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한때 기업을 크게 성공시키며 매스컴에서 영웅적 찬사를 받던 창업자들이 갑자기 회사가 부도나거나 매각되는 등 기업 경영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전지전능 신드롬은 기업 패망의 길
1970~1980년대 화학섬유 산업에서 잘나가던 기업이 있었다. 이 기업은 1960년대 중반 화학섬유 및 직물류 분야로 출발해 급속히 사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1976년 기업을 공개하고, 1978년
‘수출 1억불 탑’을 수상하는 등 한때 직물 분야에서 선두를 달렸다.

이 기업의 창업자는 우리나라 화학섬유 시장을 선도했던 인물이다. 그가 시장을 선도했던 전략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생산 규모를 최대한으로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것이다. 이 회사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항상 최대 생산능력으로 가동했다. 예를 들어, 최대 생산능력이 100만 야드라면, 60만 야드 주문이 들어와도 단가를 낮추기 위해 100만 야드를 제조하고 40만 야드를 재고로 쌓아 놓았다.

당시는 공급자 독점시장이었기 때문에 제품을 아무리 만들어 놓아도 판매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이 회사는 신제품이 개발되면 쌓아 놓았던 재고를 가지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시장을 선도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오랜 세월 동안 재고가 아무리 쌓여도 재고는 자산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 갔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중국에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저가의 상품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상황이 급속도로 변해 갔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자는 대량 생산으로 원가를 낮추는 전략을 고수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으로까지 확장했다.

본격적으로 중국과 가격 경쟁이 시작되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재고는 점점 늘어났고 시간이 갈수록 운전 자금의 부족 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중국까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재고는 팔리지 않고 점점 누적돼 갔다.

재고는 더 이상 자산이 아니며 엄청난 비용으로 전환됐고 재무적으로 위기의 신호가 여러 군데서 나타났다. 임원들은 창업자를 찾아가 위기 상황을 보고했지만, 창업자는 “당신들이 몰라서 그래. 내가 그동안 해 왔던 게 항상 맞지 않았는가” 하며 지금까지의 경영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부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계열사까지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임원들은 모회사의 부실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자회사들까지 부실해질 것을 염려해 모회사의 청산을 제안했다. 하지만 창업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기업을 청산할 수 없다며 결정을 미루었다. 그러는 동안 유동성 부족이 더 심각해져 결국 이 회사는 1998년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러나 결국 2008년 2월 다른 기업에 헐값에 매각됐다. 창업하고 43여 년이 지난 후였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마라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실패는 이전의 성공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들이 자신들이 이룬 성공에 취해 회사를 더 빠르게 확장시키려고 하지만 자금경색으로 실패하는 현상을 ‘전능(全能) 신드롬(Omnipotence Syndrome)’이라고 한다.

자기가 이루어 놓은 성공에 도취돼 어떤 사업에 손을 대도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재무적 한계를 넘어 무분별하게 투자를 해서 실패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창업자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규모로 비즈니스가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위임하지 못해 실패하는 현상을 ‘전지(全知) 신드롬(Omniscience Syndrome)’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너 경영자가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황제경영’이라고 부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전지전능 신드롬이 바탕에 깔려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적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과거 경험을 과신해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하는 것을 ‘휴브리스(Hubirs)’로 규정했다. 쉽게 말해 휴브리스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능력만을 절대적 진리라고 믿고,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야 어떻든지, 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든 상관없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일을 밀어 붙이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성공했다가 망한 기업을 연구한 시드니 핑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의 법칙>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회사들이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실패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실패를 부르는 경영자의 7가지 습관’ 중 거의 모두가 ‘휴브리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전지전능 신드롬은 기업 패망의 길
경청도 리더의 능력이다

만약 창업자가 성공했던 과거의 신화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회사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세대교체 시기까지 이러한 관점이 이어진다면 이는 후계자인 자녀와 관리자, 직원들까지 힘들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아주 일부 기업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초한지>는 진나라 말기 초나라의 왕 항우와 한나라의 왕 유방 간 전쟁의 역사가 실려 있는 역사 소설이다. 초나라의 항우는 명문가 후예로 모든 이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던 호걸이었다. 그는 집안도 좋고 힘도 세고, 카리스마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수천 명의 병사로 수십만의 적들을 격퇴하는 등 100번 싸우면 99번을 이길 정도로 엄청난 용병술도 발휘했다.

이에 맞선 한나라의 유방은 항우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보잘것없는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성격도 안 좋고 비열한 사람이었다. 배경적으로 보면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중국을 통일할 인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전쟁 끝에 중국을 통일한 사람은 한나라의 유방이었다. 농사꾼의 자식, 시골 건달 출신 유방이 초나라 명가의 후예인 항우를 누르고 천하의 주인이 된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물론 그 이유를 한두 가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두 사람 간 확실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리더십의 차이다.

