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존폐의 기로에 서고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를 거쳐 성장해 온 기업들이 ‘상속’이라는 높은 벽에 부딪쳐 경영권 승계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중견기업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온 전문가들은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기업 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SPECIAL] “기업 승계, 대물림 아닌 생존 문제로 봐야”
[(왼쪽부터) 송동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 김규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무(진행), 이종광 김앤장법률사무소 회계사]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통상적으로 쓰이는 중견기업의 개념은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의 범위를 벗어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인 대기업에 속하지 않는 기업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사전적 의미일 뿐 중견기업은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이면서, 국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성장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대다수 중견기업들은 성장 초기의 하청업체 수준에서 벗어나 독자적 사업모델과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며 한국 경제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경제력 집중화를 완화하는 역할도 도맡고 있다. 이처럼 중견기업은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위한 중심축이지만 중소기업 중심의 정책적 지원에서 배제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과거 산업화 시대를 거친 창업 1·2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줄줄이 물러나면서 승계 문제가 또 다른 화두로 떠올랐지만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에 한경 머니는 한국형 중견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부, 사회의 역할과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전문가 세 명의 의견을 직접 들어봤다.

김규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무(이하 김 전무) 최근 경제 동향을 살펴보면 가업승계나 명문장수기업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가 머쓱한 상황인 게 사실입니다. 공정경제부터 혁신 성장, 근무시간 단축 등 워낙 다양한 이슈가 산재해 있고, 4차 산업혁명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1년 가까이 논의에서 배제돼 왔죠. 이런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제2회 명문장수기업에 ‘미래엔’이 중견기업 최초로 포함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여러 회사가 선정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만큼 아쉬움도 큽니다. 이번에 마련된 좌담도 사회적 논의가 미진한 기업의 지속 성장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국내 장수기업 및 가업승계 현황을 짚어보고, 다른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국내 장수기업이 유독 적은 이유는 세제 측면에서의 애로점이 크지만 그 외 다른 문제점도 짚어보고자 합니다. 또한 장수기업들의 사회·경제적 역할과 지배구조 및 후계자 양성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위 ‘부의 대물림’이라는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우리 경제의 대기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장수기업들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국내 중견기업들의 경제적 가치를 어느 정도로 가늠해볼 수 있을까요.
[SPECIAL] “기업 승계, 대물림 아닌 생존 문제로 봐야”
◆ 국내 장수기업 현황과 애로점은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이하 김 소장)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70~1980년대에 산업화가 본격화됐죠. 당시 설립된 기업들 상당수가 승계를 앞두고 있고 세대교체를 준비 중이라는 점에서 해당 기업은 물론 사회적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 역사가 짧아 100년 이상 되는 기업은 찾아볼 수 없죠. 30년 전후의 기업들이 100년 이상 유지돼야 하는데 대부분 기업들이 승계 준비에 미흡한 상황입니다. 특히 세제 문제에 함몰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장수기업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30년 넘은 기업의 숫자는 전체 기업의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매출은 전체의 39%에 달하죠. 자산 역시 49%에 육박합니다. 장수기업들은 우리 사회에 굉장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특히 고용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수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죠.
이종광 김앤장법률사무소 회계사(이하 이 회계사) 사실 우리나라의 가업승계는 기업 오너의 경영권 유지, 즉 지분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일단 세율이 워낙 높은 상황에서 상법상 경영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세금 떼고 나면 경영권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해외의 경우 아예 세금이 없는 나라도 있는데 말이죠. 해외에서는 가업승계라고 하면 후계자에게 기업 시스템을 이해시키고 경영 능력을 키우는 일을 급선무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가업승계는 곧 세금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상속 과정에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을지 여부가 발등의 불인 거죠. 실제 현장에서도 기업 오너들 대부분은 세금 관련 애로사항을 가장 많이 토로하는 게 현실입니다.

