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중년에게도 사랑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가족을 빼놓고 그 대전제를 논하긴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황혼이혼, 졸혼, 재혼이 단순히 ‘남 일’이 아닌 직시해야 할 현실이 된 상황에서 이 시대 중년들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야 할까.
김수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big story]“부부간 좋은 추억 감정통장에 저축해요”
과거 가수 이무송의 노래 ‘사는 게 뭔지’가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살짝살짝 어깨춤을 추게 하는 코러스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공감가는 가사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특히 이 대목이 그렇다. “사랑한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 하지/ 후회하는 거라고/ 하지만 사랑 않고/ 혼자서 살아간다면/ 더욱 후회한다고.” 곱씹어볼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어떤 모양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갈리겠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처럼 황망한 일도 없을 듯하다. 부부관계,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결혼하려고, 혹은 육아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단 사랑하기 위해 그것을 선택했다면 불행이 아닌 행복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살다 보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듯 결혼생활 역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요즘말로 ‘노오오오력’을 해도 녹록지가 않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과 노년을 대비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얻고자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2001년 국내 최초로 가정경영연구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가정경영을 주제로 컨설팅과 강연을 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특히 대기업 사장에서 이 일로 전환한 점도 범상치는 않아 보입니다.
“대교에서 20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죠. 회계·재무 분야 빼고는 두루두루 다 해본 것 같아요. 주인의식을 갖고 재밌게 일했어요. 딱히 그만두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어요. 다만,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고 연륜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찾게 된 키워드가 ‘가족’이었죠. 평소 제가 관심이 많았던 분야였고, 무엇보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997년 12월 대교에서 나와 이쪽 분야를 파기 시작했어요. 일단 3년간 해보고 추후에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고 했죠.

저한테도 새로운 도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파고드니 1년도 되지 않아 제 결심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만큼 적성에도 맞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후 2001년 가정경영연구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가정경영을 주제로 컨설팅과 강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일찍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제겐 참 감사한 일이에요.”

가정경영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어떤 개념인가요.
“현대사회에서는 기업 외에도 국가경영, 학교경영, 병원경영 등 어디든 경영 마인드가 필요한 세상이죠. 가족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요즘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결혼한다고 행복한 가정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도에 맞춰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기 위해선 가족구성원들도 경영 마인드가 필요해요. 기업이 비전을 제시하듯 우리 가정의 단기, 장기 모습도 그려볼 수 있고 연말에 회사에서 신년 계획을 짜듯이 우리 가족이 내년엔 어떻게 살까를 구상해볼 수도 있죠. 고객만족 측면에서 ‘아내가 만약 내 고객이라면’ 또는 ‘아이들이 내 고객이라면’ 등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이렇게만 마인드를 바꿔도 가정에 엄청난 변화가 옵니다.”
[big story]“부부간 좋은 추억 감정통장에 저축해요”
최근 이혼 가정이 늘고, 주변에 일명 돌싱들이 흔한 시대가 됐는데 이혼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제가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요즘은 판사, 조정위원들 대다수가 이혼을 무조건 막자는 기조는 아니에요. 이제 이혼은 거역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자 현실이거든요. 하지만 전 이혼을 권장하지는 않죠. 꼭 이혼을 해야 한다면 ‘후회 없는 이혼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후회 없는 이혼이란 어떤 건가요.
“누구나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이 없듯,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혼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문제예요. 가령, 이혼 때문에 법정을 찾는 분들 중 상당수가 마치 배우자를 망가뜨리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식으로 물불 안 가리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세요.

객관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면 충분히 합리적인 대안들이 있어 그것을 제시해도 막무가내죠. 실제로 무조건 이혼만 해주면 재산 분할도 필요 없다고 해 놓고 나중에 경제적 문제로 고심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아요.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후회 없는 이혼을 해야죠. 이혼한다고 세상 끝나는 거 아니잖아요. 이혼 이후의 삶도 행복할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마치 이혼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현실은 달라요. 이혼하면 부부관계는 해제되지만 둘 사이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건 아니에요. 자녀가 있는 가정은 더더욱 그렇죠. 어쨌든 자식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아이의 부모로서 상대가 불행해지면 대개 본인도 행복하기 힘들어요.

아이들에게 남겨지는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요. 굳이 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배우자의 폭력, 무책임한 양육 태도, 심각한 외도 등의 사유로 이혼하는 분들에겐 저희도 오히려 이혼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이혼은 정말 합리적으로 해야 해요.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렇다면 이혼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혼을 100% 예방하는 방법은 쉽죠. 결혼 안 하면 돼요.(웃음) 농담입니다. 그건 그저 불행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지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아니죠. 제일 중요한 건 본인에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거죠. 사람들은 결혼식 준비는 참 화려하게 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결혼생활’ 준비를 간과하더라고요.

결혼생활을 준비하는 첫 단추는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먼저 나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지를 명확히 알아야죠. 그래야 상대를 만나 대화를 할 때도 서로 깊숙이 알아갈 수 있어요. 결혼 전에 1년 정도 이상 교제 기간을 갖고 상대의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이혼을 막는 첫 단추죠.

두 번째는 결혼 후 갈등을 겪게 됐을 때 초기 대응을 잘 해야 돼요. 앞서 말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갈등의 시작은 사소한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결국 이혼까지 가죠. 그때마다 끊임없이 조율하고, 대화해야 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문가나 멘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어요.

