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 종합자산관리의 신데렐라 될까?
사진 왼쪽부터 김상의 삼성생명 신탁부장, 이용 한국투자증권 신탁부장,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올해 정부는 신탁을 종합자산관리의 만능열쇠로 키우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말 금융권 전체 수탁액만 700조 원을 넘어선 신탁 시장에 대해 무엇을 더 키운다는 말일까?

사실 지금까지 신탁은 금융상품의 또 다른 판매 채널일 뿐이었다. 2011년 <신탁법> 개정을 통해 유언대용신탁 등 상속형 신탁 상품이 등장했지만, 신탁이 종합자산관리의 대표 상품으로 진화한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는 걸음마 단계 수준이었다.

올해 정부에서 새삼 신탁업 제도의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은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에 자산관리의 해법을 찾기 위한 고민이다. 금전이나 부동산은 물론 부채나 보험금청구권 등 다양한 자산을 맞춤형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신탁의 확장성과 유연함을 주목한 것이다.
이제 신탁은 종합자산관리의 신데렐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일까?

정리 한용섭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장소 협조 호텔 프리마 서울(02-6006-9306)

정부에서 신탁업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나선다. 금융위원회가 연초에 금융개혁 5대 중점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신탁업 제도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든 이후 한 달여 만인 지난 2월 8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법무부가 머리를 맞대고 신탁산업 개선을 위한 첫 관계부처 협동회의를 진행하는 등 중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신탁이 <자본시장법>에 묶이면서 여러 재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신탁 본연의 장점이 퇴색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보완에 나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국민 부자 만들기 프로젝트’로 불렸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그 대안으로 신탁을 장기적인 ‘국민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키우려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정부 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신탁산업이 지금까지 단순 운용형 금전신탁에 편중돼 있던 것을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키우기 위해 신탁업 진입 문턱을 낮추고 운용 자율성도 확대하는 등 대규모 리모델링을 진행하게 된다.

은행이나 증권사 위주로 운용돼 왔던 신탁업이 보다 전문적이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소규모 신탁 전문 법인, 법무법인(유언신탁), 의료법인(치매요양신탁) 등 새로운 신탁업자에 진입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유동화 전문 법인, 부실채권관리신탁 등 전문 법인의 출현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생전·유언신탁, 유동화신탁 등 새로운 수요에 대응해 수탁재산 범위를 대폭 확대해 영업(사업), 담보권, 보험금청구권은 물론 자산에 결합된 부채까지 포함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장기 재산관리 신탁 등에 대해서는 광고나 홍보 규제를 완화하고, 비대면 계약을 일부 허용하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관련 부처의 의견을 모은 뒤 5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신탁업법> 제정안을 만들고, 이를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두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업계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무리하게 법 제정의 속도를 내고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실제 신탁업의 투자일임 허용 여부를 놓고 은행과 증권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신탁업 활성화의 키를 쥔 세제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한경 머니는 신년 스페셜 좌담의 주제로 ‘신탁’을 선정해 지난 2월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호텔 프리마 서울의 ‘노블레스홀’에 모여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좌담에는 김상의 삼성생명 신탁부장,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이용 한국투자증권 신탁부장(가나다 순)이 참여했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 한양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금융법무과정과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금융투자를 전공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친족 상속법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신탁부 팀장)으로 부동산 트러스트, 성년후견지원신탁 등을 론칭했다.
김상의 삼성생명 신탁부장: 중앙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생명에 입사해 삼성생명 금융연구소와 경영기획팀 등을 거쳤다. 2009년 신탁지원부와 인연을 맺은 뒤 부산FP센터장을 거쳐 2014년 12월부터 WM사업부 신탁부장을 맡아 오고 있다.
이용 한국투자증권 신탁부장: 동원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한국금융지주 감사실을 거쳐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투자증권 신탁부를 이끌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서 <친족상속법>과 <신탁법>을 강의했고, 법무부의 <상속법>, <가사소송법> 등의 개정위원으로 활약했다. <상속신탁연구>와 <미국상속법>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는 등 신탁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신탁업, 종합자산관리의 신데렐라 될까?


