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숙 독립문 대표 “70년 국민 의류 자존심, 더 젊게 지킬 것”
[한경 머니=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독립문표 메리야스와 실켓 면 티셔츠를 국민 의류로 만들고, ‘코뿔소’가 상징인 PAT와 엘르골프, 데미안 등을 메가 브랜드로 키워냈다. 반세기가 넘도록 따뜻하고 편안하게 대중의 ‘의(衣)’를 책임져 온 패션 기업 독립문이 고희(古稀)를 넘기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독립문 100년 시대를 열어 갈 주역, 4세 경영인 김형숙 대표가 그리는 청사진을 들었다.

어떤 이는 획기적이라 했고, 혹자는 무리수라 했다. 김형숙 독립문 대표는 기업 탄생 71주년을 맞아 올해 초 평안 L&C에서 독립문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독립문은 이 회사가 창업 초기에 전개했던 ‘독립문표 메리야스’에서 가져온 것. 패션 브랜드라 하기에 다소 무거운 느낌이 있지만, 역사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안정감을 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주변에 보면 독립문을 기억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나뉘어요. 50대 이상은 독립문 메리야스를 기억하지만 점점 잊히는 것이 아쉬웠죠.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드러나는 CI(Corporate Identity)로 변경하게 됐습니다. 이제 더 열심히 뛸 일만 남았죠.”(웃음)

김 대표는 이번 CI 작업에서 태초 독립문의 창립 이념인 ‘누구나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조부이자 창업주인 월암 김항복 선생은 독립운동 중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적이 있었다. 오랜 식민 생활에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을 보며 누구나 따뜻하고 질 좋은 옷을 입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해방 이후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의류 사업을 시작했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바라보던 독립문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독립문 상표를 사용하게 됐다. 실제 독립문표 메리야스는 한국전쟁 직후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온기를 준 패션 아이템이었다.

“2018년 버전의 ‘누구나 정신’은 누구나 품질 좋은 의류를 입도록 하는 겁니다. 4대에 걸쳐 패션 기업을 운영하며 전 세계 어느 브랜드보다 좋은 소재와 품질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고 자부하죠. 과거처럼 춥고 헐벗은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편안한 옷을 입고 행복을 누리며 자신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구나 정신’, 71주년 독립문 있게 한 가치

1954년에 출원한 독립문은 국내 최장수 의류 브랜드다. 1953년 평안섬유공업사로 회사명을 바꾸고 1961년에는 법인으로 전환, 수출에 매진했다. 1971년에는 캐주얼 브랜드 ‘PAT’를 탄생시켰다. 2세 경영인 고(故) 김세훈 회장은 ‘코뿔소’를 심벌로 내세워 PAT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갔다. 이후 평안섬유는 캐주얼, 스포츠, 골프, 아동복, 유아복 등 토털 캐주얼 브랜드로 성장했다.

1985년 전국 주요 백화점에 입점했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유럽, 미국, 캐나다로 수출 길을 넓혔다. 2000년 3세 경영인으로 취임한 김형섭 대표는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2005년 이탈리아 본사로부터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Nepa)’를 인수해 2012년에는 4000억 원까지 덩치를 키우고 사모펀드 MBK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2013년 김형섭 부회장이 퇴임하면서 김형숙 대표와 전문경영인 조재훈 부회장이 함께 4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방송국 교양 PD로 일해 온 김 대표와 다국적기업 전문경영인 출신인 조 부회장은 부부이자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경영 파트너로 호흡이 잘 맞는다.

2015년 스포츠웨어 ‘엘르 스포츠(Elle Sport)’를 론칭했고 2016년에는 여성복 브랜드 ‘데미안’을 품에 안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재 독립문의 연 매출은 2000억 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70년 된 브랜드의 역사성은 이어가되, PAT를 조금 더 젊은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는 소비자와 함께 늙어 가는 경향이 있어요. 젊은 층을 꾸준히 유입해야 살아 있는 브랜드가 되죠. 중장년층이 입는 옷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304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리포지셔닝하면서 새로운 라인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PAT는 매 시즌 기획의 30%가 새 상품이고, 스테디셀러의 경우도 지속적인 변화를 주고 있어요.”

특히 젊은 층에 PAT 옷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스타일 체인지’ 프로모션은 패션업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사연을 공모한 뒤 추첨을 통해 스타일을 변신시켜준 것. 항암치료 중인 암 환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리시하게 꾸며주고, 임용 준비로 고생하는 공시생을 최고의 멋쟁이로 바꿔놓았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이 과정을 공개하자, 젊은 층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엄마가 입는 브랜드인 줄로만 알았던 PAT가 자신이 입었을 때도 멋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김 대표는 “젊은 층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니 기쁨이 두 배”라며 “PAT쇼핑몰을 론칭해 온라인에서도 새로운 고객과 만나고, 앞으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분 좋은 마케팅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숙 독립문 대표 “70년 국민 의류 자존심, 더 젊게 지킬 것”
◆장인정신으로 100년 기업 열어 나갈 것

독립문에 얼마 전 흥미로운 문의가 들어왔다. 한 고객이 2004년에 출시된 남성 재킷을 수선해달라고 요청한 것. 법정 품질보증 기한과 상관없이 무료로 제품 사후관리(AS)를 제공하다 보니 이렇게 10여 년이 지난 옷의 수선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김형숙 대표에게는 경영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저렴한 원단을 쓰지 않았던 아버지의 고집을 떠올리게 했던 에피소드였다. 좋은 품질과 더불어 ‘상생’은 고 김세훈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덕목이었다. 독립문은 대리점주들을 ‘파트너’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는 37년 이상을 함께 한 사람도 있다.

“아버님은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인자한 분이었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일례로 수원 대리점에 단골손님이 계신데, 멀어도 굳이 찾아오는 사연을 들어보았더니 열일곱 살 때 자장면 배달 소년이었던 자신에게 학교를 가라며 학비를 지원해준 사람이 저희 아버지였다고 했습니다. 이 소년은 열심히 공부해 훗날 사업가가 됐고 지금껏 PAT의 옷만 입고 있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협력업체의 대금 지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기다려주는 등 언제나 파트너들과의 상생에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경영을 하는 동안 법정관리와 같은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도움을 준 분들의 보답으로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김형숙 대표는 고희(古稀)를 넘긴 독립문의 수장으로, 100년 시대를 열어 나갈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 할아버지의 숭고한 이념과 아버지의 장인정신 위에 쌓아올릴 기업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한창이다.

당장 올 하반기의 큰 이슈는 상장에 대한 결정이다. 유휴자산 매각 및 브랜드의 비효율적인 매장을 정리해 수익성과 건전성 중심의 내실 경영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단기 중심의 차입 구조를 장기로 전환해 회사의 재무구조를 안정시키고 향후 패션종합기업으로 도약하는 비전을 바라보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취임 이후 분기별로 시이오 커뮤니케이션 세션을 열어 직원들과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그 밖에 탄력근무제를 비롯해 직원들을 위한 삼시세끼 제공과 피곤할 때 마사지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헬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기업일수록 직원은 물론 대리점, 거래처 등 파트너들과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등이기보다는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변함없는 가치를 실현하며 100년 뒤에도 존경 받는 기업으로 남아야죠. 그런 독립문, 제가 꼭 만들 겁니다.”(웃음)

김형숙 대표는…
1988~1990 미국 예일대 음대 석사
1991~1998 SBS 교양 PD
2013~2016 팰앤앨 상무 & 대표이사
현 독립문, 데미안 공동대표

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