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카세트테이프의 소환
[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가성비(價性比)’라는 말이 있죠. 최근에는 가성비에 마음 심(心) 자를 넣은 ‘가심비(價心比)’나 가격에 상관없이 자신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심비’가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개취(개인취향)나 취존(취향존중)이라는 줄임말도 이와 비슷한 배경을 두고 있을 겁니다.

이른바 ‘개취’는 세월 속에 사라진 굿즈(goods)를 소환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물건 말이죠.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 스타로드(피터 퀼)의 애장품으로 등장한 소니사의 ‘워크맨’이나 영화 <1987>에서 신입생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가 갖고 싶어 했던 삼성전자의 ‘마이마이’와 같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영화 소품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서 버젓이 ‘나심비’ 좋은 상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죠.

사실 카세트테이프만큼 ‘개취’가 묻어나는 굿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시간 맞춰 기다렸다가 녹음을 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엄선해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지인에게 선물로 전해주었던 기억이 있는 중년들에게는 추억 이상의 물건이기도 합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취향의 시대는 죽은 것도 살려낸다”고 말합니다. 다만 최근 아날로그 음반(LP)과 카세트테이프 등이 부활한 것을 단순히 복고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LP나 카세트테이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20대들이 LP나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한다는 것은 복고 열풍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욕망이자 취향의 심화일 수 있다는 지적인 거죠.

개인 취향의 진화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등을 주로 만들던 일본의 유명 브랜드 아이와(Aiwa)가 10년 만에 부활을 알린 것이나 명품 브랜드 구찌가 도쿄 나카메구로에 있는 카세트테이프 전문 숍 왈츠(Waltz)를 구찌 플레이스로 지정한 것은 취향 시대가 불러온 다소 낯선 풍경일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 할수록 개인의 취향은 비즈니스 키워드로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음원 서비스, 인터넷TV, 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웹툰 등에서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이용자가 선택한 콘텐츠나 관심 있게 보는 콘텐츠를 파악해 추천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죠. 대중의 선택 기준이 됐던 실시간 음원 차트나 베스트셀러 순위는 앞으로 그 의미가 퇴색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 취향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서비스가 더욱 대중화된다면 말이죠.

아이러니한 점은 남과 다르게 선택했던 ‘힙(hip)’했던 개인의 취향들이 점차 비주류에서 주류로 떠오르며, ‘핫(hot)’하게 주류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는 겁니다. 일부 개인의 취향일 뿐이었던 카세트테이프 듣기 취미가 최근 뜨겁게 소환된 것처럼 말이죠. 이제는 남과 다른 취향이 비주류로 외면받기보다는 우리의 생활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창조적 개성으로 인정을 받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취향 시대’가 열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