#1. 정부, 신탁업 활성화에 나선 이유

한용섭 한경 머니 부장(이하 한 부장)
최근 정부에서 신탁을 종합재산관리의 키포인트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일까요.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이하 배 센터장) 고령화에 대한 고민 때문이지 않을까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됐던 일본의 경우 우리와 유사한 고령화 비율 시기에 상속 분쟁들이 많이 늘어났고 거기에 대한 예방적 방법으로 다양한 신탁 프로그램을 내놓았어요. 지난해 12월에 일본의 스미트러스트(일본 미쓰이스미토모신탁그룹)를 방문해 상품 라인업을 둘러보게 됐는데 확실히 사회가 고령화되다 보면 거기에 맞춰서 변천되는 것 같아요. 금융상품 공급자들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용 한국투자증권 신탁부장(이하 이 부장) 그렇죠. 그래서 2011년 <신탁법>이 개정이 됐던 건데 <자본시장법>의 틀 안에서 하려다 보니까 제약 조건이 많았어요. 현행 법령에서는 부채나 보험금청구권은 신탁이 안 되고, 전체 재산 중에서도 신탁이 안 되는 재산도 많았으니. 그래서 아예 <자본시장법>에서 떼어내 <신탁업법>을 따로 만들자는 취지 같아요. 금융기관 외에 전문화된 신탁사가 생기면 전체 자산을 받아서 재신탁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한 부장 정부는 기존 신탁 운용에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는데 앞으로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할까요.

김상의 삼성생명 신탁부장(이하 김 부장) 금융 쪽만 보자면 사실 우리나라의 신탁이라는 게 종합재산신탁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금융상품들에 신탁을 씌워서 파는 수준이었죠. 정부에서는 선진국의 종합재산신탁의 개념을 도입해 신탁을 상속이나 은퇴 설계에 적극 활용토록 하려는 것 같아요.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이하 김 변호사) 종래에는 신탁이라는 게 부동산신탁이나 금전신탁 등 상사신탁 위주로 돌아갔죠. 하지만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상속 수단이나 공익적인 측면들도 고려할 필요성이 있어요. 그런데 신탁업자를 규율하는 법이 <자본시장법>이란 말이죠. 신탁이 종합재산관리 역할을 하려면 개인들을 위한 맞춤형 개념이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 <자본시장법>은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측면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펀드 등 투자를 규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법이다 보니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거죠.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을 수렴해 이번에 새롭게 신탁업자만을 위한 법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요.

배 센터장 사실 은행에서 특정금전신탁만을 주로 취급할 때에는 <자본시장법>만 보면 됐거든요. 그런데 금전 업무만 해 가지고서는 최근 여러 가지 변화된 상품을 다루기 어렵잖아요. 생전에는 신탁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지급하고 피상속인 사망 이후에는 신탁재산에 대한 상속을 집행해주는 유언대용신탁처럼 금전신탁 외에도 재산신탁의 역할들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계에서도 <자본시장법>의 굴레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김 부장 맞아요. 상속이나 증여, 은퇴 설계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자본시장법>의 규율만 가지고는 신탁 서비스를 커버할 수가 없는 거죠. 금융위원회의 신탁 TFT에 참여했었는데 불현듯 드는 생각이 <신탁업법>이 금융위원회 소관 법이 맞는지였어요. 상속이나 증여 등 민법적 요소가 훨씬 더 많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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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탁은 자산관리의 만능열쇠인가

한 부장 종합자산관리의 툴(tool)로써 신탁 서비스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인가요.

배 센터장 신탁은 고객 수요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만 나온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상품군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고객 수요층별로 다품종의 상품들을 만들어내기가 좋다는 거죠. 주인이 사망했을 경우 은행이 반려동물을 돌봐줄 수 있도록 한 KB국민은행의 ‘펫신탁’ 상품 등이 가능한 이유죠. 물론 그에 반해서 손이 너무 많이 가는 단점도 있기 때문에 얼마나 전산화가 가능한지, 장기간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백그라운드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지는 숙제인 것 같아요.

