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인기리에 방영된 막장드라마마다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바로, 출생의 비밀과 불륜, 그리고 상속분쟁이다. 사람들은 으레 “저게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오히려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 잔혹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올해 역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상속·증여 관련 사건들을 따라가 보자.
2017년 뜨겁게 달군 상속·증여 사건은
2017년 올 한 해는 유독 연예계에서 상속 관련 사건들이 큰 화제를 모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가수 고(故) 김광석의 사후저작권을 둘러싼 김광석의 본가와 아내 사이의 오랜 분쟁이 올해 8월 영화 <김광석> 개봉과 함께 다시 재조명 받게 된 일이다.

1996년 1월에 사망한 가객 김광석은 생전에 <다시 부르기Ⅰ>, <다시 부르기Ⅱ>, <김광석 3번째 노래 모음>, <김광석 네 번째> 등 4개 음반을 그의 부친 이름으로 음반사와 계약하고 음반을 제작했다. 김광석이 사망한 후 미망인과 딸은 김광석의 부친을 상대로 로열티청구권확인 청구소송을 진행해 부친이 사망하면 그 권리를 양도 받고, 향후 제작될 김광석의 노래와 관련한 모든 음반의 계약은 부친과 미망인 측이 합의해 체결하기로 했다.

문제는 김광석의 부친이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증을 통해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를 김광석의 모친과 형에게 증여한 것이다. 이후 미망인이 원고 측의 동의를 받지 않고 3개의 음반을 제작, 판매했는데 모친 등이 이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전으로 번졌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주기동)는 지난 2008년 6월 “앞으로 제작될 음반저작권은 김광석의 아내와 딸에게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부친이 사망하면 그 권리를 양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저작권을 증여하기로 유증을 했다고 해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한동안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져 갔던 이 사건은 지난 8월 30일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개봉한 후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영화를 통해 김광석이 아내 서해순에 의해 타살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김광석의 외동딸 서연 양이 10년 전에 사망한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면서 다시 한 번 김광석의 죽음과 사후저작권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1월 10일 미망인 서 씨가 받고 있는 유기치사·소송사기 혐의에 대해 “범죄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해당 의혹에 대한 양측 간의 분쟁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모양새다.

또한 올해 8월에는 배우 송선미의 남편 고 모 씨와 그의 고종사촌 곽 모 씨가 680억 원대 조부 재산 상속을 두고 소송을 벌이다가, 결국 곽 씨의 청부살인으로 고 씨가 대낮에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돈 때문에 혈육 간 폭행과 살인 등 패륜적인 일들이 막장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미 빈번히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롯데·CJ·하림 그리고 홍종학
연예계의 상속 관련 사건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역시 이 분야 ‘센터’는 올해도 대기업과 정치권이 차지했다. 상속 사건이 화제를 모으며, 일반 대중에게 생소했던 관련 제도들이 회자되기도 했다.
롯데 일가의 상속분쟁과 함께 조명된 ‘성견후견제도’가 대표적이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종래 무능력자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정법원이 후견인과 후견의 범위를 정하고 감독사무를 담당한다.

또한 후견인이 재산 관리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거주 이전 등 신상에 관한 결정권 행사도 가능하며, 본인들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잔존 능력을 활용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상화의 원칙 등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성년후견제는 다시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으로 나눌 수 있다.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신청하게 되며, 치매 판정을 받았거나 신체에 일정 장애가 있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할 때는 한정후견, 재산 관리나 회사 경영 등 특정 사무에 한해 후견이 필요한 경우 특정후견, 계약에 의해 후견이 성립되는 경우를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지난해 8월 법원은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성년후견’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지만 ‘한정후견’은 필요하다고 보고 한정후견을 개시, ‘사단법인 선’을 신 총괄회장의 후견인으로 선정했다. 올해 6월 대법원에서도 지난해 8월 서울가정법원이 지정한 사단법인 선을 신 총괄회장의 한정후견인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런 흐름 속에 최근 법원이 신 총괄회장 한정후견인이 신 총괄회장 주주권을 대리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또다시 해당 제도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서울가정법원(가자20단독, 김성우 부장판사)은 지난 10월 30일 “사건본인(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재산과 신상에 관한 적정한 의사결정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인 사실 등과 신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에서는 주주권 행사에 대해 명시적으로 정한 것이 없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법원은 “신 총괄회장이 주주권 등 중요 재산권을 적정하게 행사할 수 없는 정신적 상태에 있는 점, 주주권 행사에 청구인이 관여하게 된다 하더라도 경영권 분쟁 중인 친족들과 달리 신 총괄회장 의사를 가장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사람에게 대리하게 하는 것인 점 등을 종합해보면 주주권에 관한 동의권과 대리권을 행사하게 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후견인)이 주주권 등을 행사하다 신 총괄회장이나 회사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권한 행사 전에 법원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조건을 달았다.