김 전무 저희 중견기업연합회 차원의 조사에서도 상속·증여세 문제가 가업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도 가업승계공제제도를 마련했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송동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이하 송 변호사) 가업승계공제제도의 요건이 매우 까다로운 데다 범위도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제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그 요건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요건을 유지하려면 기업 자산이나 인력을 종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기업 경영이 매우 경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겠죠.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공제 요건을 유지하다 보면 자칫 성장과 변화를 멈춰야 하는 선택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가업승계제도의 악용이나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기업의 변화와 성장을 막는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셈이죠. 소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인데, 이런 주종이 바뀌는 문제는 반드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 소장 해외의 100년, 200년 이상 된 기업은 부단한 혁신을 통해 성장해 왔는데 국내 기업은 경영권 승계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죠. 경영권 승계 과정의 기업들 대부분은 성숙기나 쇠퇴기에 진입한 기업들인데 이들 대부분은 오히려 성장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100년 기업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업을 키우는 일이 되레 자녀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소유권과 경영권의 승계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경영권 이전의 전제인 소유권 이전부터 발목이 잡히는 셈이죠.
[SPECIAL] “기업 승계, 대물림 아닌 생존 문제로 봐야”
◆ 가업승계가 아닌 기업 승계로

김 전무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년 된 기업이 3200여 개에 달하고, 독일도 800개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100년 넘은 기업이 고작 8개 정도입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100년 이후 살아남을 기업이 몇이나 될지 걱정이 앞서네요. 세법상으로도 3대를 넘어가면 경영권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입니다. 가업승계 제도가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이네요.
이 회계사 사실 ‘가업승계’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승계 대상인 기업을 가업(家業)으로 정의해 세제 혜택을 주다 보니 모순이 생기는 거죠. 이를테면 우리가 일반적인 가업으로 보는 ‘유명 맛집’의 경우 특정 조건(맛)만 제대로 유지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동차 엔진이나 부품 업체 등과 같은 기업의 경우 변화와 혁신이 필수적이죠.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가 상용화되는데 기존 부품만 만들어서는 생존하기 어렵겠죠. 이런 상황에서 자산과 고용 수준 등을 기존대로 유지하라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죠. 기업가 입장에서 가업 중심의 세제 혜택에 허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승계 문제를 세금 문제로만 접근하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 등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제 혜택보다 상법상 차등의결권 등을 고려해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송 변호사 제도적 측면에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외국에는 어떤 승계 제도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입니다. 물론 세부적인 장단점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가업승계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합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들여와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비난 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결국 유명무실이 되거나 기존 제도처럼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업승계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답을 해야겠죠. 김 소장님 말씀처럼 기업의 성장 전략의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글과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처럼 단기간에 규모를 키운 기업도 있지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독일, 스위스의 강소기업들을 보면 여러 대를 거쳐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경우가 많습니다. 오랜 기간 기술과 경영 혁신이 이뤄진 결과죠. 국내 중소·중견기업들도 이런 기업들을 성장 모델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소위 재벌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일부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생긴 문제점입니다. 그만큼 재벌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진 거죠. 정부는 대기업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 및 비리 척결 관점에서 접근해 왔는데 경제력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죠. 결국 중견기업들이 지속 성장을 통해 기존 대기업들에 비견되는 세계적 기업들로 성장해서 기존 대기업들의 경제 내 비중이 줄어든다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의 경우 미국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 전체의 경제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죠.
김 소장 첨언을 하자면 국내 중견기업들이 승계 문제에 부딪쳐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는데, 결국 이런 기업들은 거대 자본과 기존 대기업들이 인수하게 됩니다. 중견기업들이 성장을 멈추게 되면 대기업의 경제 집중도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에 직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가족기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 전무 장수기업 육성 과정에서의 제도적 어려움을 얘기했는데, 국내에서 상속 문제는 가족기업 중심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국내 중견·중소기업 대부분이 가족기업인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오너경영의 효율성이 낮은 건지, 전문경영인 체제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이네요.
송 변호사 일반적으로 경영체제는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도 별도의 지배주주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구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유럽 등 일부 국가의 경우 지배주주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전문경영인과 역할 분담을 하는 체제가 사용되고 있죠. 만약 국내 경제가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한다면 오너-전문경영인을 양분하는 체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조합과 스펙트럼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김 소장 가족기업의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보편적으로 지배적인 지분을 가진 한 가문이거나 가족이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를 그렇게 부르죠. 가족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오너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가 직접 경영하는 게 성과 측면에서 더 우수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오너 일가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을 감독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지배주주가 있는 가족기업이 비가족 기업보다 높은 성과가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회계사 사실 전문경영인 체제의 경우 대리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거죠. 단기 성과주의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오너 경영의 경우 경영자의 능력이 부재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대기업들은 위기 대응 능력이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져 있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은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경우까지 있죠. 특히 대기업 하청업체의 경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독자적인 생존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자체적인 혁신 노력이 필요한데 창업주의 상당수는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겨를이 없죠. 무엇보다 소유권 이전 문제가 해결돼야 경영 효율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90% 기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하고 있는 거죠.