김 부장 제 생각도 비슷해요. 최근 정부의 신탁업 개선 방안에도 나왔지만 금전이나 부동산은 물론 자산에 포함된 부채까지도 수탁재산에 포함시킬 수 있어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요즘 시대하고 잘 맞지 않나 싶어요.

이 부장 개별 계약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수탁재산이나 수익자도 본인이 지정할 수 있고, 수익금도 일정한 연령이 되면 지급될 수 있도록 옵션을 넣는다든지 하는 계약의 유연성이 강점이죠. 또 재산권 명의가 신탁으로 바뀌니까 본인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더라도 수탁 회사가 관리를 해줄 수 있고요.

김 변호사 저는 유류분 이야기를 해볼께요. 제가 보았을 때 유언대용신탁에 넣은 재산은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법정상속인의 몫으로 남기도록 한 유류분(遺留分)의 반환 대상이 되지 않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가업승계의 수단으로도 매우 유용한 것이죠. 자신이 원하는 자녀에게 원하는 재산을 물려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 민법에서는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되려면 둘 중에 하나가 충족돼야 하거든요. 상속 개시 시 피상속인의 재산이거나 생전에 증여한 재산이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일단 유언대용신탁에 넣은 재산은 법적으로 수탁자가 소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피상속인이 사망한 순간에 그것은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이 아니거든요. 수탁자의 재산이지. 그러니까 상속재산이 아니에요. 그러면 증여재산이냐. 생전에 수익자가 받은 게 없어요. 그런 기대만 있을 뿐 증여재산도 아니라는 것이고, 결국 유류분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유언대용신탁을 악용하면 안 되겠지만 상속 설계나 가업승계에서 좋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 부장 유류분에 대해서는 아직 주장이 엇갈리는 것 같아요. 제가 참가했던 신탁 TFT에서는 유류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어요.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신탁 상품을 설계할 때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요.

김 변호사 저는 해석론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아직 국내에 명확한 판례가 나오지 않았죠. 하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일정한 법적 요건을 갖추면 경영권 방어나 가업 상속을 위한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유류분을 주장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법적 보완이 필요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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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탁 롤 모델은 미국? 일본?

한 부장 업권별로 신탁 서비스의 상황이 어떤지요.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상황도 궁금하네요.

배 센터장 KEB하나은행의 경우 미국 등을 벤치마킹했던 것은 아니에요. 몇 가지 자산관리를 하면서 고객들의 유형을 분류해보니 이들의 고민을 해결할 게 신탁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1호 고객은 당시 40대로 의외로 젊은 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령자들이 많아졌어요. 비율로 보면 70대 이상 고객이 60% 정도를 차지하게 됐으니까요. 고령의 고객들이다 보니 치매와 같은 정신적 제약 문제가 나와서 저희 나름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케어트러스트라는 별도의 상품을 내놓게 됐죠. 그 이후 후견신탁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라인업 해 왔던 것 같아요. 은행권 전체적으로 보면 2013년부터 신한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관련 상품을 내놓은 것 같고요. 최근 KB국민은행은 부동산 관리 쪽과 결합한 신탁 상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김 부장 보험 쪽은 아시다시피 신탁 규모도 작고, 신탁을 하는 회사도 드물죠. 삼성생명을 포함해 5곳 정도가 신탁 상품을 다루고 있죠. 사실 보험 회사는 채널 문제도 있잖아요. 저희도 전국에 20개 내외의 창구가 있는데 판매 채널의 제약이 많죠. 하지만 은행이나 증권의 경우 3년 이상 가는 상품이 없는데 보험은 기본적으로 10년, 20년짜리 상품들이 많다 보니까 신탁 상품과 잘 맞지 않나 싶어요. 저희도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다루죠. 2010년경에는 고객이 사망하기 몇 개월 전에 신탁계약을 했는데 피상속인 사망 후 자녀에게 학자금이나 생활자금을 주다가 성인이 되면 나머지를 일시금으로 주는 형태였어요. 아직 보험업계에서 신탁 분야는 마이너한 영역이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 부장 한국투자증권은 2006년에 신탁업 인가를 받았는데 주로 특정금전신탁을 취급했어요. 금전을 신탁 받아 정기예금이나 기업어음(CP)채권 등을 편입해 관리해주는 식이었죠. 자산유동화와 관련해 공사대금이나 분양대금채권 등을 받아서 IB부서랑 협업해 금전채권신탁으로 키워 오기도 했죠. 최근에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로 인해 신탁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다 보니까 점점 차별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최근에는 신탁 상품을 자산관리 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객들이 증권사에는 투자용 자산을 일부 맡기고, 자산 대부분은 은행에 맡겨 놓고 있다 보니까 어느 정도 한계를 느껴요. 증권업계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신영증권, NH투자증권 등이 신탁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 전력투구를 하는 단계는 아니고 신탁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시점에 맞춰 조직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죠.

