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손자녀 상속, 고령화 시대 해법 될까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고령화 시대의 부작용일까. 한국의 상속자들은 점점 늙어 가고 있다. 자신의 정년퇴임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90대의 노부모로부터 재산 증여를 받는다면 마냥 기쁘기만 할까. 세대를 건너뛴 ‘손자녀 상속’이 고민되는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조만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오는 2032년쯤엔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90대 노부모, 60대 자식세대, 30대 손자녀의 가족사진이 흔한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보다 10~15년 정도 시차를 앞서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일본만 보더라도 상속받는 자녀들은 50대 이상이고, 65세 이상 노년층이 전체 금융자산 중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장롱 속에 돈을 넣어 두고 상속을 미루면서 ‘노노(老老)상속’으로 인한 세대별 빈부 격차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최근 한국에서는 손자녀 상속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추세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같이 늙어 가는 상황이라면 세대를 건너뛰어 손자녀 세대에게 상속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니즈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상당하다. 손자녀에 대한 과도한 상속·증여가 부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 일반 대중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손자녀에 대한 상속·증여 시 부과되는 할증과세율을 상향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노년층에 머물러 있는 부(富)의 세대 이전과 경제적 불균형 해소 측면에서 손자녀 상속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지고 있다.

◆변칙 상속이냐, 노노상속 대안이냐

최근 자식세대가 아닌 손자녀에게 상속을 해주겠다는 자산가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2016년 7월에 발표한 ‘2016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손자녀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하겠다고 답변은 26.1%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6%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자녀나 배우자에 대한 상속 니즈가 훨씬 강하다. 하지만 자산규모별로 봤을 때 금융자산 50억 원 이상 부자가 50억 원 미만 부자에 비해 손자녀 상속에 대한 니즈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은 유의미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6년에 자산가들 사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는 증여신탁 상품도 이 같은 트렌드를 방증한다. 증여신탁 상품은 증권사와 은행 등을 중심으로 2016년 11월 기준으로 4500억 원이 넘게 팔렸는데 현행법상 증여신탁을 활용할 경우 과세 대상에 대해 연 10%의 할인율을 적용받는 점이 인기의 배경이었다.

금융자산을 증여신탁으로 가입했을 경우 여기서 발생한 원금과 이자를 자녀나 손자녀에게 돌려주게 돼 있는데 매년 10%씩 복리로 할인율이 적용되다 보니 세금이 대폭 줄어드는 감세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분할로 받는 자산에 대해 할인율을 모두 적용해보면 원래 100억 원이었던 증여세 과세 대상은 65억 원으로 줄고, 증여 시 50%의 세율을 적용해 약 45억 원(누진공제액 4억6000만 원 등 포함)이었던 세금은 증여신탁을 활용할 경우 약 28억 원으로 40% 가까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황재규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팀장은 “과거에는 종신보험 등 비과세 상품인 보험 상품을 상속이나 증여에 많이 활용했는데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에 연 6.5%의 할인율을 받았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최근 할인율이 연 3.5%로 축소되다 보니 여전히 연 10%의 할인율을 제공하는 증여신탁에 관심이 모아지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최근 손자녀 상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고령화의 영향도 컸다는 것이 황 세무팀장의 분석이다. 그는 “아무래도 100세 시대다 보니 증여받는 자녀 역시 노인세대에 가까워지는 경우가 늘며, 예전보다 손자녀들에 대한 증여 니즈가 많아진 것 같다”며 “손자녀에 대한 증여에는 30%의 할증이 붙긴 하지만 한 세대를 건너뛰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200% 낼 것을 할증이 붙더라도 130%만 내는 꼴이어서 단순히 수치적으로만 봐도 70% 정도 세이브가 된다는 점도 고려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손자녀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부산해지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2016년 11월 한 세대를 건너뛴 상속·증여에 대한 할증과세율을 50%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한 세대를 건너뛴 상속·증여에 대해 산출세액의 30%(상속인·수증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40%)를 할증 과세하고 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미성년자 상속·증여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성년자인 자녀나 손자녀에 대한 증여재산가액이 5억 원을 초과할 경우 산출세액의 20%를 가산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현행법은 미성년자인 손자녀에게 증여하는 재산가액이 2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 산출세액의 40%를 할증 과세하고 있다.

최 의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20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재산가액이 8678억 원에 이르고 이 중 2500억 원이 10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증여되고 있다. 또 2014년 당시 수증자가 5554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 평균 1억5600만 원씩 증여된 셈이 된다.

