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 캔버스에 디지털프린트
이도희, 캔버스에 디지털프린트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이도희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 우주에) 오직 우리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지독한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I don’t know. But I guess I’d say if it is just us…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이도희 작가의 사진 작품을 처음 본 순간 떠오른 말이다.

이 말은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콘택트(Contact)>에 나오는 대사다. 좀 더 정확히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미국 최고의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년)이 한 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우주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인 호기심의 미덕이나 영혼의 소중함과 선(善)에 대한 믿음 등 감성의 본질을 터치한다.

미국 코넬대 천문학 및 우주과학 교수를 역임한 세이건은 미국 22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소유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나사)과 미국 미확인비행물체(UFO) 조사기관의 자문을 맡으면서도 다양한 저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우주에 대한 무한한 꿈과 도전을 현실에 옮기려 무던히 노력했던 인물로 평가되지만, 안타깝게도 로버트 제멕키스와 함께 영화 <콘택트>를 제작 중이던 1996년에 타계했다.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과 사진가 이도희, 둘의 공통점은 ‘또 다른 차원(次元)’을 얘기한다. 동시에 그 관점은 ‘인간의 사고 범위를 벗어난 세계와 진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도희 작가는 작품 명제에 일괄적으로 ‘D.Dimension’을 사용한다. 이 단어 디멘션(Dimension)의 사전적 의미엔 ‘공간의 크기, 높이·너비·길이의 치수, 상황의 규모, 차원의 관점’ 등을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사용된 ‘D.’는 ‘Dimension’의 반복일 수 있다.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1D·2D·3D·4D’ 개념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次元, Dimension)’은 어느 정도나 될까?

우선 ‘0차원’은 ‘점(點)이 곧 우주 자체가 된 세계’다. 다음의 ‘1차원’은 ‘선(線)의 세계’로 앞과 뒤의 구분만 있고, 상하좌우 개념은 인지할 수 없다. 이어서 ‘2차원’은 ‘면(面)의 세계’로써 동서남북 사방의 개념(앞, 뒤, 좌, 우)은 있지만, ‘높이’라는 개념이 없다. 반면 ‘3차원’이란 ‘공간(空間)의 세계’에 들어오면 높이까지 존재해 비로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된다. 그다음 ‘4차원’엔 ‘시간(時間)성’이 개입된다지만, 아직 우리로선 4차원 이상을 인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3·4차원을 합쳐 ‘시공간(時空間)’으로 부르는 정도다.

상대적으로 세이건 교수가 바라본 ‘우주(universe, cosmos)’라는 개념에는 단순히 ‘지구 밖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모든 물질과 복사(radiation)를 포함해 시공간이 합쳐진 일체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작가의 작품 ‘D.Dimension’ 역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출발하지만, 그 일상의 틈새에서 ‘또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마치 일상에 공존하는 우주적 관점을 사진으로 포착한 것처럼 새로운 ‘차원의 축’을 하나씩 더하고 있다.
다차원 사진, 새로운 시공간의 틈을 열다
이 작가는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생소하다는 표현이 맞을 수 있다. 원래 패션계에서 이름난 25년 차 중견 사진작가다. 김영세, 박윤수, 이상봉, 장광효, 하용수, 바쏘(BASSO), 지오지아(ZIOZIA), 김수로, 김완선, 박정자, 변정수, 유해진, 인순이, 진희경, 차승원 등 다수의 패션계 디자이너나 배우, 모델 등 400여 명의 화보를 도맡았을 정도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작품 세계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던 중 사진에서의 ‘공간적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경기도 양평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자연의 경이로움’과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다.

특히 이 작가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의 크고 작은 도시 여행을 계기로 찍은 풍경 사진에 ‘새로운 시각적 개념(Diverse Dimension)’의 상징적 오브제를 합성하게 된다. 인물 중심의 이전 작업에선 모델 내면의 감정까지 포착해 차별적이고 깊이 있는 색조를 연출했다면, 평범한 풍경 사진에선 일상적인 인식 이면의 또 다른 차원을 재창조한 것이다. 풍경의 일부가 일그러지거나, 그 풍경 위를 부유하는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오브제 서클(circle)이 등장한다. 과연 이 작가는 다소 엉뚱하게 조합된 오브제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일까.

그의 사진은 ‘차원의 경계’에 주목하고 있다. 스치는 일상 풍경에서 ‘새로운 시공간의 틈새’를 발견한 것처럼 전혀 색다른 ‘다차원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아마도 작품 속에서 그러한 친숙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융합된, 차별화된 작품 제작 방식 때문일 것이다. 아날로그 세상은 자연이 주도하는 세상이라면, 디지털은 기호와 상징으로 가공된 인간 중심의 개념일 수 있다. 이처럼 이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아날로그적 풍경 사진에 본인만의 인지적 해석으로 재창조된 디지털적 기호를 덧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평소 본인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하나 꼽아보라”는 질문에 ‘아방가르드(avant garde)’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이 단어에는 본인이 추구해 왔거나, 추구해 가고 싶은 작품 세계의 성격이 함축됐을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에서 비롯됐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예술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예술 경향’이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처럼 ‘기성 예술의 관념이나 유파(流派)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지향한 혁신 예술’로 이어진다. 그 역시 기존의 사진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혁신적 시도를 모색하는 셈이다.

3차원의 풍경을 2차원의 사진 화면에 옮기고, 그 위에 다시 4차원적인 오브제를 가미해서일까? 이 작가의 사진엔 건축적인 시각 효과까지 충만하다. 실제로 전시 형식에선 사진 작품과 미디어영상을 함께 선보이기도 한다. 이 미디어영상 화면에선 풍경 위의 유기적 오브제 형상이 무한 반복으로 움직이게 된다. 실제의 현실 속 풍경이 투영된 오브제지만, 금방이라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켜줄 ‘시간의 문’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다차원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힐링의 역할도 감당해주고 있다.

이 작가는 사진이지만 일반 회화 형식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디지털 작업으로 완성된 작품 이미지는 서양화의 캔버스 규격에 맞춰 프린트한다. 가격 역시 크기별로 일정한 패턴을 정해 두었다. 가령 10호 이하 크기는 50만 원에 에디션 20장(ed. 20), 10호는 60만 원(ed. 10), 20호는 80만 원(ed. 10), 30호는 100만 원(ed. 10), 40호는 120만 원(ed. 8), 50호는
180만 원(ed. 8), 80호는 250만 원(ed. 5), 100호는 360만 원(ed. 5), 120호는 500만 원(ed. 3) 등이다. 작품 가격으로만 본다면, 연륜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다.


아티스트 이도희
다차원 사진, 새로운 시공간의 틈을 열다
1965년생. 1991~1997년 엘리트 스튜디오 대표, 1999년부터 무용 전문지 월간 몸 사진감독, 1993년부터 극단 목화 이미지 프로그래머, 2000~2003년 인터넷방송국 마루 TV 대표 등을 지냈다. 패션디자이너 김영세·박윤수·이상봉·장광효·하용수, 패션 브랜드 바쏘·지오지아, 배우 겸 모델 김완선·변정수·인순이·진희경·차승원 등 400여 명의 패션계 문화인사의 화보를 도맡았다. 또한 1993~2011년엔 <로미오&줄리엣>, <노틀담 드 파리>, <틱틱붐>, <풀몬티 돈주앙>, <로키호러 쑈>, <플라맹고 푸에고> 등 1000편 이상의 무용, 연극, 뮤지컬 이미지 작업도 진행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및 아주대 산업대학원 강사를 역임하고, 춘천 아트페스티벌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ㆍ세종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수원대 미술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