[SPECIAL] “기업 승계, 대물림 아닌 생존 문제로 봐야”
◆ 기업 후계자 양성은 어떻게
김 전무
후계자 양성 역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단기간에 경영권을 승계 받아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죠. 자녀를 비롯해 전문경영인 등 후계자의 경영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까요.
송 변호사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에게 가업을 물려줄 경우 기업의 성장도 그르칠 수 있고,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촉발시킬 수 있습니다. 가업승계의 전제조건으로는 우리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후계자, 즉 ‘저 사람 정도면 수긍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후계 수업은 필요한데 기업별로 그런 과정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부 미국 기업의 경우 오너 후계자의 양성과는 다르지만 전문경영인을 선발·양성하는 과정이 있는데 오랜 기간 차세대 후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경쟁체제 내에서 개개인을 관찰하고 성과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CEO 사관학교’라고도 불리는데 이런 프로그램도 참고할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국내 중견기업들의 경우 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견기업연합회 차원에서 기존 프로그램과 함께 더욱 체계적인 과정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김 소장 무엇보다 기업 후계자의 최우선 요건은 능력이지만 인품과 도덕성도 필수 덕목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일부 대기업의 ‘갑질 논란’과 같은 부정적 이슈에 휘말릴 수 있죠. 만약 잠재적 경영 능력이 엿보이는 자녀가 있다면 일찍부터 경영 수업에 돌입하는 게 좋습니다. 장기간의 교육 과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최소한 3~5년가량은 반드시 외부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가족기업이 갖는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이 생략되면 승계 이후 여러 내부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죠.

◆ 국내 가업승계 지원의 실효성은
김 전무 가업승계상속공제제도와 관련해 장수기업은 ‘동일 업종’을 전제로 합니다. 10년 동안 주 업종을 유지해야 하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 회계사 앞서 말씀드렸지만 ‘가업’을 전제로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가업이 아닌 기업 승계로 접근하면 사후관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가업 대신 중소·중견기업의 틀로 접근하면 굳이 업종을 묶어둘 필요가 없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국민들 대다수가 경영 승계를 가업이 아닌 기업 승계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가업에 집착해 법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한 업종만으로 100년 이상 기업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가업승계에 대한 근본적 개념 정리부터 필요하다고 봅니다.
송 변호사 공제제도의 사후관리 요건을 보면 지분 유지, 업종 유지, 고용 유지 등 세 가지를 10년으로 묶어 뒀는데 선택적 유지로 바꾸면 부작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해당 기업이 업종을 바꾸더라도 고용을 크게 늘리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지분율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영 과정에서 신규 투자 유치를 위해 경영권 일부를 담보로 내놔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오너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인데도 오히려 상속세 부담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후관리 요건을 완전히 폐지하기 어렵다면 기존 요건 세 가지를 병렬식으로 똑같이 지킬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부 요건을 지킨다면 다른 요건을 풀어주는 식으로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아울러 사후 요건들의 특성에 맞춰 3~5년 등 좀 더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부작용 해소 차원에서 바람직해 보입니다.
김 소장 사실 공제제도의 사전 요건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매출 3000억 원 이하 기업의 세제 혜택이 500억 원인데 3001억 원만 돼도 세제 혜택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현장에서 만난 경영자들은 기업의 성장 의욕을 꺾는다고 아우성이죠. 농우바이오 사례처럼 상속세 부담 때문에 아예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경영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실례로 락앤락이 6000억 원에 사모펀드에 팔린 바 있죠. 국내 중견기업들 사이에서는 중견기업 100년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소기업 100년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만약 락앤락이 매출 1조 원 규모로 커진다고 가정하면 결국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거죠.
