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태종의 신하인 위징(魏徵)이 한 말로 여기서 창업이란 나라를 처음 세우거나 사업을 처음 시작한다는 말이고, 수성은 이뤄놓은 것을 그대로 지켜 나간다는 말이다. 결국 이는 창업보다는 수성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럴까?
왜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가?
한 연구에 따르면, 세대교체에 성공하는 확률은 불과 30%밖에 안 된다. 즉, 70%의 기업이 창업자의 사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승계에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비슷하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승계 실패의 원인을 큰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면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수렴된다.

첫째, 환경과 기술은 계속 바뀌는데 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변화에 대응할 능력이 없어 실패하게 되는 경우, 둘째,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유동성 문제로 기업이 약화되거나 재원이 부족해 기업을 매각하거나 폐업하는 경우, 셋째, 후계자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리더로서 능력이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한 경우, 넷째, 세대가 지날수록 가족 수가 늘어나지만 각자의 관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가족 간의 갈등으로 기업 에너지가 떨어진 경우, 마지막으로, 세대 간의 경영철학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 갈등으로 경영층의 응집력을 약화시키거나 세대 갈등으로 극단적으로는 후계자가 바뀌거나 회사를 떠나는 경우 등이다.

결국 승계의 성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와 같이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사전에 예방하고,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가에 달렸다. 그러면 앞서 소개한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현실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발행하는지 필자가 만났던 실제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자.

후계자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1986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산타베어’라는 이름의 곰 인형은 우리나라의 한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이 곰 인형은 이후 20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며 미국에서 400만 개 이상이 팔렸다. 1977년 이 회사를 설립한 창업자 강 모 사장은 봉제완구 수출 전문 기업을 경영하면서 30년간 흑자 경영을 달성한 중소기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세운 30년 흑자 기업을 스스로 마감하는 종업을 선택했다. 그는 왜 건실한 기업의 문을 닫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됐을까?

창업자가 나이가 들면서 경영의 한계를 느꼈지만 자녀들이 가업승계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 또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굳이 힘든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부 직원 중에서 후계자를 찾아보았지만 회사를 맡아 책임질 만한 역량 있는 직원이 없었다. 전문경영인을 두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봉제를 알면 영어가 안 되고, 영어가 되면 봉제를 몰라서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매도를 하려고 알아봤지만 봉제사업이 사양사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30년간 흑자를 내면서 잘나가던 회사를 마감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 창업한 창업 1세대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 이와 유사한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전망이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표 중 59%는 친족 승계를 원하지만 38%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미정’이거나 ‘제3자’ 또는 인수·합병(M&A)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후계자가 없어 폐업하는 기업이 연간 6만9849곳에 이른다고 했다.

이를 일자리로 환산할 경우 대략 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더구나 적절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M&A 성사 가능성이 낮아 헐값에 매각되거나 문을 닫을 가능성도 높다. 일본에서도 폐업하는 기업 중 후계자가 없어서 폐업하는 회사가 5개 중 1개꼴이며, 이런 추세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년 된 한 중소기업 후계자인 김 모 사장은 얼마 전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7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 회사는 문을 닫았다. 도대체 아버지와 아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부친인 김 모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김 사장의 어린 시절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승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학을 다녀와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회사에서 후계 수업을 받던 형이 부친과의 갈등으로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김 사장이 회사를 맡게 됐다.

장남이 회사를 떠난 것에 충격을 받은 김 회장은 급하게 둘째 아들을 불러들여 사장으로 취임시켰고,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살겠다며 차남에게 전적으로 회사를 맡기고 떠났다. 그리고 그가 맡아 5년가량 죽을힘을 다해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안정을 찾아갈 무렵, 김 회장은 다시 회사 일에 조금씩 관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기야 회사에 전면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김 사장이 결정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번복한다거나 사전합의를 거치지 않고 중대한 사안들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부자간 갈등이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회장이 당장의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이 설립한 연구소를 폐쇄하며 부자간의 갈등은 더욱 본격화됐다. 이렇게 1~2년이 지나자 김 사장도 점차 경영에 흥미를 잃게 됐고, 급기야 회사를 맡은 지 7년 만에 형과 같이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그가 떠난 후 회사는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고 70대 중반에 접어든 김 회장은 회사를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회사를 헐값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마침내 김 회장은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40년 넘게 동안 키운 기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버지와 아들, 즉 창업자와 후계자와의 관계는 승계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후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경영 철학과 핵심 가치, 그리고 수십 년간 쌓아온 암묵지를 이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친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후계자들이 많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부터 겪은 아버지와의 갈등은 가업승계를 하는 과정에 긴장감을 고취시키고 극단적인 경우 앞서 소개한 사례와 같이 조직의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 분쟁의 불씨를 남기다
중소기업 창업자인 박 모 회장은 2남 1녀를 두었지만 70세가 다 되도록 회사를 맡겠다는 자녀가 없어 고민을 해 왔다. 그러던 중 박 회장의 건강이 나빠지자 자녀들이 함께 가족회의를 열어 회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했다. 오랜 논의 끝에, 자녀들은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일군 기업을 가족들이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오랫동안 가족같이 일해 온 직원들에 대한 책임도 의사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동생들은 장남이 회사를 맡는다면 자신들은 회사에 관여하지도 않고, 지분도 요구하지 않겠다며 장남에게 회사를 전적으로 맡아 달라고 했다. 동생들의 권유로 대기업에서 중견간부로 일하던 장남은 곧 사표를 내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아버지도 자신이 자식들을 잘 키웠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박 사장이 취임 후 몇 년이 지나 아버지는 아무 걱정 없이 눈을 감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망하고 상속세가 나오면서 가족 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박 사장의 개인 재산은 회사를 다니면서 장만한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기 때문에 상속세를 낼 자금이 없었다. 몇 년 전 가족회의를 할 때 상속세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회사를 매각하지 않는 한 상속세를 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아버지가 살던 집과 개인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해 상속세를 납부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됐다.

