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양준모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딱 100년인 지난 4월 11일 뮤지컬 배우 양준모(39)를 만났다. 지난 10년간 세 시즌에 걸쳐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으로 분하고 있는 그에게 이번 시즌의 의미는 어땠을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진 이승재 기자 | 장소 협찬 슬로우가든
“무대는 세상을 움직이는 도구…공연 후 늘 점수 매겨”
언제부턴가 연기를 정말 잘하거나 작품 선택이 탁월한 배우에 대한 찬사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이 신조어를 국내 뮤지컬 무대로 옮긴다면 아마 양준모는 그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일단 그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사람들이 왜 그를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2004년 데뷔 이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스위니 토드>의 토드, <서편제>의 유봉, <영웅>의 안중근 등 지난 16년간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성악을 전공했다가 우연한 기회로 뮤지컬 배우가 됐다. 덕분에 탄탄한 발성과 무대를 웅장하게 장악하는 성량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는 단순히 노래만 잘해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섬세한 연기 실력은 물론, 정확한 발음과 강인한 체력, 순발력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야만 비로소 뮤지컬 배우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그 점에서 양준모는 자신을 ‘천재형보다는 철저한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공연이 끝나면 성적표처럼 ‘배우노트’를 작성하고, 만족보다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배움의 자세를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또한 그는 뮤지컬 배우 외에도 교수, 기아대책 홍보대사, 오페라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과연, 그의 이런 열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16년 차 베테랑 뮤지컬 배우가 말하는 일과 가족, 그리고 꿈에 대해 요목조목 들어봤다.

일단, 뮤지컬 <영웅> 얘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2010년, 2017년에 이어 이번 시즌까지 세 번째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았어요.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더 특별할 것 같은데요.
“뮤지컬 <영웅>을 보신 분들이라면 다 공감하시겠지만 이 작품은 애국순열들의 나라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죠. 연습할 때마다 그분들에게 감사해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무명 독립영웅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가령, ‘단지동맹’ 12인 영웅 중엔 실명이 밝혀진 분들이 불과 서너 분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아직도 나머지 분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죠.

그래서인지 단지동맹 신을 함께 하는 배우들과는 꼭 무대 오르기 직전에 한 번 더 모여서 파이팅을 외쳐요. 가장 중요한 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정말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이런 마음들이 관객들에게 전해질 때 정말 기쁘고 보람이 있죠.”

과거 한 인터뷰에서 뮤지컬 <영웅>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인 동시에 아쉬움도 많아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만족하나요.
“(더 잘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족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 배우가 자신에게 만족하는 순간 재미도, 발전도 없는 배우가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공연을 마치고 배우노트에 학점처럼 오늘의 점수를 매겨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종종 제가 공연에 만족한 날에 되레 관객들 반응이 덜한 때가 있어요. 물론, 그 반대의 날도 있고요. 예술은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고, 호불호도 갈리잖아요. 결국, 그 간극에서 공통분모를 키워 나가는 것이 대중적인 거겠죠. 그래서 저는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때 ‘딱 이거다’라는 감정을 인위적으로 정해 놓고 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그분을 이해하는 모습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어떤 배우라도 역사 속 안중근 의사를 바라봤을 때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연기하려 노력하죠. 그 당시 그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요. 그런 면에서 제가 2010년 서른 살의 나이로 그분을 연기했던 것이 참 귀한 경험이었죠.”
“무대는 세상을 움직이는 도구…공연 후 늘 점수 매겨”
벌써 데뷔 16년 차입니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요.
“잃은 건 없어요. 물론, 더 해보고 싶은 건 있죠. 제가 원래 오페라 전공이잖아요. 그래서 오페라를 계속 하려고 노력했는데, 만약 제가 시도를 안 했다면 잃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지난 7년간 꾸준히 오페라 작업도 시도했고, 실제로 공연도 했어요. 지금도 내년에 오페라 활동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잃은 건 없어요. 반대로 얻은 건 말도 못하게 많죠. 그래도 그중 꼭 하나를 꼽자면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배우를 왜 하는지, 그 목적성을 더 확고하게 알아간다는 게 감사해요.”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겠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을 연기할 때가 유독 힘들었어요. 불행하고 어두운 팬텀의 상황과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게 무척 괴롭더라고요. 솔직히 어두운 면에서 보자면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더 어두울 수 있는데 저는 팬텀이 더 어려웠죠. 무엇보다 장기 공연을 했었는데 매 회차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물론, 나중에는 그 감정을 완전히 몰입하지 않고도 전달할 수 있는 스킬이 생기긴 했어요. 일종의 연륜이죠. 그런데 무엇보다 더 큰 고통은 분장이었어요. 사실 제가 어떤 분장을 해도 특별한 알레르기나 부작용이 없거든요. 그런데 참 희한한 게 팬텀 분장할 때만 온 얼굴에 물집이 생기고 뒤집어졌죠. 전 세계적으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분장을 할 때 동일한 캐나다산 특수용품을 쓰거든요. 그 어떤 배우도 알레르기를 보인 적이 없었다는데 딱 저만 그렇게 부작용이 심각했던 거죠. 무엇보다 그 당시 신혼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면 제 얼굴을 보고 아내가 속상해서 울곤 했죠.

