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독립서점, 동네로 돌아오다
‘별별’ 동네 책방 기행 ❺[한경 머니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동네 서점이 돌아오고 있다. 1980년대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의 등장 이래 서점의 폭발적 증가는 한 세대만이고, 서점 숫자가 늘어난 것은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 밀려서 줄어들기 시작한 지 스무 해 만이다. 그동안 사라진 서점들과 새로 등장한 서점들은 다르다.

참고서와 문제집이 가지런한 학교 앞 서점은 아니다. 좁은 공간에 사람 지날 틈도 없이 책을 쌓아둔 익숙한 서점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 서점들은 갈수록 밀려나고 있다. ‘북 스페이스(book space)’라고 부르고 싶은 기분도 든다. 새로운 동네 서점들은 ‘책의 진열과 판매’에 중점을 둔 서점이 아니라 독특한 공간 연출과 다양한 큐레이션을 배경 삼아 책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전개하는 서점이다.

여유 공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책꽂이를 세우고 최대한 다양한 책을 1만 종 이상 보유한 기존 동네 서점과 달리, 이 서점들은 철저하게 독자 취향에 맞춤한 책만 골라서 1000종 정도 가져다 놓은 곳이 많다. 넉넉한 형편의 일부 서점을 제외하면 많아야 3000종을 넘지 않는다. 다양함으로는 어차피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서점을 이길 수 없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책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즐기도록 운영하고, 사인회, 낭송회, 독서회 등 책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음악회, 전시회 등도 수시로 개최하며, 지역 사람들이 직접 만든 책이나 잡지, 음반이나 소품 등도 진열해 판매한다. 기존 동네 서점과 구분해서 이들을 ‘독립서점’이라고 부른다.

‘독립서점’이라면 무엇으로부터 독립일까. 첫째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이들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 서점이나 다른 분야의 문화 자본과 연결돼 있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소규모로 창업한 것이다. 창업 이유 역시 ‘수익 창출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책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어서’ 등인 경우가 많다.

둘째는 ‘베스트셀러로부터의 독립’이다. 한꺼번에 많은 책을 들여놓은 후 집중 진열을 통해 빠르게 팔아치움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베스트셀러 중심의 균질적 서점 질서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이다. 사실, 출판은 본디 소수미디어이기 때문에 많은 책들은 독자의 특정한 취향과 연결돼 판매가 한정돼 있다. 운영상의 이유로 베스트셀러 판매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대형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철저하게 자기 독자 취향에 맞추어 책들을 선별하고 배치함으로써 다질성을 이룩하려 애쓴다. 서점마다 다른 책의 질서를 가진 소우주를 꿈꾸는 것이다.

2014년 11월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가 독립서점 활성화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독립서점의 도전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2011년 서울 홍대 앞에 땡스북스가 개점하면서 독립서점의 도전이 시작돼 청년문화가 살아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서서히 확산돼 갔다. 처음엔 독립출판물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이 많았지만, 개성 있는 책을 출판하는 소형 출판사 중심으로 일반 출판물 판매가 서서히 늘어났으며, 나중에는 중대형 출판사 책들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2015년 9월 1일 전국에 70군데 정도였던 독립서점은 2017년 7월 말 현재 257군데로 늘어났으며, 현재는 300곳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점들이 나타났다. 문학 전문 서점인 고요서사, 추리소설 전문 서점인 미스터리 유니온, 밤에만 영업하는 심야 책방인 밤의 서점, 책과 함께 맥주도 파는 서점 북바이북, 고양이 전문 서점인 슈뢰딩거, 시집 전문 서점인 위트앤시니컬 등 형태와 특성이 다른 독립서점의 목록이 서울에만 해도 끝이 없다. 열풍이 불면서 제주도에만 두 해 만에 무려 40여 곳이나 개점하는 등 나흘에 하나 꼴로 독립서점이 생겨나는 중이다. 물론 창업한 후 별달리 힘도 못 쓰고 폐점하는 곳도 늘어나는 등 거품이 부푸는 듯싶어 우려의 시선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독립서점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공세가 위세를 더하는 중인 미국에서도 독립서점의 숫자와 매출이 동시에 늘어나는 중이다. 2009년 1651곳이었던 미국의 독립서점 숫자는 2016년에는 2311곳으로 40%나 증가했다. 2011년 대형 체인 서점 보더스가 파산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반스앤드노블은 지점을 축소하면서 버티는 중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이채로운 일이다. 같은 기간 미국 서점 체인의 숫자는 2009년 3만1126곳에서 2016년 2만4611곳으로 줄어들었다.

