스, ‘Mound of Flowers’6 이우환, ‘From Line’6 박서보, ‘묘법’
1 김환기, ‘26-Ⅱ-69 #41’2 김환기, ‘봄’3 정상화 ,‘무제 07-02-05’4 제프 쿤스, ‘Mound of Flowers’6 이우환, ‘From Line’6 박서보, ‘묘법’
미술 시장 열기, 금융상품 연계 가능할까
국내 미술 시장은 2006~2007년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은행들도 이 같은 분위기에 화답하듯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을 위한 사모펀드(PEF) 형식의 아트펀드를 앞 다투어 만들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1호 펀드, 골든브릿지의 2호 펀드, 하나은행의 아트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출발은 좋았다. 신한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이 함께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아트펀드와 하나은행의 사모펀드는 3년 만기 목표 수익률 10%를 자신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비자금 사건에 미술품이 연루되며 갑작스런 침체기에 빠져든 대목은 아쉽다. 저금리 시대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세계 미술 시장이 유래없는 호황을 누렸던 것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최근 미술 경매 시장의 부활이 곧바로 금융상품들과 연계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07년 전후 미술 시장의 호황과 함께 아트펀드가 불같이 일어났지만 금융위기 이후 관련 상품은 사라진 상태”라며 “미술품이라는 것이 장기간 투자를 해야 하고 정치사회적 상황에 상당히 민감해 최근 미술 시장의 반등 분위기를 좀 더 지켜보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미술 시장 관계자도 아트테크(아트+재테크)와 관련해 장기적 안목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K옥션 관계자는 “미술품은 투자 개념보다는 자산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투자 개념으로 보더라도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장기간 투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자산이든 투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제대로 알고 구입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또 미술품은 다른 소비재와는 달라 유일무이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산다면 그 주식은 모두 같은 가격을 갖지만 미술품의 경우는 같은 작가의 같은 시대, 시기의 작품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이 관계자는 “미술품은 안목 투자라는 말이 통용되곤 하는데 기본적인 배경 지식 외에 작품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 사진 서울옥션·K옥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