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민경서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르듯 증여 전후로 자식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심지어 증여를 받은 뒤 토사구팽의 태도를 보이는 불효자를 막을 안전장치는 없을까.
‘효도계약서’를 아시나요?
Question
자녀들이 성년이 되면 자립적으로 살길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자녀들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성급하게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가 자녀들이 불효하는 바람에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이른바 ‘효도계약서’를 내걸라고 권유하더군요. 과연 실효성이 있는 건가요.

Solution
최근 은퇴 생활자들 사이에 “자식에게 재산을 한 푼도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무서워서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하는데, 요즘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어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습니다. 질의하신 효도계약서는 민법상 조건부증여를 차용한 부모와 자식 간 계약입니다.

민법은 증여계약의 무상성을 고려해 증여계약에 특수한 해제 사유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자녀가 재산을 물려받은 뒤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경우와 관련해 민법 제556조에서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때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모가 아들로부터 ‘본 건 증여를 받은 부담으로 부모님과 함께 동거하며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다.

아들은 위 부담 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한 부모님의 계약 해제 기타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즉시 원상회복 의무를 이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은 후 2층 주택과 대지를 증여했으나, 아들이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지 않은 관계로 각서에 따라 아들에 대해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를 제기한 사건이 있었으며, 10여 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은 아들에게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원상회복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이 사건 증여계약은 피고가 부모인 원고 부부를 충실히 부양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부담부증여에 해당한다. 피고는 이와 같이 ‘충실히 부양’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원고는 이를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원고인 부모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증여 당시에 ‘부모를 잘 모시겠다’는 각서를 받아 두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효도계약서의 양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으나,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부양 의무의 정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자녀가 부양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증여한 재산을 모두 반환한다는 내용을 포함해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효도계약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경우 소송으로 다투어야 하는 관계로 실제로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심리적 고통이 따를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재산을 물려받은 뒤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부모를 상대로 패륜범죄를 저질러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경우 이미 증여가 끝난 재산에 대해서도 해제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일명 ‘불효자 방지법’과 같은 입법적 조치도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