김 변호사 신탁이라는 게 사실 영미(英美)에서 온 제도죠. 여담이지만 미국에서는 트러스트(trust, 신탁)가 코퍼레이션(corporation, 주식회사)보다 더 익숙해요. 신탁을 거의 주식회사 정도로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죠. 신탁이라는 것이 애초에 미국의 서부 개척 시절에 자금 융통 수단으로 들여여온 것이기도 하고, 상속이나 증여의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하죠. 그러다 보니 신탁을 이용하면 세제 혜택도 많이 주고, 신탁업을 하는 업체도 많아요. 우리나라도 앞으로 법무법인에도 신탁업을 허용하도록 한다는데 실제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수탁자가 변호사 아니면 로펌이에요. 고객이 직접 신뢰관계를 맺은 변호사나 로펌에 신탁을 하게 되면 로펌에서는 각 분야별 전문기관에 재신탁을 하는 식이죠. 사실 로펌에서 다양한 신탁재산을 어떻게 다 관리를 하겠어요. 우리나라도 신탁업을 법무법인에 허용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부장 저는 반대로 금융기관에서 수탁을 받아서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에 재신탁 하는 줄 알았어요. 만약 미국의 모델처럼 간다면 금융기관의 역할이 줄어들게 되는 것 아닌가요.
김 부장 저는 로펌에서 신탁 설계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신탁이 들어올 때 일본에서 넘어오다 보니까 은행 업무 형태로 들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신탁도 금융 회사 관점에서 보려는 시각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김 변호사 신탁 설계는 로펌에서 하고 자산관리는 금융기관 등에서 할 수 있겠죠. 재신탁이 아니더라도 위임이든 법적 형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신탁의 본류를 생각해볼 때 금전신탁은 아주 일부분이에요. 오히려 영국의 경우 상속이나 증여의 수단으로 신탁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한다고 들었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신탁업은 아주 예외적인 모습인 거예요. 예외가 원칙처럼 돼 갔던 거죠. 그런데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요.

배 센터장 개인적으로 일본에 가기 전에 미국의 신탁이 본류라고 생각해서 일본에서 배울 것이 있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게 그때 얻은 교훈이에요. 현재 일본은 상속 설계와 관련해 맞춤형으로 모든 상품이 라인업 돼 있어요.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치매안심신탁, 성년후견지원신탁 등의 상품이 선을 보였는데 일본은 2000년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됐고, 2012년에 후견신탁이라는 상품이 나왔죠. 일본에서는 전체 후견심판의 23~24% 전후를 신탁으로 처리한다고 해요.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 신탁 회사들도 아직 일반 대중들에게 신탁을 이해시키는 데 애로를 겪고 있더라고요. 아직 일상생활에 신탁이 스며들어 있던 것은 아닌 거죠. 하나 재미있는 것은 고령사회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니까 일본의 금융투자협회에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금융당국에 교육자금 증여신탁(조부모가 손자녀에게 교육자금 증여 시 1인당 1500만 엔 한도 비과세 혜택)이나 결혼·육아 지원 신탁 등을 제안했더라고요. 상품도 굉장히 보편화돼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신탁 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 이야기만 나오면 ‘부자 감세’나 ‘금수저’ 문제가 거론되곤 하는데 우리도 일본처럼 세대 간에 돈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터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부장 일본의 교육자금 증여신탁은 노후 세대들이 갖고 있는 돈을 젊은 세대가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거잖아요. 사실 최근에 증여신탁의 할인율을 10%에서 3%로 내렸는데 그럴 게 아니에요. 잘 생각해보면 돈을 가진 사람들이 미리 사전증여를 하면 그 돈은 시장에서 쓰이게 되는 거잖아요. 정부에서는 세금을 앞당겨서 걷을 수도 있는 것이고.