오런 테이처 미국서적상협회장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독립서점들은 컴퓨터 스크린을 넘어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찾았다. 이 독자들은 책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싶어 하며, 익명의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것보다 촉감을 통해 직접 책을 고르고 싶어 한다.” (이투데이 2016년 2월 25일, 독서는 어쩌면 혁명적 커뮤니케이션)

종이책은 단지 읽을거리만은 아니다. 종이책에는 저마다 고유한 물성이 있다. 피와 살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아날로그 공간에서 직접 책을 만지고 뒤적거릴 때 책의 참다운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책에 관한 한 ‘비트의 법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음반의 경우에도 최근에 LP 판매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어크로스, 2017년)을 참고하라. 독자들에게는 책을 직접 겪을 수 있고 ‘싱크’를 맞출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절실하다.

한편, 독립서점은 책을 매개로 한 여러 모임과 활동 등을 통해 ‘책의 사용성’을 확장한다. 사실, 책의 판매는 서점 운영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책이 주는 행복한 만남’이 서점의 진짜 존재 이유다. 독립서점 운영에는 ‘장소의 인접성’이나 ‘거래의 편의성’을 뛰어넘어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치 제시’나 ‘친밀성 확보’가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 충북 충주의 대표적인 지역 서점인 ‘책이 있는 글터’의 이연호 사장은 ‘서점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서점이 완결된 텍스트의 전달이 아니라 책의 향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난 것이다.” 서점에 책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독자가 만들어지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 책의 판매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집이나 학교나 직장에 있다가 책이 필요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에 가서 물어본 후 책을 구매했다. 이러한 세상에선 서점의 입지조건이 중요하다.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 책을 채워 두면, 거의 자동으로 독자가 생겨나고 필요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초연결사회는 정보의 비대칭 상태를 해소한다. 검색이나 추천을 통해 서점보다 독자가 책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일도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책, 책과 책을 잇는 새로운 연결을 상상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제안할 줄 아는 능력이 무엇보다 서점 쪽에 요구된다. 서점의 운영이 친밀성의 원리, 즉 얼마나 밀도 높은 관계로 서점과 독자가 연결됐느냐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책 판매는 물론이고 모임 운영도, 강연 참여도, 숙박도, 상담도 모두 이러한 친밀성의 결과일 뿐이다.

독립서점의 경쟁력은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서점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을 때, 독자들은 서점을 사랑하게 된다. 신문이나 잡지와 마찬가지로 책도 정보의 사회화 또는 민주화를 촉진한다. ‘즉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온라인 미디어와 달리, ‘슬로 미디어’로서 책은 충분한 숙고를 통해 공동의 사회적 관심사와 문제에 집중한다.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공공화하고, 순간의 문제를 영원의 지혜로 승화하는 것이 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동네 서점은 독자 공동체를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책의 본질적 기능을 지역사회로 실어 나른다.

존스홉킨스대의 아자르 나피시는 주장한다. “지역공동체에 있는 서점의 존재가 공동체를 창조”하며, 서점은 “자신들을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대화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 세계적으로 독립서점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전통이 얕지만, 서서히 지역사회와 결합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독립서점들도 늘어나는 중이다.

책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책의 인간들’은 도무지 지지 않는다. 더 다양하고 색다른 독립서점들이 나타나 흥망을 거듭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SPECIAL 독립서점, 동네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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