또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기업집단별 미성년자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2016년 4월 1일 기준으로 대기업 총수 일가의 미성년자 43명이 계열사 주식 1000억 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권의 반감 때문인지 2016년 세법 개정을 통해 상속·증여세를 사전에 신고할 경우 세금을 할인해주는 신고세액 감면 기준도 축소됐다. 상속세는 사망한 지 6개월, 증여세는 소유권을 넘겨준 지 3개월 이내에 세금을 신고하면 10%를 깎아주었는데, 2017년부터는 7%로 축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1.5%포인트 오르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이 부를 쥐고 있고, 노노상속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상황에서 사회 전반적인 소비와 경제활동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손자녀 상속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50%)보다 더 높은 상속·증여세율(55%)을 규정하고 있지만 노노상속에 대한 고민 때문에 손주에게 주는 교육 자금 면제(최대 1500만 엔), 손주·자녀의 주택 구입 자금 면제(최대 1000만 엔) 등 세금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모와 10년 이상 거주한 집을 물려받으면 최소 5억 원, 최대 15억 원의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국회 합의로 진행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자 감세 등 논란 때문에 조기 증여에 대한 혜택 확대 논의는 진척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황재규 세무팀장은 “80세만 넘어도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증여의 효과는 줄어드는데 증여를 해도 10년 내에 돌아가실 경우 사전증여를 한 재산이 다시 상속재산에 합쳐져서 상속세를 재계산하기 때문이다”라며 “손자녀 등 상속인 외의 자에게 증여한 경우 5년만 넘으면 상속재산 합산에서 빠지기 때문에 증여를 미룬 고령의 피상속인들이 유효한 상속 플랜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령이 돼 손자녀에게 증여를 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로 부(富)가 조기에 이전돼 소비로 연결될 수도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만큼 단순히 세금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의 선순환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늘어나는 손자녀 상속, 고령화 시대 해법 될까
◆손자녀 상속, 유류분 꼬인 매듭 풀까

손자녀가 상속·증여를 받을 당시 공동상속인의 지위에 있느냐 여부에 따라 상속재산이나 유류분 계산은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조부모가 상속재산을 물려주는 피상속인이고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있다면 별도로 유언을 통해 손자녀를 상속인으로 지정하지 않는 한 손자녀들은 공동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다. 또 현행 세법에서는 상속세를 계산할 때 10년 전에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까지도 포함시키는데 손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은 상속일 5년 이내에 준 재산만 상속재산에 합산된다. 고령의 조부모가 절세 측면에서 손자녀 상속을 고민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피상속인이 세대를 건너뛰어 손자녀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할 경우 30%에 상당하는 금액을 가산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다만 상속인인 부모가 사망해서 어쩔 수 없이 세대를 건너뛰어 손자녀가 상속을 받게 됐다면 대습상속(對襲相續)에 해당돼 할증과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민법상 대습상속이란 상속인이 되는 사망자의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에 그의 직계비속이나 배우자가 그의 순위에 대신해 상속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상속인이 살아 있음에도 상속 포기에 따라 후순위 상속인이 상속받게 되는 경우에는 대습상속에 해당되지 않아 할증과세를 낼 수 있다.

대습상속의 경우 피상속인의 빚까지 물려받게 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015년 5월 그동안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던 대습상속을 받은 손자녀의 법적 책임과 관련해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대법원은 채권자인 A사가 사망한 채무자 B씨의 손자 C(9)군 등 유족 3명을 상대로 “채무자의 자녀가 모두 상속을 포기했으니 배우자와 후순위 상속인인 손자녀가 빚을 대신 갚으라”며 낸 대여금 청구소송 상고심(2013다48852)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C군과 C군의 부모가 C군 등에게 채무가 상속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직 상속 포기 기간이 지나지 않을 것으로 봐야 한다”며 “C군 등은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 포기를 한 다음 청구이의의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자녀 상속은 유류분(遺留分: 상속인들에게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 지분)이라는 매듭의 유일한 틈새이기도 하다.
생전 증여의 경우 상대방이 공동상속인인지 제3자인지 여부에 따라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이 달라진다. 공동상속인은 생전 증여분을 사실상 기한에 제한 없이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는 반면, 손자녀 등 공동상속인 이외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상속 개시 전 1년 사이에 행한 것에 한해서만 유류분 산정을 하는 기초재산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14년 7월 주목할 만한 판결(2012다31802)을 내놨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할머니로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의 임야 1만6000여 ㎡를 증여받은
D씨를 상대로 E씨 등 7명이 낸 소유권 이전 등기절차 이행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D씨가 증여받은 시점이 공동상속인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기 이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대습상속인이 대습 원인이 발생하기 이전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를 받은 때에는 상속인의 지위에서 받은 것이 아니므로 상속분의 선급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만약 D씨가 아버지 생전에 할머니로부터 받은 땅을 공동상속인들의 유류분 기초재산 산정에 포함시키는 특별수익으로 볼 경우 피상속인(할머니)이 먼저 사망해 상속이 이뤄진 경우에는 특별수익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이 피대습인(아버지)이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했다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특별수익으로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유류분제도가 상속인들의 상속분을 일정 부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피상속인의 자기 재산의 처분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그 인정 범위를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자영 씨와 백경희 씨는 ‘대습상속인의 특별수익 및 유류분 반환의무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유류분제도는 근대법적 관점에서 볼 때 사유재산제의 원리와 자유주의에 배치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현행법상 유류분제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피상속인의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유류분의 인정 근거와 비판적 시각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는 타당하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거들었다.

이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을 당시 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았으나 혼인 또는 입양으로 피상속인의 배우자나 양자가 된 경우도 이번 판결의 논리가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논문에서 “공동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은 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를 받은 후에 피상속인과의 혼인이나 입양으로 공동상속인이 된 경우 대상 판결의 논리에 따라 공동상속분의 선급으로 볼 수 없으며, 특별수익 및 유류분 반환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손자녀 상속이 단단히 꼬여 있던 유류분의 매듭에 틈새를 벌려 놓은 것이다.

최수령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다소 엄격한 유류분 난제를 피해 내야 할 세금은 내더라도 1명에게 집중해 가업을 물려주고자 할 경우 손자녀 상속은 유효한 플랜으로 고민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