김 변호사 맞아요. 당장 증여세를 왜 깎아주느냐하는 건데. 미리 세금을 내고 사전증여를 하겠다는 의사를 계속 막아 버리게 되면 노인 세대에서 돈을 쓰지 않고 놔두게 되니까 세대 간 불평등은 심화되고, 경제적 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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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탁 상품 어디까지 진화할까?

한 부장 고객의 접점인 신탁 상품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요.

배 센터장 부모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보상금이 나왔을 때 미성년 자녀를 케어할 수 있도록 미성년후견 상품을 준비 중인데 이에 대해 약관 심의를 받아서 진행할 계획이에요. 또 일반 상속과 생전 자산관리가 필요한 케어의 개념을 성년후견과 미성년후견으로 디테일하게 정리해 상품화하고 있죠. 상품 라인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영업점이나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한 부장 정부에서는 생명보험신탁 같은 것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김 변호사 생명보험신탁은 반드시 해야 하고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신탁업법>을 만들 때 명시적으로 보험금청구권도 신탁재산에 포함되는 것으로 넣든지 아니면 포괄규정으로 만들든지 해야 된다고 봐요. 그렇지 않더라도 <자본시장법> 규정만으로도 보험금청구권은 신탁재산이 된다고 보고 있고요. 생명보험신탁이 필요한 이유는 장애를 가진 자녀라든지 낭비가 심하거나 부채가 많은 자녀가 있을 경우 생명보험신탁은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어요. 신탁재산은 독립성 때문에 다른 채권자들로부터 온전하게 재산을 보호해 자녀들에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죠.

김 부장 제가 보기에도 보험금청구권을 신탁할 수 있다고 봐요. 다들 취지에도 공감하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보험 회사다 보니까 저희도 일찌감치 이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중도에 검토를 중단했는데 보험계약과 신탁계약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보험금청구권이라는 것은 보험수익자의 권리잖아요. 수익자의 재산이 되겠지요. 그런데 신탁계약을 할 때 누가 위탁자가 돼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해요. 보험계약자가 위탁자가 된다고 하면 사망하는 순간 다른 사람 것이 되는 재산을 위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미국의 경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죠.

김 변호사 미국에서는 보험증권을 신탁해요. 우리나라는 보험증권이 신탁재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죠.

이 부장 양도 문제도 있더라고요. 내가 보험계약을 하고 수익자가 됐는데 보험금청구권을 신탁하게 되면 보험사의 수익자는 신탁사가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보험금청구권이 양도가 가능하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법무부의 유권해석에서는 양도가 안 된다고 하니까.

김 부장 최근 움직임이 보험수익자에 개인, 법인 말고 신탁계약을 넣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신탁계약이라는 게 사실은 모호하잖아요. 미국 같은 경우 신탁계약이 주식회사처럼 법인체 성격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이 안 돼요. 신탁에 법인격을 붙이는 순간 각종 세금 부담도 생기고. 단순한 문제는 아니죠.

김 변호사 구조나 법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고치면 되죠. 필요성을 다 안다면 말이죠.

김 부장 당장 보험생명신탁을 한다고 해도 문제예요. 통상 종신보험에 연계를 시킬 것인데 계약자가 죽어야 수탁사에 돈이 들어오는 동안 신탁 회사는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죠.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고객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죠. 보험료만 내면 되는데 신탁수수료까지 내야 한다고 하면 말이죠. 결국은 전체적인 종합재산신탁이나 유언대용신탁이 활성화돼 종합자산관리를 하게 될 때 보험생명신탁도 유용한 것이지 독립적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죠.

