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소순무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더욱이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난 ‘100세 시대’를 맞이하며 존엄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성년후견제도가 행복하고, 안전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이유다.
미래 불확실성, 성년후견제로 푼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어 간다. 죽음은 생물이 갖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세상은 하루가 달리 변해 가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외국인은 우리 대가족 제도와 경로사상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문화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핵가족을 넘어 청년, 고령자 독신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산업화로 얻은 풍족한 사회는 우리의 수명을 가파르게 늘려 왔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에서 세계 제일이다.

2017년 65세 이상이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불과 6년 후인 2025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대가족 제도의 붕괴는 노년층이 노후 생활을 기댈 수 있는 터전을 앗아 갔다. 이제 자식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길고 긴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 노년층의 여명 증가와 빈곤화는 우리 사회의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신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정신 능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억력의 감퇴, 인지력의 저하가 일반적인 것이지만 모두가 염려하는 것은 치매 증상이다. 치매 극복은 인류의 염원이지만 세계 유수의 제약 회사도 막대한 개발 비용을 투입했지만 결국 치매예방약 개발을 포기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공식 추정 치매환자 수는 75만 명이다. 노인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잠재적 환자와 그 가족을 합치면 수백만 이상이 치매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앞으로 그 숫자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마침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들고 나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치매예방센터를 설치해 대응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한계가 있고 치매환자를 위해 막대한 재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개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노후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치매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본인이 답답하고 고통을 받겠지만 그 가족의 부담도 상상 외로 크다. 돌봄을 위해 가족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가사는 엄두를 낼 수 없게 된다.

건강 유지도 문제이지만 본인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경제활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날로 복잡해지는 법률관계와 분쟁의 일상화로 인해 타인에 의한 대리권 행사는 엄격해지고 있다.
예컨대 고령의 고액 예금자가 금융기관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송금인이 본인이 아닌 경우 그 증명이 까다롭게 된 것을 우리가 흔히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치매환자 등을 위해 가정법원이 선임한 타인이 재산 관리를 대신해주고 치료, 요양, 거주 이전 등 신상 보호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2013년부터 실시된 ‘성년후견제도’다. 종전의 금치산, 한정치산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종전 제도는 본인을 돕기 위한 취지가 아니라 이들이 한 법률 행위의 효력을 제한해 가족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더 컸다.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 법률 능력 보완뿐만 아니라 신상 보호까지 포함함으로써 본인을 위한 법적 복지로 관점을 전환했다. 성년후견이 실시되려면 가족, 지자체 장, 검사 등이 가정법원에 후견 개시 신청을 해야 한다.

가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80%에 달하지만 가족끼리 서로 자신이 하겠다고 다투면 전문후견인(후견법인,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등)을 선임한다. 형편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치매환자를 위해서 지자체 장이 신청하는 공공후견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후견인의 선임과 함께 후견감독인이 따로 선임되기도 한다. 권한이 큰 후견인을 공적으로 감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정후견 이외에 본인이 장래 치매 등을 대비해 임의로 후견인을 정해 후견 계약을 체결하고 등록을 거쳐 도움을 받게 되는 임의후견도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또한 악의적인 가족이나 친지 등으로부터 자신의 재산(각종 복지수급권 포함)을 지켜 본인의 삶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장애 등으로 인한 복지수급권도 가족이 이를 가로채 장애인 본인에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부모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 자녀들이나 친족들이 달려들어 그 재산을 빼앗아 가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결국 이렇게 되면 이들에 대한 생활 보호나 치매 및 건강관리를 국가, 즉 우리가 내는 세금이 떠안는 꼴이 된다.
미래 불확실성, 성년후견제로 푼다
성년후견제도 믿을 만한가?
성년후견제도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성년후견 신청이 계기가 됐다. 서울가정법원은 신 회장이 고령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인정해 한정후견 결정을 내렸고, 사단법인 선을 후견인으로 선임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후견이 필요한 경우이더라도 친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된다.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전문후견인이 선임되는 경우는 가족이 서로 후견인이 되려고 한다든가 마땅한 친족이 없는 경우다. 가족이 서로 후견인이 되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재산 관리나 상속에 대한 분쟁이 있는 사례다.

어느 경우이든 후견제도는 가정법원의 감독하에 본인의 재산과 신상을 공적으로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이 제도가 없다면 본인의 재산 관리나 신상 보호는 법적으로 방치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 후견인은 가족 간의 유산 다툼으로 일어나는 소송 사태와 감정 대립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신상 보호까지 책임을 진 후견인은 피후견인 본인을 위해 최적의 노후 요양을 제공하게 된다. 재산이 꽤 있는 어느 노인이 치매에 걸리자 아들, 딸들이 서로 자신이 후견이 돼 재산을 관리하겠다고 나서자 가정법원은 전문후견인을 선임했다.

후견인에게 재가 요양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요양시설에 보내기를 주장하는 자식, 뜨거운 여름 에어컨 설치 계획에 대해 돈이 든다고 반대의견을 내는 자식 등 다툼이 계속됐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한편 고액자산가의 경우 그 재산을 관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본인이 기업주인 경우에는 기업 경영에 관한 결정도 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전문후견인이라도 그에 대한 식견이 부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재산을 관리하는 여러 금융상품이 마련돼 있다. 재산 관리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후견신탁이 그 예다.

신탁제도는 본인이 의사결정 능력을 갖고 있을 시기에 후일을 대비해 이용하는 방법도 유용하다. 경영 의사결정과 같이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경우에 후견인은 그 도움을 받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투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외에 후견감독인이 선임돼 후견인의 자의적이거나 위법한 직무 집행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공후견을 제외하고는 후견인에 대한 보수는 피후견인의 재산에서 지불된다. 보수의 결정은 가정법원이 한다. 지불해야 할 보수 금액에 비하면 피후견인이 받는 혜택이나 위험의 회피는 더 크다. 성년후견제도 시행 6년에 이용자는 아직 1만여 명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성년후견의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여러 사회 시스템도 정비돼 가고 있다.

특히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임의후견이다. 고령사회에 들어온 우리는 이제 인생의 40%를 노년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는 그 긴 노후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임의후견은 자신의 노년 시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미리 설계할 수 있다.

치매 등 의사결정 능력의 장애는 언제 닥칠지 모른다. 이를 대비해 스스로 후견인을 정해 본인이 바라는 여생을 그대로 이어가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후견감독인이 선임돼야 효력이 발생하도록 안전장치도 두고 있다. 현재 너무 까다롭고 후견 인력도 빈약한 상태이지만 점차 이를 개선해 후견제도의 중심축으로 만들어야 한다.

성년후견제도는 고령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법적 복지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령사회에서 웰다잉(well dying)은 누구나의 소망이다. 그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것이 성년후견제도다. 바로 알고 미리 대비하면 웰다잉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