병원에서도 딱히 원인을 찾지 못했고요. 급하게 호주에서 분장팀이 왔는데 호주의 국민 뮤지컬 배우 앤서니 왈로(Ant- hony Warlow)라고 있어요. 그분이 암을 앓으면서 완전히 삭발을 했거든요. 한번 그분처럼 머리를 밀어보는 건 어떨까 하셔서 그렇게 했죠. 그랬더니 설상가상으로 얼굴에만 났던 물집이 머리 전체로 옮겨졌어요. 물집이 마르고 나면 자국도 심하게 남았죠. 정말 고통스러웠던 날들이었어요. 그래도 포기는 안 했습니다.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반대로 행복했던 순간은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했을 때요. 가령,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교과서적인 해석법들이 있어요. 그런데 간혹 그런 기법이 전혀 필요 없는 작품들이 있어요. 제겐 <레미제라블>, <영웅>, <스위니 토드>가 그랬어요. 그냥 마음에 확 와닿았다고 할까요. 연기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해석이나 계산 없이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특히,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역할은 제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그 역할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장발장 삶 자체에 인생의 수많은 모습들이 녹아 있잖아요.

사실 제가 2006년도에 국내에서 이 뮤지컬을 초연할 때 캐스팅 최종 후보군에 올랐거든요. 만약 그때 제가 했다면 세계 최연소(당시 26세) 장발장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못한 것이 잘된 일 같아요. 아마 그때 했으면 제 목도 엄청 혹사됐을 거고, 마치 중학생이 아빠 양복을 입은 것처럼 연기했을 것 같아요. 많은 역할을 경험한 뒤 장발장 연기하게 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배우 외에도 2015년 기뻤던 순간이 있었죠. 결혼 7년 만에 딸을 얻었는데 어떤가요.
“딸이 아내와 함께 미국에 살고 있어요. 한국 나이로 이제 다섯 살인데 늘 보고 싶죠. 무엇보다 제가 이렇게 공연을 시작하면 몇 달 동안은 보기 힘드니까요.”

이제 다섯 살인데 아빠가 하는 일을 이해하나요.
“제가 일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마다 딸에게 이렇게 말해요. ‘아빠가 (한국에) 가서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힘을 얻고, 희망도 얻고, 박수도 치면서 기뻐해’라고 말이죠. 다행히 딸 혜주도 제 말에 알겠다며 참으려고 해요. 그래도 지금쯤이면 못 참을 때가 됐어요. 한 달 반 정도 못 봤거든요.

매일 매일 저 보는 날까지 센대요. 안 그래도 오늘 아이와 자기 전에 통화했는데 이러더라고요. ‘아빠 이제 10일 지나면 보는데 텐(10)을 세는 게 너무 힘들어’ 해요. (웃음) 그래서 제가 ‘그럼 아빠랑 영상통화 한 번 더하자’고 했더니 그러면 아빠가 더 보고 싶어서 참는대요. 저도 아이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볼 수 있도록 꼭 저녁마다 영상을 찍어서 보내줘요. 저 혼자 이것저것 연출하면서 말이죠.”