이 부장 종합자산관리와 종합재산관리가 개념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현금을 받아서 운용을 하는 개념이 자산관리라면, 현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산을 받아서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것이 재산관리가 아닐까 싶어요. 종합재산신탁이라고 하면 금전, 유가증권 등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계약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관리를 해주고 수익자에게 지급을 해주는 그런 개념이니까 앞으로 신탁이 나아가야 할 길은 종합재산관리라는 거죠.

김 부장 제 생각에는 종합자산관리의 개념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재산에다가 부채를 합치면 자산이 되거든요. 정부에서는 부채도 신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니까. 기존의 금전, 증권, 부동산 등 7종으로 묶여 있던 수탁 가능 재산이 다양하게 확대되는 만큼 신탁의 역할도 진화될 것은 분명해 보여요.
신탁업, 종합자산관리의 신데렐라 될까?
#5. 신탁 활성화, 향후 과제는

한 부장
정부에서 신탁업 활성화를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업계에서 바라본 향후 과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배 센터장 사실 스미트러스트가 일본에서 가장 큰 곳인데 맞춤형 신탁 설계는 40여 건밖에 없어서 좀 놀랐어요.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죠. 신탁에 대해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세제 혜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후 상속 분쟁 예방 등 선기능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세액 공제 등 혜택을 부여해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게 필요해요.

이 부장 앞으로 우리나라 신탁제도의 방향은 미국 쪽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은 세제 혜택도 있지만 유언검증제도가 있어서 생전신탁을 이용하면 신탁재산에 대해 유언 검증 절차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혜택을 주잖아요. 그런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거죠.

김 변호사 제일 중요한 것은 세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신탁은 많이 활용돼야 해요. 신탁이라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사회에 오픈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모든 재산을 오픈해서 돌아가게 만드는 게 사회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득이고 상속세를 깎아줘도 이게 훨씬 더 이익일 것이라는 거죠. 음성적으로 돌던 자산이 드러나서 사회적으로 돌게 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제 혜택이 따라가야 해요. 아주 쉬운 방법부터 이야기한다면 상속세를 매기더라도 누진에는 포함시키지 말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신탁에 넣어 둔 재산은 별도 재산으로 편성해서 상속재산이 100억 원이고 신탁에 50억 원을 넣어 두었다면 합쳐진 150억 원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각각 별개로 해서 매기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방세에서 재산세 매기는 방식처럼 말이죠.

배 센터장 현재 부동산관리신탁을 금전 시스템과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요. 금전팀 하고 재산팀이 늘 분리돼서 움직이다 보니까 고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고객의 종합재산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또 다양한 상품들을 갖춰서 고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내부적으로는 신탁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시급해 보여요.

김 부장 금융당국에서는 신탁을 국민의 자금 관리 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세금 혜택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사실 세금 문제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서 하는 것이라 금융위원회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전달될지는 불확실해요. 또 유언대용신탁이라는 것이 한 세대만 건너가는 게 아니고 여러 세대를 이어갈 수 있거든요.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신탁계약이 세대를 이어갈 경우 세금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죠. 첫 번째 신탁 수익을 받은 사람이 다 내야 하는지, 아니면 그때그때 받을 때마다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 세법상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요.

김 부장 세제 혜택 부분 말고도 신탁계약의 비대면 활용이라든지, 상품의 광고나 홍보 등에 대해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금융위원회에서는 제도 개선에 긍정적인 것 같은데 향후 어떻게 반영될지는 솔직히 미지수죠. 사실 금융당국에서는 신탁업 활성화가 일반 대중들에게 부자를 위한 제도 개선으로 비춰질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해요. 어쨌거나 신탁이 활성화되려면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미국같이 중산층도 활용할 수 있는 종합자산관리의 툴이 돼야 할 거예요.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