송 변호사 매출 규모 등의 변경으로 전혀 세제 혜택을 못 받는 구조, 그리고 세제 혜택의 박탈 우려로 기업을 매각하는 일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기업 성장을 위한 치열한 고민만으로도 생존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데도 말이죠. 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독일의 경우 이런 상황을 대비해 점감식(점차적으로 감소) 요건을 두고 있습니다. 가령 매출한도 요건이 3000억 원인데 매출이 3000억 원에서 4000억 원으로 늘었다면 기존 매출 3000억 원 부분에 대한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도를 초과하는 1000억 원 부분에 대해서도 혜택을 부여하되, 그 범위를 조금씩 낮추는 방식이죠. 경영자들이 기업의 성장만 고민할 수 있도록 세제가 뒷받침해주는 구조인 셈입니다. 국내에도 이런 점감식 구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SPECIAL] “기업 승계, 대물림 아닌 생존 문제로 봐야”
◆ 명문장수기업 선정·지원 보완점 없나
김 전무 명문장수기업 선정 문제도 짚어볼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재벌기업과의 거래 비중이 10%를 넘어서면 선정 대상이 안 됩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제 구조상 영세 기업이 아닌 이상 해당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또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의 경우 부정적 여론이 있으면 아예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김 소장 명문장수기업 프로그램의 경우 애초 취지는 중견기업까지 상속세를 유예함으로써 장수기업으로의 성장 기반을 만들고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확산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혜택은 사라지고 까다로운 선정 기준만 남았습니다. 별다른 혜택도 없이 주어지는 상황인데, 취지가 변한 만큼 이제는 선정 기준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전무
제도적인 측면에서 많이 짚어주셨는데 명문장수기업이 더 나와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업승계가 부의 대물림의 인식을 개선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송 변호사 실제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낙인이 따라다니는데 논리적 반박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적 인식을 뛰어넘는 긍정적 이슈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해결 가능한 사례를 직접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도적인 부분은 외국의 좋은 제도를 들여오면 해결이 되지만 가업승계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사실 경제 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경제에서는 탄생하기 어려운 기업들이죠. 소수의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니 시장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당장 구체적인 해법을 말하기는 힘들지만 결국 국민 정서를 움직이는 ‘사회적 공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엄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다소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기존 비즈니스와 법 논리를 뛰어넘어야 오히려 활로가 열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정부의 부자감세안을 반대했던 전례가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 깊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 비즈니스와 법 논리로는 나올 수 없는 얘기였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 같은 실제 사례들, 그리고 어떤 기업이 가업승계를 한 뒤 헌신적 노력을 통해 기존 대기업 구도를 깨뜨렸다든지 중국 시장에서의 생존권을 보장받은 사례들이 나오면 가업승계에 대한 국민 정서가 크게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계사 가업승계를 부정적으로만 보면 ‘부의 대물림’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존속을 결정짓는 문제죠. 실제로도 기업가들을 만나면 부의 이전보다 경영권 승계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지금과 같은 국민 정서로는 상속세 인하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하지만 기업들이 공익법인을 늘리고 관련 사업을 활발하게 한다면 가업승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김 소장 말씀하신 대로 경영자와 그 직계가족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경영권 승계보다 현금화를 통한 부의 이전이 속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오너들이 경영권 이전을 바라는 이유는 기업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영속성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죠. 경영권 이전을 받는 가족 역시 기업을 키워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가겠다는 책임감이 작용하고 있는 거죠.
세계적으로 200년이 넘은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장수 비결을 창업자 시대부터 내려온 경영철학, 기업이념, 그리고 기업의 계승이라는 정신을 지켜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최소 30년 이상 된 기업들로 그 안에 좋은 철학과 정신이 담겨있는 기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잘 체계화해서 창업자의 철학과 신념을 지키며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을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물론 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명문가’로 인정받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노력해야 하겠죠. 따라서 공익법인 설립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희석시켜 나가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 전무 다양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폭넓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일부 중요한 문제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큰 틀에서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전환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가업승계 세제는 일제강점기 이후 만들어진 개념으로 기업 영속성이 화두인 현 시대 상황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중견기업의 경우 상속 문제에 함몰돼 있다 보니 실질적 경영 이전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죠. 하지만 이후 세대에서는 공익·공공성에 더욱 신경을 써야 국민적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오늘 좌담의 주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첨언을 하자면 재벌기업에의 경제력 집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견기업을 키워야 하는데 국민들 인식이 중견기업을 대기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 중견기업의 연 매출은 1000억~ 1500억 원 이상인데 유럽의 경우 6조 원(50억 유로) 이하를 ‘히든 챔피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 일찍 제도적으로 봉쇄되는 셈이죠. 국민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제도적 탄력성이 보강돼야 우리 경제가 50년, 100년 뒤에 건전한 피라미드형 경제구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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