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한경 머니 기고=이석원 여행전문기자] 뜨거운 정열이 숨 쉬는 스페인의 가장 남쪽, 지중해를 품에 안고 아프리카 대륙을 바라보는 그곳. 2월에도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사랑하는 말라가(Malaga)에서 유년 시절의 피카소를 만났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히브랄파로 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말라가. 말라가 항구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다. 모두 10개의 선착장에 거대한 크루즈들이 드나든다. 히브랄파로에 서면 말라가 투우장의 안쪽까지 훤히 보인다.]

길거리는 한산하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다. 그렇게 바빠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남국의 여유로움일까? 마침 대형 택시에서 내리는 한 무더기의 관광객들. 한눈에도 유럽의 북쪽 사람들이다. 이들도 따뜻한 2월의 태양을 따라 왔을 것이다.

산 야신토 거리를 지나 에스페란자 다리를 건너 알라메다 대로로 나온다. 여기저기 도로 공사로 다소 산만한 길을 걸으니 작은 광장이 나온다. 따뜻하게 내리기 시작한 태양을 받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가 왠지 낯설지 않다.

이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의 공원을 뚫고 오른쪽으로 길을 바꾸니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인다. 금빛 널따란 모래 위에 연한 노란색의 예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말라구에타(Malagueta)’. 멀리 대형 크루즈가 하나 떠 있고, 그 앞으로 유영하던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뱃고동 소리에 놀라 일제히 비상한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 인증 샷 포인트. 1년 365일 중 320일을 찬란한 태양을 받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그래, 여기가 말라가다. 뜨거운 정열이 숨 쉬는 스페인의 가장 남쪽, 지중해를 품에 안고 아프리카 대륙을 바라보는 곳. 태양의 해변,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의 한복판. 2월에도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사랑하는 말라가의 태양의 해변이다.

코발트블루 빛으로 빛나는 지중해를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싶어져 히브랄파로 성(Castillo de Gibralfaro)에 오르기로 했다. 히브랄파로 성은 기원전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세웠던 요새 자리에 14세기 이슬람인들이 다시 요새를 지은 것이다.

해발 131m 높이의 요새는 나중에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그 남편인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에게 함락된다. 내려다보이는 말라가 해변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이사벨 여왕이 한동안 자신의 궁전으로 삼기도 했다.

히브랄파로 성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이슬람 요새 알카사바(Alcazaba)까지는 힘들이지 않고 왔는데, 이제부터는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작은 알함브라를 보는 듯 알카사바를 훑어보며 걷는 가파름이 고통스러운 것까지는 아니다. 아침 공기가 충분히 싱그럽다.

숲이 제법 울창하다 싶었는데 이내 오른쪽으로 시야가 넓게 열리는 듯하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보인다. 자그마한 전망대다. 하지만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거대하다. 결혼사진을 찍는지 멀리 말라가 항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아름다운 커플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화보다.

말라가 시청과 말라가 항구,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시설들이 눈을 행복하게 한다. 짙푸른 지중해의 섬세한 빛깔이 두 눈을 가득 채운다. 투우장을 거의 평면도로 구경하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말라가 구시가 한복판 말라가 대성당(Catedral de la Encarnación de Málaga)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 대성당은 말라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거의 500년 동안 지어지고 있는 이 성당은 아직도 지어지고 있다. 성당 안 피에타 조각 앞에는 유독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라가를 찾은 이유는, 그곳이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유년의 피카소를 찾고 싶었다. 2005년 프랑스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한 그림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1951년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이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철갑 투구를 쓴 군인들의 모습을 그린 가로 210cm, 세로 110cm의 그림.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떨어지지 못했다.

그 그림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총을 겨누고 있는 철갑 투구가 북한군인지 미군인지 알 수 없다.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피카소는 투철한 공산주의자였고, 이 그림이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전시가 금지된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카소는 미군을 그린 것일 가능성이 높다.

피카소의 유년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길에 먼저 만난 것은 말라가 대성당이다.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대성당은 1528년부터 200년 넘게 지어졌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 내부는 찬란하다. 피에타를 비롯한 조각들과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모든 회화 작품들 하나하나가 위대한 예술품들이다. 한참 넋을 놓고 대성당 내부에 있다 보면 어린 피카소에게 가려던 발걸음이 방향을 잃고 허우적댄다.

대성당에서 5분 정도 가다 보면 피카소 미술관(Museo Picasso Málaga)이 나타난다. 작은 골목 한쪽에 조용히 자리한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아들 베르나르와 며느리 크리스틴의 구상으로 2003년 개관했다. 주로 그들이 소장한 피카소의 작품들이 전시되는 가족 미술관이다.