간혹 이런 사안을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잖아요. 객관적이지 않은 솔루션으로 되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가 심각해지기 직전에 전문가나 은사의 상담을 통해 초기 대응을 잘 해야 합니다. 아울러 부부간 ‘감정계좌(emotional account)’를 꾸준히 저축해 두세요.”

감정계좌란 무엇인가요.
“감정계좌, 혹은 감정통장이라고 해요. 부부간 좋은 감정 혹은 경험들을 서로 많이 쌓아 두라는 말이죠. 사실 누구나 결혼생활을 하면 서로 달라서, 혹은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갈등은 불가피하죠. 서로에게 잘못할 때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부부간 감정계좌를 꾸준히 저축한 사람들은 그 리스크가 덜해요.

그만큼 서로에게 쌓은 정과 신뢰가 있기에 상대의 잘못도 용서하고 포용해줄 수 있는 거죠. 돈도 마찬가지잖아요. 계좌에 돈이 충분하면 사기를 당해도 회복력이 있지만 잔고가 없으면 정말 힘들게 되잖아요. 부부관계도 그래요. 아무리 상대에게 화가 나고 애정이 식어도 신뢰와 정이 감정계좌에 탄탄히 쌓이면 상대적으로 든든하게 버텨 나갈 수 있어요. 이게 부부 관계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부부는 항상 이 감정계좌에 열심히 저축해야 해요. 이 작업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부관계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면 결국 도산 즉, 헤어지게 되더라고요.”

이혼만큼 재혼율도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요.
“흔히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번 이혼하면 재혼은 좀 더 나을 것 같지만 오히려 재혼한 분들의 이혼율이 더 높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안 바뀌어서 그래요. 이혼의 책임은 다 전 배우자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고 본인의 문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상태에서 재혼하면 결국 또 이혼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더 나쁜 경우는 자꾸 재혼한 배우자를 전 배우자와 비교까지 한다는 거죠. 새로 만난 배우자의 좋은 점은 당연한 거고, 잘못된 점만 자꾸 전 배우자랑 비교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안 되죠. 거기에 자녀가 있는 분들끼리 만나면 상황이 더 복잡하죠. 초혼보다 재혼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재혼을 위해서는 어떤 단계들이 필요할까요.
“재혼할 때 제일 조심해야 할 건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종종 이혼의 상처를 급하게 벗어나려고 혹은 전 배우자에게 ‘너 없이도 이렇게 잘 산다’는 식으로 보여주려고 급하게 재혼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경우 재혼에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아요. 일단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하세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야 할지 계획도 모색하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상대를 만나셨을 때, 자녀가 있다면 자녀들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주세요. 함께 아이들과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재혼을 하셔도 절대 늦지 않으니까요. 특히,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분들에겐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가정경영을 잘하려면 어떤 역할들이 필요한가요.
“부부는 공동대표라고 보면 돼요. 사실 과거에는 집안의 장은 아버지라는 인식이 강했죠. 하지만 요즘은 그랬다간 여성들이 같이 안 살죠. 평등한 관계가 돼야 해요. 공동대표로서 두 사람이 사안마다 긴밀히 의논하고, 합의해야 해요.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하나씩 양보하기도 하고요. 자식들에게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줘야 해요.

아이들에게 무조건 맞춰주고, 도와주면 아이들의 독립성을 헤칠 수 있거든요. ‘만족지연’ 이론이 있습니다. 자기 통제의 하위 영역 중 하나로, 더 큰 결과를 위해 즉각적인 즐거움, 보상, 욕구를 자발적으로 억제하고 통제하면서 욕구충족의 지연에 따른 좌절감을 인내하는 능력인데,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주면 결코 아이들은 성숙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가족 간 대화를 많이 하십시오. 간혹 대화하는 방법을 묻는 분들이 있는데 대화라는 건 결코 기술이 아닙니다. 대화의 질은 ‘친밀감’이죠. 더 자주 가족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세요. 식사도 자주하고, 가능하면 여가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려고 노력하세요. 그렇게 친해져야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죠. 그리고 가급적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서로 얘기하고요. 일정이 너무 바빠서 오프라인 모임이 불가능하다면 ‘카카오톡’ 등 메신저도 좋은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가족과 소통하려는 의지니까요.”

마지막으로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요.
“노년의 행복한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가 인간관계입니다. 특히, 그동안 부부관계가 어땠느냐에 따라 은퇴 후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부부농사라고 하는데요, 노후를 대비하듯 부부농사도 틈틈이 투자하세요. 물론, 재정적 여유도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데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이제 은퇴하고도 족히 30~40년을 더 살아야 하잖아요. 그 긴 세월을 행복하게 살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혼자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배우는 것도 좋고, 가족 단위, 부부 단위로 여가를 보내는 방법도 꾸준히 습득해 나가야 해요. 거기에 봉사활동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세요.”

강학중 소장은…
대교그룹에서 20년간 일하고 대표이사까지 역임했다. 이후 1997년 12월 대표이사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그는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1년 1월 국내 최초로 가정경영연구소를 세우고, 활발한 강연, 교육, 상담,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삼성, 현대, LG,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정경영’에 대해 700여 회 특강을 진행했으며, 10년간 다양한 방송 매체에서 가정경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로운 가족학>, <강학중 박사의 가족 수업>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