해당 판례에 대해 민경서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 1세대 창업주들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한정후견 등 성년후견제도가 제대로 활용되려면 후견인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주주권 행사의 경우,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법원의 허가를 받아 후견인이 관련 행위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법체계를 정비하고, 법원의 후견인에 대한 감독 범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오너가를 상대로 한 수천억 원대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한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 반환청구소송이 12월 21일 재판부(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 이 모(53) 씨가 배다른 형제인 이재현(57) 회장 등 CJ그룹 삼남매와 이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84) 고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이 씨 측은 이재현 회장 등을 상대로 한 유류분을 2300억 원으로 특정했다. 이 회장의 재산 중 2조5000억 원은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이의 11분의 1인 2300억 원을 유류분으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 씨 측이 소송을 제기하며 2억100원을 청구액으로 정했는데 이후 법원에 청구취지 변경서를 제출하지 않아 자체적으로 유류분을 2300억 원으로 특정했다고 하더라도 청구액은 2억100원으로 유지될 수 있다.

편법 증여 논란에 대기업 오너가 공개 기자회견을 하는 등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 기업인 하림그룹은 지난 7월 편법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으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직권조사를 받은 바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2012년 아들 김준영 씨에게 비상장 계열사 올품 지분을 물려줘 10조 원 규모의 하림그룹 지배력을 확보하도록 했는데, 올품과 한국썸벧 매출이 아들 김 씨에게 증여되고 나서 5배가량 상승했다. 또 이 과정에서 아들이 낸 증여세는 100억여 원에 불과했다는 점이 논란이 됐었다.

정치권에서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이른바 ‘쪼개기’증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앞서 홍 장관은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장모(丈母) 소유 아파트, 상가, 건물 등을 본인 부부(夫婦)와 중학생 딸의 이름으로 각각 지분을 나눠 증여받았다.

문제는 미성년자인 홍 장관의 딸이 외할머니로부터 거액의 부동산을 물려받은 데 이어 그에 따른 증여세도 어머니의 도움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야권에서는 홍 장관의 중학생 장녀가 초등학생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8억6000만 원대 건물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증여세를 내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빌렸다는 2억2000만 원의 타당성에 대해 강도 높게 지적해 왔다.

무엇보다 과거 재벌 저격수를 자처하며 부의 세습을 견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관련 주장들을 펼쳤던 홍 장관이 정작 본인 가족의 부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여권에서는 “자녀와 배우자 간 사적 채무 관계는 증여세 납부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라며 ‘편법’이 아닌 ‘절세’의 방안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신의 소유 주식 90%(당시 평가액 180억 원)를 선의로 모교에 기부했다가 기부액보다 많은 증여세(225억 원, 연체 가산세 포함) 폭탄을 맞아 논란을 일으켰던 황필상 수원 교차로 대표의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는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과세의 부당성을 인정받은 일도 올해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그간 한국에서는 공익법인제도가 재벌들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및 재산 세습에 악용되고 있다고 봐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기부는 5%(성실공익법인 10%)까지 비과세를 허용해 왔다. 하지만 5%룰은 당초 법 취지와 달리 선의에 의한 주식 기부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황 전 대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도 공익법인에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출연할 경우 지분 5%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는 비과세 기준을 최대 2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개정안’에 공익법인 주식 보유 한도 개정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담았다. 황 전 대표처럼 선한 의도로 기부를 했다가 엄청난 증여세를 물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고, 상속·증여세 감면 폭을 넓혀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기부를 장려하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황 전 대표의 ‘기부금 세금 폭탄’ 사건을 맡아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소순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개인의 기부를 장려하고 기부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이정표가 되는 사건이었다”며 “다만, 대기업 출연 재단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묻혀 주식의 출연 한도를 높이는 선에서 세법개정안을 제출한 것은 아쉽다. 기부 세제에 대한 좀 더 정교하고 체계적인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