그리 크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네모난 하늘이 열린 작은 회랑이 정겹다. 괜스레 피카소보다 이 회랑 한쪽 의자에 몸을 기대고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더 행복했다. 아니, 어쩌면 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랑해진 감성으로 만나는 피카소가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그 골목을 조금 더 걸으면 자그마한 성당이 나온다. 말라가에서 가장 오래된 산티아고 성당(Parroquia Santiago Apóstol Málaga)이다. 꼭 들르고 싶었다. 피카소가 생후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은 곳. 피카소의 부모, 그리고 다른 형제들도 모두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혔다. 애써 찾은 피카소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닫힌 기분이다. 그 성당 주위를 몇 번이나 헤맸다. 하지만 닫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다시 3분을 걸어 큰 길을 건너면 메르세드 광장(Plaza de la Merced)이다. 따스한 말라가의 태양이 내리쬐고, 광장은 분주한 듯 평온하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머무는 사람들은 표정의 차이가 없이 그저 여유롭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나 책 하나 들고 나와 벤치에 앉은 젊은 아가씨나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맡기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광장의 한쪽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파블로 피카소다. 아니 그의 실물 크기 동상이다.

태어난 집을 등 뒤에 놓고 하염없이 말라가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그는 위대한 천재 화가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화가도 아니다. 때로는 비둘기와 함께, 어떤 때는 동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그러다가 굳이 그를 찾아온 여행자와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끼기도 한다.

마치 유년의 시절 이 광장에서 뛰어놀던 피카소가 그렇게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듯.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는 미술 교사였다. 그 덕에 피카소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읽고 쓰는 것이 어려웠다. 붓만 들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을 보였지만, 보통의 배움은 부족했다. 그래서 피카소의 아버지는 그가 열네 살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켰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
네르하는 말라가에서 차로 40분 정도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코스타 델 솔의 한 부분이다.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는 절벽 위에는 찬란한 지중해의 태양을 받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스페인 왕 알폰소 12세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중해다”라고 말했다.]

◆ 피카소 생가와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메르세드 광장 15번지 피카소의 생가. 피카소는 이 건물 2층 한구석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피카소 생가 박물관(Museo Casa Natal de Picasso)으로 꾸며져 있다. 실제 피카소 가족이 살았던 2층은 생활공간 그대로 보존이 돼 있고, 3층과 4층은 피카소 유년 시절의 습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어린 시절 사용하던 붓과 팔레트, 데생을 연습하던 공책과 연필 등과 함께.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메르세드 광장을 지켜보는 자리에 있는 피카소 생가 박물관은, 사실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1층에 있는 기념품점에는 거리에 있는 기념품 가게보다도 적은 피카소 관련 소품들이 있고 비싸다.]

하지만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열 살 때 피카소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사인 때문이었을까? 유독 피카소만 애써 몸을 돌려 카메라를 응시한다.

아주 훗날, 피카소가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 됐을 때 파리 가르니에 앞에 있는 카페 드 라페에서 말라가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운 적이 있다. “겨울, 우울한 파리에 있으면 말라가의 태양이 그립다. 그 태양은 언제나 내 그림 속에 녹아 있는데,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파리나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만을 본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피카소 생가 앞 메르세드 광장 한 옆에 피카소의 동상이 앉아 있는 벤치가 있다. 말라가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이 동상 덕에 말라가 시민들은 피카소를 한결 더 친근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더 절실히 말라가가 그립다”며. 피카소가 그리워한 것은 말라가의 태양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말라가 해변으로 가는 길 알라메다 대로 18번지에 안티구아 카사 데 구아르디아(Antigua Casa de Guardia)라는 작은 선술집이 있다. 1840년 문을 연 이 술집은 피카소가 어른이 된 후 홀연히 나타나 말라가 전통 와인 몇 잔을 마시고 다시 홀연히 사라지는 곳이었다.
말라가에서 만난 어린 피카소
[피카소가 사랑한 말라가 전통 술집. 오래된 오크통 속 와인은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잔에 따라준다. 피카소가 선물을 받은 와인은 이 집의 베스트셀러다.]

말라가에 온 김에 들린 네르하(Nerja)는 ‘유럽의 발코니(Balcon de Europa)’로 유명하다. 지중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절벽 모양이 발코니 같고, 거기서 바라보는 코스타 델 솔이 너무 아름다워 스페인의 국왕 알폰소 12세가 1885년 ‘유럽의 발코니’라고 이름을 지었다.

1년 365일 중 320일이 태양으로 빛나는 곳 말라가. 유년의 피카소가 색채의 마술사가 되도록 감성을 심어준 곳. 북유럽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변. 그곳에 가면 스페인의 정열이 왜 그토록 태양만큼 뜨거운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