항우의 진영에는 범증이라는 책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훌륭한 전략들은 항우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우는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전쟁영웅으로 전쟁에서는 자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길 때마다 부하에게 “하여(何如)” 즉, “어떠한가”를 외쳤다. 이는 “내 결정이 어떠한가”, “내 의견이 어떠한가”를 묻는 것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하라’는 뜻이며, 내 생각을 따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만큼 항우는 독선적이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항상 “하여(何如)”를 외치는 항우 앞에서 참모들은 기탄없이 의견을 내놓기 어려웠다. 그가 아부(亞父, 아버지에 버금가는 존재)라고 불렀던 범증마저 결정적인 순간에는 말을 목구멍 깊이 삼켜야 했다.

하지만 학문도 부족하고 전쟁에서도 서툴렀던 유방은 곤경에 처하거나 결단의 순간이 오면 참모들을 불러 모아놓고 늘 “여하 (如何)”, 즉 “어떻게 하지” 하고 의견을 묻곤 했다. 이는 내 의견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재주가 있었다. 바로 경청이다. 그는 자신의 권위나 자존심 같은 것은 내려놓고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그 말이 맞으면 포상을 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전쟁에 패하고 돌아와 직언을 했던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포상을 했다. “여하”를 호소하는 유방 앞에서 참모들은 격의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냈다. 그러면 조용히 경청하던 유방은 그중 가장 좋은 의견을 채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참모들에게 끊임없이 “여하”를 구했다.

한나라와 초나라의 오랜 전쟁에서 싸움은 초나라의 항우가 계속 이기고 있었지만, 병사들의 숫자는 한나라가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한나라의 유방이 지휘관들의 말을 듣고 초나라를 선제공격하며 한순간에 중국이 통일됐다. 오랜 전쟁이 단 한 번의 전투로 상황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단 한 번의 승리로 천하를 얻은 유방, 단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은 항우.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영웅의 활약상은 결국 항우와 유방의 리더십의 충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항우는 통제적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유방은 멀리 보는 안목과 아랫사람과 지혜를 나누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전쟁의 승패는 포용력의 차이가 지도력의 차이로 이어진 결과다.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을 믿어 주고 의견을 존중해 주면 유능한 인재가 모이기 마련이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겸허히 수용해야 실수를 줄이고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창업자에게 필요한 두 가지 능력
경영자의 리더십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가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회사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이므로 이 시기는 독재형 리더십이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해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권한을 위임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참여형 리더십이 더 효과적이다. 참여형 리더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생각해 보지만 리더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회사는 창업자의 그릇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 어떤 회사도 경영자의 그릇 이상 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무엇일까? 그것은 창업자가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의 성장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 그리고 관리자를 육성하고 위임하는 능력일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한다면 경청의 능력이 아닐까?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7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부회장으로 처음 출근하던 날 한 장의 휘호를 써 주었다. 바로 ‘경청(傾聽)’이었다. 대기업의 총수는 항상 귀를 열어 두고 남의 말을 잘 듣기만 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듣기로 유명했다. 그것도 모자라 빽빽하게 메모까지 해 가며 숙고한 후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기업인이었다. 이건희 회장 역시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조직의 리더로서 꼭 필요한 태도로 ‘경청’을 대물림했다고 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가 바로 ‘경청’하고 “여하”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지전능 신드롬, 즉 경영자의 휴브리스를 줄이는 처방전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기업을 창업해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성공 요인은 창업자의 능력이다. 창업자의 능력을 얘기하면 일반적으로 직접 성과를 만들어내는 실행능력을 생각한다. 실제 실행능력은 기업의 성공에 있어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와 동일하게 중요한 능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관리자를 양성하고 일을 위임하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단, 기업이 라이프사이클의 단계에 따라 이 두 가지 능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위 그래프의 위쪽에 있는 직선은 창업자에게 필요한 실행능력 곡선이다. 그리고 아래쪽 직선은 위임능력을 나타낸다.
전지전능 신드롬은 기업 패망의 길
생존기에는 창업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므로 위임능력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기에 이르면 창업자는 현업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즉, 실행능력은 점차적으로 줄이고 위임능력을 늘려 가야 한다. 그리고 도약기에 이르면 기업 규모가 창업자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실행능력을 더 많이 줄이는 만큼 위임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성숙기가 되면 이미 기업 내부의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하고 더 이상 창업자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혁신적인 기업이 돼야 한다. 특히,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의 창업자라면, 자신이 없어도 기업이 잘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후계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글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