가족 간 서로 분명하게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동생들은 암묵적으로 회사 지분은 장남이 모두 상속받고 부친의 개인 재산은 당연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박 사장의 입장은 달랐다. 상속세를 내려면 회사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데 비상장 기업은 매매도 안 되고, 가능하더라도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내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녀들과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상속세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동생들도 장남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돈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고 동생들의 배우자까지 가세해 급기야 유류분 소송으로 이어졌다. 결국 형이 빚을 내어 동생들에게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이 일로 인해 형제간의 관계는 깨지고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에게도 잘못은 없다. 굳이 잘못을 꼽는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사전에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통계 자료에 따르면, 상속 관련 소송이 20~30%씩 늘어나고 유류분 관련 소송이 2002년 69건에서 2012년 588건으로 늘어났다. 1970~1980년대 창업한 수많은 기업들이 이제 세대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어 상속 분쟁은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는 재벌가의 상속 분쟁은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가족 분쟁이 일어나면 기업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명적이다.

꼭 가족 분쟁이 아니라도 극단적인 경우 상속세 문제로 문들 닫는 기업도 있다. 수년 전 창업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문을 닫은 쓰리세븐과 1000억 원대의 상속세 때문에 기업을 매각한 농우바이오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다.

한 중소 제조업체의 한 모 회장은 삼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두 아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회사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닦아 놓은 후 한 회장은 사망을 했고, 회사의 지분은 세 명의 형제에게 3분의 1씩 공평하게 나뉘었다.

변화는 생존의 조건이다
한 회장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던 막내 동생이 회사를 그만두고 기업에 들어와 형들과 함께 회사를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형들도 동생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동생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외부인의 관점에서 회사의 운영 시스템 등 전반적인 것을 검토했다. 그리고 형들에게 생산이나 마케팅, 관리 방식 등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형들은 동생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제안도 거절했다.

그들은 동생이 변화를 요구하거나 새로운 제안할 때면 항상 “우리가 너보다 회사 일을 속속들이 더 잘 알고 있다”라든가 “너는 아직 경험이 짧고 우리 회사의 일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야”라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불행하게도 두 형제는 10여 년 이상을 부친과 일하며 늘 들어 왔던 대로 고객에게 신뢰를 잃지 않도록 성실하게 일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여러 차례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형들과 갈등을 빚었던 막내 동생은 가족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이전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형제는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방식대로 회사를 경영했다. 그러나 동생이 떠나고 몇 년 후부터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회사는 큰 어려움을 겪었고, 설상가상 경쟁 업체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거래처도 몇 개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며 적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연이어 주요 거래처가 구매처를 해외로 옳기며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고 급기야 회사는 지급불능 상태가 됐다. 회사가 이 상태에 이르자 동생과 임직원들은 그간 안일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형들의 언행을 지적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결국 이전의 성공 방식에 익숙해 변화를 거부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된 셈이다.

창업자가 은퇴를 앞두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회사들은 대부분 창업 후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40년이 넘는 회사도 있다. 그런데 이 시기 창업자의 나이가 60~70대에 이르기 때문에 대부분 위험을 회피하고 변화보다는 안정에 더 무게를 두려는 성향이 강하다. 때로는 후계자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것조차 거부하기도 한다. 기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현재의 수준으로 잘 지켜 나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이 성장하지 않고 정체된 상태로 지속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분야에 있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변화와 혁신은 가장 중요한 이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창업자 자신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경영은 단지 바람으로 끝날 것이다.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