훗날 아빠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하면 허락하실 건가요.
“네, 그럼요. 저는 우리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 건 크게 개의치 않아요. 단, 작은 의미로든, 큰 의미로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뮤지컬 배우 중 롤모델로 김선영 씨를 꼽았는데, 그 마음은 여전합니까.
“물론이죠. 선영 누나는 무대 위에서 매번 인간적인 면이 보여요. 배우로서 제 최고의 모토가 살인자를 연기해도 인간적으로 보이도록 연기하자는 거예요. 그래야 관객들이 그 인물과 상황에 대해 공감할 수 있거든요. 누나 연기엔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요. 또한 좋은 뮤지컬 선생님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저와 배우로서 갖고 있는 일종의 목적성이 같아요.

항상 도움도 많이 주시고, 배울 게 정말 많은 분이죠. 앞으로 같은 작품을 하게 되면 창작극에서 만나고 싶어요. 가령, 소소한 일상 속 생활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활연기야말로 연기 테크닉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존의 역할과 다른 새로운 생활연기를 해보고 싶네요.”
“무대는 세상을 움직이는 도구…공연 후 늘 점수 매겨”
반대로 눈길이 가는 후배가 있다면요.
“박강현이요. 강현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친구만의 색깔이 분명히 보였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도 충분히 잘 해낼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어요. 그 과정을 오롯이 무대에서 보냈는데 변화와 한계점을 느낄 것 같아요.
“느껴지죠.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 시장의 성숙도가 갈리겠죠. 무엇보다 저는 배우들의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무척 많죠. 그런데 되레 과거에 비해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배우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가령, 저희 때만 해도 배우들이 헝그리 정신이 강했죠. 지금처럼 뮤지컬 분야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오롯이 스스로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연마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뮤지컬 배우가 되고자 형성된 네트워크나 교육기관, 시스템 등은 더 다양해졌는데 오히려 색이 분명한 배우들이 없어요. ‘배우의 부재’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교육이 중요해요. 대학이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기보다는 학교 경영에만 치우쳐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신만의 소리, 색깔을 찾도록 올바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학과 교수직 외에도 2017년부터 씨어터 보이스(Theater Voice)를 통해 스터디 형식으로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매 회 현직 뮤지컬 배우들을 초청해 뮤지컬 보컬 발성부터 무대 발성, 감정 전달 노하우 등을 알려주죠. 저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죠. 이런 것들은 절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죠.”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꼭 필요한 3가지 자질이 있다면요.
“겸손과 배움, 인내를 꼽고 싶어요. 인내하면서 배우는 배우는 겸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뮤지컬 활동 외에도 기아대책 홍보대사, 교수, 오페라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에너지의 원천이 있다면요.
“(뭐든 해보려는) 타고난 기질이 있긴 해요. 그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크죠. 제가 지금까지 무대 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거든요. 그 고마움을 많은 분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사실 제 계획은 똑같아요. 늘 해 왔던 대로 쭉 열심히 하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준모에게 무대란.
“무대는 제게 도구예요. 저는 항상 무대 위에서 공연 할 때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해요. 그런 마음이면 결코 대충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면 제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고, 그 속에서 크든 작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영웅> 중 이런 대사가 있죠.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 조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살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영웅’이라고요. 저는 그런 마음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무대에서 그런 배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준모 뮤지컬 배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데뷔는 2004년 뮤지컬 <금강>으로 했으며 이후 <명성황후>, <겨울연가>, <스위니 토드>, <이블데드>, <오페라의 유령>, <영웅>, <삼총사>, <서편제>, <지킬 앤 하이드>, <레미제라블>, <햄릿: 얼라이브> 등 수많은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다. 주요 수상 내역으로는 제1회 예그린어워드 연기예술부문 남우조연상(2012년), 제1회 예그린 어워드 연기예술부문 남우조연상(2014년), 제6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남우주연상(2017년)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