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살다 보면 각종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것엔 항상 예외가 존재한다. 유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유증의 목적물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증이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목적물 사라져도 유효한 유증은
유언자가 특정 유증을 했는데 그 대상인 재산이 이미 처분되거나 소멸한 경우 그 유증은 철회된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사안에 따라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미국 법원이 판례를 통해 철회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만들어 왔다. 후견인이 유증 목적물을 처분한 경우(후견인 예외)와 소멸된 유증 목적물에 대한 보험금이 지급된 경우(대체물 예외)가 그러한 예외에 해당한다.

후견인 예외
미국 법원이 만들어낸 유증철회의 원칙에 대한 대표적인 예외로서, 후견인 또는 재산관리인에 의해 특정 유증의 목적물이 처분된 경우를 들 수 있다. 유언자가 특정 유증을 한 후 무능력자 선고를 받게 될 수 있다. 그 후 유언자의 후견인 또는 재산관리인이 유언자의 치료 등을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특정 유증의 목적물을 처분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처분이 이루어지고(예상치 못한 처분), 그 재산 처분의 수익금이 추적 가능한 경우(추적 가능성)에는 유증이 철회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후견인 예외(guardianship exception)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는 ‘예상치 못한 처분’과 ‘추적 가능성’ 요건만 충족되면 언제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언자가 무능력자가 돼 더 이상 새로운 유언을 할 수 없게 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즉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 주식뿐인 상황에서 피후견인(유언자)의 부양을 위해 재산관리인이 그 주식을 매도한 경우, 비록 그 주식이 특정 유증된 것이라 하더라도 피후견인이 사망할 당시 재산관리인의 수중에 소비되지 않고 남아 있던 잔액에 관하여는 철회의 원칙이 작용하지 않는다.

무능력자가 된 유언자를 대리해 활동하는 지속적 대리인(durable agent)이 특정 유증의 목적물을 처분하는 경우에도 위와 같이 해석한다. 예컨대 유언자가 손자에게 부동산을 특정 유증한 후 무능력자가 되자 유언자의 대리인(지속적 대리인)이 유언자를 부양하기 위해 그 부동산을 매도한 사건(그레이엄 부동산 유산 사건)에서 1975년 미국 캔자스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Kansas)은 부동산의 매매대금 중 유언자가 사망한 후 대리인의 수중에 남아 있는 잔액에 대해서는 철회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유언장에서 특정 유증한 대로 수증자에게 지급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의 ‘통일상속법(UPC)’도 이 예외를 명시적으로 채택했다.

UPC에 따르면 무능력자인 본인을 위해 재산관리인이나 지속적 대리인이 특정 유증의 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또는 그 목적물에 대한 수용보상금, 손해보험금, 손해배상금이 재산관리인이나 지속적 대리인에게 지급된 경우 그 특정 유증의 수증자는 일반 유증으로서 금전적 권리를 가진다.

대체물 예외
법원이 만들어낸 유증철회 원칙의 둘째 예외는, 특정 유증의 목적물이 소멸돼 그에 대한 손해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다. 이를 대체물 예외(Replacement Exception)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유언자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경우 그 자동차의 수증자는 파괴된 자동차에 대한 손해보험금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화재로 소실된 부동산의 수증자는 화재보험금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UPC는 이 예외도 채택했다. 다만 UPC는 이 예외를 더욱 확장시켰다.

UPC에 따르면 ① 목적물이 매도되고 매매대금이 아직 지불되지 않은 경우 그 매매대금, ② 목적물이 수용되고 보상금이 아직 지불되지 않은 경우 그 수용보상금, ③ 목적물이 소멸되고 손해보험금 또는 손해배상금이 아직 지불되지 않은 경우 그 손해보험금 또는 손해배상금, ④ 목적물에 대한 담보권이 실행되고 남은 돈, ⑤ 유언자가 부동산 또는 유체동산에 대한 대체물로서 취득한 다른 부동산 또는 유체동산(1990년 개정에 의해 추가) 등의 조항을 두어 유증철회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대신, 특정 유증의 목적물을 대신한 재산에 대한 수증자의 권리를 규정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